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찰

봉화 축서사

기리여원 2016. 1. 8. 10:41

대한불교조계종 축서사

 

               선지식의 훈향이 감도는 천년고찰, 마음의 고향 축서사

 

봉화 문수산 축서사 일주문

 

 

문수산 축서사 일주문 편액

 

 

축서사 머릿돌

 

 

 

                                                                 축서사 보탑성전

 

 

 

                                                                   축서사 범종각

 

 

 

                                                                 축서사 보탑성전

 

 

 

 

축서사의 유래

 

축서사는 신라 제30대 문무왕 13년(서기 673년)에 의상대사께서 창건한 사찰이다. 의상대사는 문수보살이 출현하여 불상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 불상을 모실 곳을 찾아다니다 현재의 대웅전 터에 법당을 짓을 불상을 모신 것이 축서사의 창건 유래이다.

 

 축서사는 사명(寺名)은 독수리 치(鷲)-음역은 축, 깃들 서(棲) 즉 독수리가 사는 절이라는 뜻으로 지혜를 뜻하며 지혜는 바로 문수보살을 상징하므로 「문수산 축서사」라고 명명하기에 이르렀다 한다.

 대웅전 상량문의 기록에 의하면 축서사는 광서 7년(서기 1875년)에만 해도 대웅전, 보광전, 약사전, 선승당, 동병당, 정련당, 백화당, 범종각 등 여러 채의 전각이 있었으며 산내암자도 세 개나 되었다고 표기돼 있다.

 

축서사의 문화재급 보물로는 보광전의 석조비로자나불상과 후광배(보물 제95호), 축서사 괘불탱화(보물 제1379호)가 있고, 문화재자료는 석등 및 석탑이 있다. 불상은 팔각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는 모습이며 이 불상은 신라 말엽에 많이 조성되었던  비로자나불좌상의 모습과 흡사하다.

 

석탑은 원형이 완전히 파괴되어 있으나 신라 이래 그대로 보존되어 신앙이 대상이 되고 있으며 원래는 3층 석탑이었다고 한다. 또한 일본인들이 이 탑을 파괴하여 탑 속에서 나온 사리와 유물을 일본으로 가져가 지금은 옥석 사리함만 남아 현재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240년 전인 서기 1768년 무자년에 점안한 괘불로써 규모(가로550cm, 세로880cm, 면적48.4m2)가 대형이며 조성 기법 또한 섬세하며 아주 우수한 괘불로 알려져 있다. 또한 국내 최대 규모인 진신사리112과를 모신 진신사리탑이 모셔져 있으며 극락정토를 묘사해 넣은 화려하고 웅장한 보탑성전은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충만한 적멸보궁이다.

 

1996년 4월 1일부터 무여 큰스님께서는 중창불사를 위한 토목공사를 시작하여 1997년 대웅전, 2003년 운수각, 선열당, 심검당, 안양원, 진신사리탑, 보탑성전, 법종각, 강의동 등 불사를 일구셨으며 현재 삼존불 건립불사를 진행중에 있다.

 

 

 

 

                                                                     문수산 축서사 만년위패 봉안  

   * 축서사에서는 선망부모님은 무론이요,  조상영가와 일체 인연있는 영가들을 위한 만년위패를 봉

      안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긴 조상들께 자손으로 면목이 없을 때

                                                                  돌아가신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해 한스러울 때

                                                                  부모보다 일찍 죽은 자식이 마음에 걸릴 때

                                                                  어떤 사고로 비명에 가신 분이 마음에 걸릴 때

                                                                  낙태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귓전에 쟁쟁할 때

                                                                  친정 부모님 제사 지내기가 어려울 때

                                                                  종교간의 갈등으로 집에서 모시기 어려울 때

                      

   *  이러한 분들의 만년위패를 모시면 영가로 인한 장애와 나쁜 액운이 없어지게 되며 가정은 평안

      하여 지고 자손은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며 효도하는 가풍이 심어져 만사가 원만하여 집니다.

 

   위패 봉안자 : 매년설날, 음(9월9일)날 합동천도제 봉행

 

 

 

                                                                       사리보탑  

 

 

                                                                    사리보탑  

 

 

                                                                     사리보탑  

 

 

 

                                                               축서사 범종각

 

 

 

                                                                   축서사 범종각

 

 

 

                                                                     축서사 범종

 

 

 

 

 

 

 

                                                                 축서사 대웅전

 

 

 

 

 

 

축서사괘불탱 (鷲棲寺掛佛幀) 표지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8호 _ 축서사석등 (鷲棲寺石燈)           

 

축서사 내에 자리하고 있는 8각 석등으로,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에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아래받침돌에는 연꽃을 새겼는데, 꽃잎의 끝마다 작은 꽃조각이 달려 있다. 그 위에 세운 가운데기둥은 약간 짧은 편으로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을 이어주고 있다. 윗받침돌의 밑면에는 아래와 대칭되는 연꽃조각을 두었다. 화사석은 네 곳에 창을 두어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하였는데, 짧은 가운데기둥에 비해 몸집이 커보여 전체적으로 무거운 느낌을 주고 있다. 심하게 부서진 지붕돌은 특별한 조각을 두지 않았고, 꼭대기에는 지붕을 축소한 듯한 머리장식을 올려놓았는데 여덟 귀퉁이마다 조그마한 꽃조각이 솟아 있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조각기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축서사 보광전

 

 

 

보물 제995호 _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광배 (奉化 鷲棲寺 石造毘盧遮那佛坐像 및 木造光背) 

 

시대 : 통일신라시대

 

문수산(文殊山) 정상 가까이에 자리잡은 축서사에 모셔져 있지만,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불상의 높이는 1.08m이며, 얼굴은 가는 눈, 꼭 다문 입, 반듯하고 넓은 신체에서 고요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에는 주름이 평행 계단식으로 표현되어 다소 형식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릎 사이의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퍼진 주름은 다른 불상들의 U자형과는 달리 물결무늬로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평행 계단식 옷주름과 함께 9세기 후반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대좌(臺座)는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8각으로 상·중·하대를 모두 갖추고 있다. 하대에는 각 면에 사자 1구씩을 새겼고, 중대에는 손을 모으고 있는 인물상을, 상대에는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현재 불상 뒤에 나무로 만들어진 광배(光背)가 있는데 여기에는 화려한 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원래의 돌로 만든 광배는 윗부분만 남아있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후기에 많이 만들어졌던 비로자나불상 가운데 하나로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과 동일한 특징을 보여주어 당시 조각수법과 신앙형태를 알 수 있다. 석탑기에 의해 9세기 후반에 만들었다는 절대연대가 밝혀져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보물 제995호 _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광배 (奉化 鷲棲寺 石造毘盧遮那佛坐像 및 木造光背) 

 

 

 

 

 

 

 

 

 

 

 

 

 

 

 

 

 

 

 

      축서사 응향각

 

 

 

2015.12.26.토요일

 글 문화재청,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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