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향토유적

양평 향토유적 제10호_이제신 선생 신도비

기리여원 2021. 8. 29. 06:59

양평 향토유적 제10호_이제신 선생 신도비(李濟臣 先生 神道碑)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암리 산41-21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함경북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이제신(李濟臣) 선생의 신도비이다.

신도비는 북쪽을 정면으로 하고 있는데, 비의 형태는 이수와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고 있으며, 비신은 대리석이다. 이수는 서로 마주보는 용문과 괴운문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비는 광해군 13(1621) 건립되었으며 마모가 심하다. 현재 정면 1칸 측면 1칸의 비각이 건립되어 있다. 비문은 신흡(申欽)이 글을 지었다.

 

 

이제신 선생 신도비 표지판

 

 

이제신 선생 신도비입구

 

 

이제신 선생 신도비명 병서 역문 (李濟臣 先生 神道碑名 拜書 譯文)

 

 

이제신 선생 신도비로 오르는 돌계단

 

 

이제신 선생 신도비각

 

 

이제신 선생 신도비각

 

 

이제신 선생 신도비각

 

 

이제신 선생 신도비 이수

 

 

이제신 선생 신도비(李濟臣 先生 神道碑)

 

청강(淸江) 이제신(李濟臣, 1536~1584)

 

본관은 전의. 자는 몽응, 호는 청강. 병마절도사 문성의 아들이며, 조욱의 문인이다. 1564(명종 19) 식년문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 권지정자가 되었고, 검열·성균관전적·형조정랑·공조정랑·호조정랑을 역임했다.

 

예조정랑으로서 명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고, 1571(선조 4) 울산군수가 되어서 아전들의 탐욕을 막고 백성들의 불편을 없애는 데 힘썼다. 1578년 진주목사가 되어 선정을 펼쳤으나, 재직중 병부를 잃고 사임·은거했다. 다시 강계부사로 등용되고, 이어 함경북도 병마절도사가 되었으나, 1583년 여진족의 침입으로 경원부가 함락되자 책임을 물어 의주 인산진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1584년 신원되어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청백리에 기록되었다.

 

시문과 글씨에 능했으며, 저서로는 청강집·청강쇄어·진성잡기 鎭城雜記 등이 전한다. 특히 청강쇄어의 탈춤에 관한 기록은 조선 전기 탈춤의 실태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제신 선생 신도비 후면

 

 

이제신 선생 신도비 전경

 

 

이제신 선생 신도비 옆에 있는 이 비는 잠와공 이명준 신도비입니다.

 

2021.08.22, 양평 서종면 수암리

글 워키백과,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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