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306호_강화 갑곶돈

기리여원 2022. 1. 13. 10:24

강화 갑곶돈에 있는 지정문화재

 

1. 사적 제306호 _ 강화 갑곶돈

2. 천연기념물 제78호 _ 갑곶리 탱자나무

 

사적 제306호 _ 강화 갑곶돈 (江華 甲串墩)

 

면  적 : 65,099㎡

지정일 : 1984.08.13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 1020번지 외

 

돈대는 작은 규모의 보루를 만들고 대포를 배치하여 지키는 곳이다.

 

갑곶돈은 고려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고와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대포 8문이 배치된 포대이다.

 

삼국시대 강화를 갑비고차(甲比古次)라 부른데서 갑곶이라 이름이 전해오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고려 때 몽고군이 이곳을 건너려고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우리 군사들이 갑옷만 벗어서 바다를 메워도 건너갈 수 있을 텐데’라 한탄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전설도 있다.

 

조선 1644년 강화의 요충지마다 군대 주둔지를 설치할 때, 제물진에 소속된 돈대로서 1679년에 완성되었다. 고종 3년(1866) 9월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극동함대가 6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상륙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0월에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은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게 패하여 달아났다.

 

1977년에 옛터에 새로이 옛모습을 되살려 보수, 복원이 이루어졌다. 지금 돈대 안에 전시된 대포는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이다.

 

강화 갑곶돈 표지판

 

 

강화 갑곶돈 정문

 

 

세계금속활자발상중흥기념비

 

세계금속활자발상중흥기념비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개발한 고려인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되었다.

고려는 금속활자를 세계에서 맨 처음 발명하였다. 이것이 중국 · 아라비아 · 독일까지 퍼져 나갔으며 이곳 강화는 13세기 금속활자 인소ㅙ술을 중흥 발전 시킨 고장이다.

 

강화 비석군

 

조선시대 선정을 베푼 유수 · 판관 · 경력 · 군수의 영세불망비 및 선정비와 자연보호의 일환으로 세운 금표(禁標), 삼충신(三忠臣)을 기리는 삼충사적비 등 총 67기 비석이 모여 있다.

조상들이 자연보호 정신을 엿볼 수 있는 표석인 금표는 1733년(영조 9) 강화유수부(고려궁지)앞 등지에 세웠던 것으로 "가축을 놓아 기르는 자는 곤장 100대, 재나 쓰레기를 버리는 자는 곤장 80대를 친다"라는 경고문이 적혀있다.

 

천연기념물 제78호 _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江華 甲串里 탱자나무)

탱자나무는 주로 영·호남지방에 분포하며 일본·중국에서도 자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나무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나 있어 과수원 울타리용으로 적합하다.

강화도 역사박물관 옆에 서 있는 갑곶리의 탱자나무는 나이가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4.2m, 뿌리부분 둘레 2.12m이다.

강화도는 고려 고종(재위 1213∼1259)이 몽고의 침입을 해 있었던 곳이며, 조선 인조(재위 1623∼1649)가 정묘호란(1627) 때 난을 피했던 장소이다. 이 때 외적을 막는 수단으로 강화도에 성을 쌓고, 성 바깥쪽에 탱자나무를 심어서 외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 탱자나무는 그 때 심은 것이 살아남은 것으로 추측된다.

강화도는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어서, 탱자나무를 처음 심었을 때 조정에서는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자세히 보고하게 하였다고 한다.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는 우리 조상들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심은 국토방위의 유물로서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한계선인 강화도에 자리하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이섭정으로 가는 길

 

 

이섭정(利涉亭) 

이섭정(利涉亭)은 1398년(태조 7) 강화부사 이성(李晟)이 세웠으나 무너진지 오래되었다가 1976년 강화 국방유적 복원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갑곶돈대 안에 팔각의 2층 정자를 세워 이섭정이라 현판하였다.

 

이섭정(利涉亭)  현판

 

 

대포(大砲) 보호각

 

 

조선시대 대포(大砲) _ 구경 100mm, 길이 215cm, 중량 1,800kg

 

17세기 초 명나라 군대가 네덜란드와 전쟁을 치룰 때 중국인들은 네델란드인을 '홍모이(紅毛夷)', 네델란드인들이 사용하던 대포를 '홍이포'라 불렀다. 사정거리 700m로서 화약의 폭발하는 힘으로 날아가거나 포알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이 약하다.

 

강화 갑곶돈

 

 

강화 갑곶돈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관측 · 방어시설이다. 갑곶돈대는 1679년(숙종 5) 5월에 완성되었고 망해돈데 · 제승돈대 · 염주돈대와 함께 제물진의 관할 하에 있었다.

1977년에 옛터에 새로이 옛 모습을 되살려 보수 · 복원이 이루어졌다. 돈대 안에 전시된 대포(진품)는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이다.

 

불랑기(佛狼機)와 소포(小砲)

불량기(佛狼機)는 탄환과 화약을 장전하는 자포(子砲)와 이를 발사하는 모포(母砲)가 분리되어 연속 사격이 가능한 무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널리 사용되었다.
소포(小砲)는 포구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방식으로 사정거리는 300m이며 우리나라 재래식 화포 중 가장 발달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불량기(佛狼機) _ 구경 26mm, 길이 82cm, 중량 38kg

 

 

소포(小砲) _ 구경 84mm, 길이 159cm, 중량 171kg

 

 

갑곶돈에서 바라본 舊 강화대교

 

 

갑곶돈에서 바라본 강화도 해안

 

 

강화전쟁기념관 앞 좌측에 포도대감이 지켜 보고 있습니다.

 

 

강화전쟁기념관

 

강화전쟁박물관은 천혜의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어 역사의 고비 때마다 국방상 요충지 역할을 수행하며 외세의 침략을 막아낸 강화의 호국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강화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주제로 각종 전쟁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연구, 보존, 수집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어재연 장군 수자기(帥字旗) _ 어재연 장군기, 1871, 415×435cm

 

신미양요 때 어재연 진무주운이 광성보에 걸고 싸웠던 깃발이다. 미군에 약탈되어 미국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보관하다가 2007년에 장기대여형식으로 반환 되었다.

 

어재연(魚在淵) 교지(敎旨) _ 조선

 

1867년 11월 5일 어재연(魚在淵)을 가선대부 행회령도호부사로 임명하는 교지

 

불랑기포(佛狼機砲) _ 조선후기, 길이 78.9cm

 

불랑기는 프랑크(Frank)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말로 중국 명나라 떄 유럽에서 도입되어 크게 유행한 대포로 조선에도 전해져 주력 화포로 사용되었다.

 

소포(所砲) _ 길이 55cm

 

중포의 축소형으로 포구 쪽에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포미에 있는 점화구를 통해 화약에 점화하여 발사하였다.

 

2022.01.07 강화읍 갑곶리, 갑곶돈

글 문화재청, 전시안내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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