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물

보물 제411호_경주 양동 무첨당(2019.09.15)

기리여원 2019. 9. 25. 13:32


보물 제411호 _ 경주 양동 무첨당 (慶州 良洞 無忝堂)


수  량 : 1동

지정일 : 1964.11.14

소재지 :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안길 32-19 (양동리)

시   대 : 조선시대


조선시대 성리학자이며 문신이었던 회재 이언적(1491∼1553)선생 종가의 일부로 조선 중기에 세운 건물이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건물 내부를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좌우 1칸씩은 온돌방이다. 대청은 앞면 기둥 사이를 개방하고 누마루에서도 대청을 향한 쪽은 개방되어 있으며, 뒤쪽과 옆면은 벽을 쳐서 문짝을 달았다. 평면은 ㄱ자형을 띠고 있고 둥근기둥과 네모기둥을 세워 방과 마루를 배치하고 있다.

이 건물의 기능은 상류주택에 속해있는 사랑채의 연장 건물로 손님접대, 쉼터, 책읽기를 즐기는 따위의 여러 용도로 쓰이던 곳이다.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으며 별당건축의 기능에 충실하게 지은 건축물로 회재 이언적 선생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보물 제411호 _ 경주 양동 무첨당 (慶州 良洞 無忝堂)


조선시대 성리학자이며 문신이었던 회재 이언적(李彦迪, 1491~1553)선생 종가의 일부로 조선 중기에 세운 건물이다.

이 건물의 기능은 상류주택에 속해있는 사랑채의 연장 건물로 손님접대, 쉼터, 책읽기 등 여러 용도로 쓰이던 곳이다.


보물 제411호 _ 경주 양동 무첨당 (慶州 良洞 無忝堂)


회재 이언적 선생의 부친인 성균생원 이번(李番)공이 살던 집으로 1460년경에 지은 여강 이씨(驪江 李氏)의 종가로서 사랑채의 연장건물입니다.





창산세거(蒼山世居) 현판


창산은 무첨당 뒷산인 설창산을 일컫는 말로서 창산세거는  설창산에서 대대로 살아오는 집을 말합니다.





사랑채 정면에 걸려 있는 무첨당(無忝堂) 현판


무첨당(無忝堂)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다섯손자 중 맏손자의 호인 무첨당(無忝堂) 이의윤(李宜潤)공의 호이며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이다..





사랑채 대청마루에 좌측에 걸려 있는 '좌해금서(左海琴書)'


'영남에서 선비가 살 만한곳'이라는 뜻으로,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기 전에 이곳에 들러 대쪽으로 쓴 글씨라고 한다





물애서실(勿厓西室) 현판


물애서실(勿厓西室) : 물애는 무첨당이 위한 물봉골로서,  물봉골에 있는 책방이란 뜻입니다. 현판 글씨는 용방 조광이 씀.





세일헌(世一軒)현판






청옥루(靑玉樓)현판






오체서실(五棣書室) 현판


현판은 회재의 다섯 손자를 말한 것이며, 다섯 형제가 공부하는 서실을 말한다.


보물 제411호 _ 경주 양동 무첨당 (慶州 良洞 無忝堂)



보물 제411호 _ 경주 양동 무첨당 (慶州 良洞 無忝堂)



보물 제411호 _ 경주 양동 무첨당 (慶州 良洞 無忝堂)



보물 제411호 _ 경주 양동 무첨당 (慶州 良洞 無忝堂)





글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