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구미 도리사

기리여원 2020. 9. 24. 17:05

구미 도리사에서 보유한 문화재

 

1. 보물 제470호 _ 구미 도리사 석탑

2.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1호 _ 아도화상사적비및도리사불량답시주질비

3.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6호 _ 구미 도리사 극락전

4.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14호 _ 도리사목조아미타여래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6호 _ 구미 도리사 극락전 (龜尾 桃李寺 極樂殿)

 

향과 불교가 최초로 전해진

                                          도리사

 

도리사는 신라최초가람 적멸보궁 도리사는 신라 제19대 눌지왕대(417년)에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불교가 없었던 신라에 포교를 위해 처음 세운 신라불교의 발상지 이다.

아도화상이 수행처를 찾기위해 다니던 중 겨울인데도 이곳에 복숭아 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보고 좋은 터임을 알고 이곳에 모례장자의 시주로 절을 짓고 이름을 복숭아와 오얏에서 이름을 따 도리사라 하였다.

신라불교 초전법륜지로 불교의 성지인 이곳은 1976년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로 올때에 모셔온 세존 진신사리가 세존 사리탑 보수 공사중 금동육각사리함에 봉안되어 발견되었다.

금동육각사리함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이 되며 국보 제208호로 지정되어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다.

 

사역에서 4.5km 떨어잔 도리사 일주문은 1993년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팔작지붕을 올린 건물로 정면에는 "해동최초가람성지태조산도리사(海東最初加藍聖地太祖山桃李寺)"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해동최초가람성지태조산도리사(海東最初加藍聖地太祖山桃李寺) 일주문 편액

 

편액은 초정(艸丁) 권창윤(權昌倫, 1943~ )의 글씨임

 

도리사 느티나무 가로수

 

신라 19대 눌지왕(417년)에 승려 아도화상이 신라 최초로 세운 해동불교의 발상지인 도리사 진입부에 당시 느티나무 근원직경 5cm정도 크기의 가로수 490여본을 식재하였으나, 식재지가 모래토양의 제방으로 식재 후 2~3년간 가뭄이 지속되어 주야간 물주기 작업을 실시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지금은 양쪽에 늘어선 수관이 맞붙을 정도로 아름다운 가로수로 성장했다. 또한 2013년에 농촌테마가로수 사업으로 느티나무 근원직경 20cm 크기의 100여본을 식재하여 기존가로수와 연결시켜 아름다운 느티나무 숲길로 완성되었다.

 

* 국립수목원 선정 나들이 하기 좋은길 15선

* 산림청 선정 아름다운 가로수길 62선

 

도리사 안내도

 

 

태조산 도리사 연혁(太祖山 桃利寺沿 沿革)

 

 

도리사(桃李寺) 설선당(說禪堂)

 

 

도리사(桃李寺) 수선료(修善寮)

 

 

도리사(桃李寺) 수선료(修善寮) 후면

 

 

수선료 후면에 결려 있는 현판

 

동국최초가람(東國最初伽藍), 태조산도리사(太祖山桃利寺) 현판

 

담향산창(淡香山窓)

 

맑고 향기로운 산속에 있는 집의 창문

 

태조선원(太祖禪院)

 

수님들이 수행하는 선방으로 정면 7칸, 측면 8칸 규모의 ㄷ자형 건물이다. 내부에 1931년 조성된 석가모니불 탱화가 봉안되어 있으며, 수행하기 좋고 도인이 많이 나 영남의 3대선원 중 『제일도리 』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야은 길재(吉再, 1353~1419)선생이 이곳에서 스님들에게 글을 배웠으며, 근래 선지식인 운봉성수(雲峰性粹, 1889~1946)스님과 성철스님도 이곳에서 정진하였다. 정면에는 '太祖禪院' 편액이 걸려 있는데 민족대표 33인 중의 1인인 오세창 선생의 글씨이다.

 

도리사(桃李辭) 편액

 

 

태조선원(太祖禪院) 편액

 

이 편액은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글씨이다.

 

태조선원(太祖禪院)

 

 

도리사 세존사리탑(桃李寺 世尊舍利塔)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도리사에 있는 조선시대 석종형 부

 

도리사 세존사리탑은 원래 칠성각 동북쪽 담장 밖에 있었던 것으로, 1977년 칠성각 옆에 새로 기단석과 난간을 만들었고 앞면 좌우에 석등(石燈)을 세웠다

도리사 세존사리탑은 석종형(石鐘型)의 부도(浮屠)로서 하대석 3단은 새로 만들어 올려 놓았다. 3단의 상부는 복판(複瓣)으로, 복련(伏蓮)을 조각하였고, 하부에는 안상(眼象)에 초문(草文)을 양각하였다. 원래 4각형의 상대석에는 4우(隅)에 각기 사자의 두상을 조각하였다.
탑신의 하부에는 단엽10판(單葉十瓣)의 앙련(仰蓮)을 조각하였고, 중앙에는 아무런 문양이 없으며 상부에는 복련을 돌렸다. 보주(寶珠)는 상촉(上促)의 연봉형(連峰型)으로 만들었고, 이 탑을 이건할 때 탑신 밑에서 금동육각사리함과 사리 1개가 나왔다. 높이는 1.62m, 지대석 길이 1.3m, 탑신 높이 1.02m이다.

보주 윗부분의 원좌(圓座) 다섯 곳에 음각하여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이라고 한 자씩 새겼다.

도굴로 인하여 계곡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도리사 경내에 옮겨 복원 공사를 하던 중 1977년 4월 18일 이 속에서 금동육각사리함과 함께 세존 진신사리 1과가 발견되었다. 원래의 유지(遺址)에는 지금도 지대석이 묻혀 있다.

조성 연대는 17세기 전반기로 추정되며, 1977년 발견된 금동육각사리함은 국보 제208호로 지정되어, 본사인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글 : 디지털구미문화대전

 

도리사 세존사리탑(桃李寺 世尊舍利塔)

 

 

도리사 세존사리탑(桃李寺 世尊舍利塔)의 "世" 자

 

보주 윗부분의 원좌(圓座) 다섯 곳에 음각하여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이라고 한 자씩 새겼다

 

국보 제208호 _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 (桃李寺 世尊舍利塔 金銅舍利器)

 

수   량 : 1점

지정일 : 1982.12.07

소재지 : 경북 김천시 대항면 북암길 89, 직지사 (운수리)

시   대 : 통일신라시대

 

경상북도 선산군 도리사에 있는 종 모양의 세존사리탑 안에서 발견된 육각의 사리함이다.

사리함은 높이 17㎝로 기단, 몸체,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고, 표면에 도금이 잘 남아 있다. 평면 육각형으로 각 면의 기단에 안상을 뚫었다. 몸체의 두면에는 불자(拂子)와 금강저를 든 불교의 수호신인 천부상을 선과 점으로 새겼다. 남은 4면에는 사천왕상을 선으로 새겼다. 이들의 배치는 사천왕상 중에서 탑을 들고 있는 다문천을 중심으로 좌우에 천부상을 배치하여, 다문천이 정면이 되게 한 듯 보인다.

지붕 처마와 추녀에는 고리가 있어 장식을 달았던 것처럼 보이며 각 모서리 끝단에는 귀꽃장식이 솟아 있다. 꼭대기에는 연꽃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그 중심에 꼭지만 남아 있어 원래 꽃봉오리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귀꽃의 장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서, 8각이 유행하던 시기에 6각형의 사리함이 나타났다는 점이 특이하다. 출토된 곳도 시대를 달리하는 종 모양 부도에 안치되었던 것도 색다른 점이다

 

2017.09.10, 직지사 성보박물관

 

도리사 삼성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6호 _ 구미 도리사 극락전 (龜尾 桃李寺 極樂殿)

 

수 량 : 1동

지정일 : 2013.04.08

소재지 : 경상북도 구미시 도리사로 526 (해평면, 도리사)

시 대 : 신라시대

 

도리사를 세운 시기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신라 최초의 절로 알려져 있다.
극락전은 도리사의 부속 암자인 금당암의 법당으로 19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내부에는 나무로 만든 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으며, 벽면에는 벽화를 그려 놓았다.

 

구미 도리사 극락전 (龜尾 桃李寺 極樂殿), 우측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14호 _ 도리사목조아미타여래좌상 (桃李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1995.12.01

소재지 : 경상북도 구미시 도리사로 526 (해평면, 도리사)

시 대 : 조선시대

 

도리사(桃李寺)는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태조산에 위치한 사찰로,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최초의 사찰이라 전해진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불교 전파를 위해 서라벌에 다녀오던 아도(阿道)가 한겨울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핀 것을 보고 이 곳에 절을 짓고 꽃이름을 따 도리사라 하였다고 한다.
이곳의 극락전에 모셔져 있는 아미타여래상은 전체 높이 129㎝이며 조선시대 불상 양식을 띠고 있다

 

보물 제470호 _ 구미 도리사 석탑 (龜尾 桃李寺 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68.12.19

소재지 : 경북 구미시 해평면 도리사로 526, 도리사 (송곡리)

시 대 : 고려시대 추정

 

도리사는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질 당시 전설에 나오는 아도(阿度)화상과 관련이 있는 절이다. 아도가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서라벌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한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하여 그곳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 하였다 한다. 정확하게 언제 세워졌는지 알 수 없으나 신라 최초의 절이라고 전한다.

이 석탑은 대웅전 앞뜰에 있으며, 전체적으로 5개층을 이루고 있는데, 맨 아래층은 탑을 받치는 역할을 하는 기단(基壇)으로 여겨진다. 위의 2개 층은 탑의 중심부분인 탑신부(塔身部)이다. 탑신부의 1층과 2층 몸돌은 작은 정사각형의 돌을 2∼3단으로 쌓아 마치 벽돌을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인다. 지붕돌 역시 벽돌탑을 모방한 석탑처럼 층단을 이루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각각 한면에 문틀을 돋을새김한 널돌이 끼워져 있어 문짝모양을 표현한 듯하다. 맨 위의 2개층은 탑의 머리장식받침인 노반(露盤)이 포개진 것인지, 아니면 위층만 노반이고 아래층은 탑신부로 보아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일반적인 탑들과는 다른 특이한 형태로 몸돌과 지붕돌 윗부분의 층단구성이 모전석탑처럼 보인다. 이처럼 희귀한 모습을 한 탑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며, 고려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1호 _ 아도화상사적비및도리사불량답시주질비 (阿度和尙事蹟碑및桃李寺佛糧畓施主秩碑)

 

수 량 : 2기

지정일 : 1995.12.01

소재지 : 경북 구미시 해평면 도리사로 526, 도리사 (송곡리)

시 대 : 조선시대

 

도리사 남쪽의 비탈진 소나무숲 속에 나란히 서 있는 2기의 비이다.

‘아도화상사적비’는 아도화상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비로, 자연 암석을 받침 삼아 그 윗면에 홈을 파서 비를 세우고, 머릿돌을 얹었다. 머릿돌은 앞면에 이무기를, 뒷면에 네 마리의 용을 조각하고 그 사이마다 구름·용을 새겨 장식하였다. 비몸 앞면에는 위쪽에 가로로 전서체로 된 비의 이름을 새겨두고, 그 아래에 세로로 비문을 적었다. 뒷면에는 ‘자운비(慈雲碑)’라는 글씨를 새겼으며, 그 끝에 건립연대를 밝혀두어 조선 효종 6년(1655)에 세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도리사 불량답시주질비’는 도리사에 논과 밭을 시주한 이의 이름과, 논밭의 규모를 적어놓은 비이다. 자연 암석을 받침 삼아 윗면에 홈을 파서 비를 꽂아두고, 머릿돌을 올려 마무리하였다. 머릿돌은 앞뒷면에 굵은 선으로 연꽃봉오리와 줄기를 조각하였고, 두 옆면에는 2중으로 된 원모양의 띠를 새겨 장식하였다. 꼭대기에는 꽃봉오리모양을 한 머리장식이 우뚝 솟아있다. 앞뒷면에 세로로 새긴 비문은 앞면 첫줄에 비의 이름을 적은 후, 그 아래에 논밭을 시주한 자와 그 규모를 밝혀두었다. 비문 끝에 남긴 기록을 통하여 숙종 38년(1712)에 비를 세웠음을 알게 되었다.

17세기 중엽∼18세기 초에 세운 작품들로, 비문이 갖는 역사적 의미나 조각의 솜씨 등은 충분히 활용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1호 _ 아도화상사적비 (阿度和尙事蹟碑)

 

‘아도화상사적비’는 아도화상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비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1호 _ 도리사불량답시주질비 (桃李寺佛糧畓施主秩碑)

 

‘도리사 불량답시주질비’는 도리사에 논과 밭을 시주한 이의 이름과, 논밭의 규모를 적어놓은 비이다

 

아도화상 좌선대

 

아도화상의 예언처럼 집안으로 칡넝쿨이 들어오자 모례장자(털례)는 칡넝쿨 길을 따라 이곳까지 와 보니 바위 위에는 아도화상이 좌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반가움에 절을 한 뒤 이곳에 머물게 된 연유를 묻자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피어있는 모습을 보고 이곳이 성스러운 길지임을 알아 이곳에 절을 짓고자 한다"하였습니다.

 

이에 모례장자의 시주로 절을 지어 봉숭아꽃과 오얏꽃에서 이름을 따 도리사라 하였으며, 이 바위는 아도화상이 좌선을 하고 앉았던 자리입니다.

 

아도화상

 

아도의 어머니 고도녕은 중국에서 온 사신 아굴마와 연정이 깊어져 아도를 낳게 되었다.

그 후, 아도가 다섯 살이 되자 고도녕은 아도를 출가시켰다. 아도가 16세가 되자 아도는 중국으로 가 현창화상 밑에서 수행을 하고 고구려로 돌아왔다.

어머니 고도녕은 아들을 불교가 없던 신라로 불법을 전하라며 보내었다.

당시 신라는 외래 문물에 배타적이어서 불교 박해가 심했었다.

그는 묵호자란 이름으로 지금의 선산부 도개에 와서 모례장자의 집에 몸을 의지하고 낮에는 일을 하여 도움을 주고 밤에는 사람을 모아 자비로운 불법을 전하였다.

그때, 양나라의 사신이 신라에 향을 예물로 보내왔으나 그 사용법을 아는 사람이 없어 걱정 해오던 중 모례장자의 추천으로 궁에 들어가 향의 사용법을 알려주길 “향을 불에 태우면 향기가 그윽하여 신성하기가 이를데 없고 소원을 빌면 반드시 영험이 있다”하였다. 이에 왕의 공주인 성국공주가 큰 병이 들어있었는데, 왕이 아도화상에게 치료를 청하니 아도화상이 칠일간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니 신통하게도 공주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 공덕이로 불교를 전할 기회를 얻었으나, 왕이 세상을 뜨자 아도화상을 해치려 하는 무리들이 공격을 해와 몸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모례장자의 집에 잠시 머물다 떠나려하자 모례장자가 가는 길을 물었으나 “나를 만나려거든 얼마 후 칡순이 내려올 것이니 칡넝쿨을 따라 오시오.”라는 말을 남겼을 뿐이다.

그 해 겨울 과연 기이하게도 정월 엄동설한에 모례장자 집 문턱으로 칡순이 들어왔다. 모례장자는 그 줄기를 따라가 보았다. 한 겨울인데도 복숭아 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나무 아래 좌선대에서 아도화상이 정진하고 있었다.

“ 잘 오셨오. 모례장자. 내 이곳에 절을 세우려 하니 이 망태기에 곡식 두말을 시주하시오.”

아도화상은 모례장자 앞에 작은 망태기를 내놓고 시주를 권했다. 모례장자는 기꺼이 승낙을 하고는 다시 집으로 내려와 곡식 두 말을 망태기에 부었으나 어인 일인지 망태기는 두말은커녕 두섬을 부어도 차지 않았다. 결국 모례장자는 재산을 모두 시주하여 도리사를 세웠다.

아도화상은 절 이름을 복숭아 꽃과 오얏꽃의 이름을 따 도리사라 칭했고 그곳이 바로 신라에 처음 세워진 절 도리사이다.

아도화상은 도리사에서 정진하다 나이가 들어 금수굴에 들어가 열반에 들었다. 지금도 도리사에서는 성국공주의 병을 낫게한 아도화상 동상 앞에서 향을 피워 올리며 가족과 친지들의 쾌차를 위해 기원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그 가피를 받고 있다.

 

 

 

도리사 적멸보궁

 

 

적멸보궁 내부

 

 

세존진신사리탑

 

 

도리사 범종각

 

범종각앞에 신라의 미소 '수막새'를 세웠습니다.

 

도리사 범종

 

 

 

 

도리사 범종각(桃利寺 梵鐘閣)

 

 

도리사에서 일주문으로 가는 느티나무 가로수길

 

2020. 09.16, 구미 도리사

글 문화재청, 도리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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