문화재/서원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9호_강릉향교 (2019.02.24)

기리여원 2019. 3. 3. 08:11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9호 _ 강릉향교 (江陵鄕校)

 

수   량 : 1동

지정일 : 1985.01.17

소재지 : 강원 강릉시 명륜로 29 (교동)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고려 충선왕 5년(1313)에 처음 세운 후 조선 태종 11년(1411)에 화재로 없어진 것을 태종 13년(1413)에 다시 지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수리가 있었으며, 인조(재위 1623∼1649) 때에는 크게 늘려지어 웅장한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화부산 아래 경사진 곳에 위치하여 위쪽에는 제향공간인 대성전(보물 제214호)을, 아래쪽에는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배치한 전학후묘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제향공간에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동무와 서무가 있고, 이를 연결하는 통로인 회랑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와 자사·증자·맹자를 모시고 있으며, 동·서무에는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를 모시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2층 누대 형식의 건물로, 아래층은 기둥만 세우고 벽을 쌓지 않아 통로로 이용하도록 하였다. 이 외에 학생들의 생활공간인 동·서재와 부속건물 등이 남아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로부터 토지와 책·토비 등을 지급 받아 운영하였다.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으나, 명륜고등학교를 향교에서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소장되었던 책은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불타 없어졌으며, 현재『공부자성적도』등 70여 권만 남아있다.

현재 다른 지역의 향교는 동·서무에 있는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대성전에 함께 모시거나 철거하였는데, 강릉향교에서는 조선시대의 양식 그대로 모시고 있다. 또한 지방향교로는 그 규모가 웅장한 편이고, 한국전쟁 때에도 건물이 불타지 않아 옛 규모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향교이다.

 

 

 

 

 

 

 

 

 

 

강릉향교 700주년 기념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9호 _ 강릉향교 (江陵鄕校)


강릉향교의 유래

우리나라의 최초의 교육기관은 372년에 세워진 고구려의 태학(太學)으로 경전읽기, 활쏘기 등 교육을 하였고, 백제는 오경박사(五經博士)를 두어 유교경전을 가르쳤으며, 신라는 682년에 국학(國學)을 세워 「논어 」「효경 」을 교육하였다. 고려시대에는 992년에 국자감(國子監)을 설립하여 유교경전을 단계별로 교육하였으며 고려 초기 국자감에 공자묘(廟)를 건립하여 공자의 업적을 기리는 제향을 하였다.

국자감은 고려 공민왕 11년(1356년)에 성균관으로 개칭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강릉은 고려 예종(睿宗)대에 내외향교(內外鄕校)를 건립하였으나 전쟁으로 불타고 200년 후 고려 충선왕 5년(1313년) 화부산 기슭에 강릉도존무사 김승인(金承印)에 의하여 창건된 강릉향교는 우리나라 문묘건립의 효시이며 대무관(大廡官)칭호를 받은 향교이다.


제향의 전승

제향(祭享)은 향교 및 서원(書院), 향사(鄕祠)에 배향된 인물을 제사지내는 의식으로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대성전에 봉안된 공지를 비롯한 4성과 동종(東從)에 8위, 서종(西從)에 8위 등 21위와 동 ·서무(東 · 西廡)에 모셔진 115위의 위패에 각각 제물을 올리고 성대한 석전대제(釋奠大祭)를 봉향하고 있다. 전통 유교식제례와 제물, 제례복 등의 제향의식은 강릉향교의 큰 문화유산이다. 또한 오봉서원과 송담서원 및 향현사(響賢祠)는 강릉향교에서 관리 및 제향하고 있으며 화부신사 등 12곳의 향사는 1990년부터 장의(掌議)가 집례 및 제집사를 맡아 전통 제향의전을 시행하고 있다.


강릉향교의 특징

강릉향교 대성전(大成)은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건립되어ㅛ으며 원주(圓柱)의 배흘림(Entasis)과 주심포, 소로와 양서. 뺄목, 쇠서(牛舌)등의 공포(栱包는 조선 초기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존 하고있다. 규모는 대성전 11.52㎡(34.34평), 명륜당 194.88㎡(58.95평), 동무 73.6㎡)(22평), 서무 73.6㎡)(22평), 동재 76.7㎡(23.2평), 서재 76.7㎡(23.2평),  등 건물 연면적 822.33㎡(248.75평)과 대지 연면적 12,903㎡(3,903평)이다. 우리나라의 향교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웅장하고 수려함을 자랑하고 있다.

 

 

 

 

 

 

 

강릉향교 (江陵鄕校) 표지석

 

 

명륜당 좌측에 설치된 강릉문묘 대성전 (江陵文廟 大成殿) 표지석

 

 

 

 

 

 

 

 

 

 

 

명륜당(明倫堂)

향교의 강학공간(講學空間)은 명륜당과 동재 · 서재로 이루어졌다. 태종13년(1413년)에 창건하여 향교로서 면모를 갖추었고, 1644년에 대대적인 중건(重建)을 하였으며 강릉향교 내 단일 건물로 가장 큰 규모이다

 

 

 

 

 

 

 

명륜당(明倫堂) 현판

 

명륜당(明倫堂)

 

 

명륜당(明倫堂)

 

명륜당(明倫堂)

 

 

명륜당(明倫堂)

 

 

동재(東齋)

동재(東齋)/서재(西齋)

명륜당과 전량사이의 묘정(廟庭)을 마주보게 배치하였다. 동재에는 액내교생(額內敎生)으로 양반들이, 서재에는 액외교생(額外校生)이라 평민들이 거처하였다

 

동재(東齋)

 

 

서재(西齋)

 

서재(西齋)

 

 

전랑(殿浪)

대성전 앞면에 담처럼 지어진 행랑으로 전량 또는 월랑(月廊)이라고도 한다. 조선 경종 원년(1721년)에 중건하였다.

 

전랑(殿浪)

 

 

전랑(殿浪)

 

 

보물 제214호 _ 강릉향교 대성전 (江陵鄕校 大成殿)


 지정일 : 1963.01.21

시   대 : 조선시대

소재지 : 강원 강릉시 명륜로 29 (교동)

 

강릉향교는 옛 성현께 제사를 드리고 학문을 갈고 닦는 곳으로, 성균관을 제외한 지방 향교로는 규모가 가장 크다. 고려 충선왕 5년(1313) 강릉 존무사(存撫使)였던 김승인이 세웠다. 조선 태종 11년(1411)에 불에 타, 2년 뒤 강릉도호부판관 이맹상의 건의로 다시 세웠고 몇 차례에 걸쳐 수리를 하였다.

제사를 지내는 공간의 중심 건물인 대성전은 태종 13년(1413)에 지은 것으로 공자를 비롯해 중국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무게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간결하게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은 바닥에 판석을 깔았고 천장은 뼈대가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이 지방의 많은 선비와 학자를 배출한 강릉향교의 제사 공간을 대표하는 전통깊은 건축 문화재이다

 

 

강릉문묘 대성전 (江陵文廟 大成殿) 표지석

 

 

보물 제214호 _ 강릉향교 대성전 (江陵鄕校 大成殿)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인 공자(孔子)의 위패와 영정을 중심에 모시고,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등 4성(聖)과, 공자의 제자 10철과 송나라 선현(先賢) 6명의 위패를 동향하고 있는 배향공간이다.

 

보물 제214호 _ 강릉향교 대성전 (江陵鄕校 大成殿)

 

 

강릉향교 대성전 (江陵鄕校 大成殿) 현판

 

 

강릉향교 대성전 (江陵鄕校 大成殿)

 

 

동무(東廡)


동무(東廡), 서무(西廡)

대성전과 함께 건립된 동 · 서무는 살창을 비롯한 고려 건축양식에 따르고 있다. 동무에 한국성현 9위, 중국성현 49위를 봉안하였으며, 서무에는 한국성현9위와 중국성현 48위 등 모두 115성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배양공간이다. 한국의 성현으로 설총 ·최치원 ·안유 ·정몽주 · 이이 등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서무(西廡)

 

 

대성전에서 본 전랑(殿浪)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9호 _ 강릉향교 (江陵鄕校)

글 문화재청, 강릉향교 팸플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