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133호_강화 고려궁지

기리여원 2022. 1. 10. 10:07

강화 고려궁지에 있는 지정문화재

 

1. 보물 제11-8호_강화 동종(복제품)

2. 사적 제133호_강화 고려궁지

3.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5호_강화유수부 동헌

4.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6호_강화유수부 이방청

5. 강화군 보호수 제4-9-63호 _ 회화나무

 

사적 제133호 _ 강화 고려궁지 (江華 高麗宮址), 외규장각

 

면  적 : 15,097㎡

지정일 : 1964.06.10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강화읍 북문길 42 (관청리)

시   대 : 고려시대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건물이다.

 

정궁 이외에도 행궁·이궁·가궐을 비롯하여 많은 궁궐이 있었다. 정문은 승평문이었고 양쪽에 삼층루의 문이 두 개가 있었으며 동쪽에 광화문이 있었다. 39년동안 사용되었고 1270년 강화조약이 맺어져 다시 수도를 옮기면서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강화도를 피난지로 정했다. 조선 인조 9년에 옛 고려 궁터에 행궁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다. 그후 다시 강화유수부의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만이 남아있다.

 

이 곳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곳이다

 

강화 고려궁지 표지판

 

고려궁지 (江華 高麗宮址) 

 

고려는 고종 19년(1232년)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최우의 권유로 도읍을 송도에서 천혜의 요새인 강화도로 옮겼다. 이때 옮겨진 도읍터가 고려궁지로 원종 11년(1270년) 개성으로 환도할 때까지 38년간 사용되었다.

고려궁지는 송도 궁궐과 비슷하게 만들어졌고, 궁궐 뒷산 이름도 송악이라 하여 왕도의 제도를 잊지 않으려 하였다고 한다. 1636년 병자호란 시 강화성이 청나라 군에게 함락되는 등 여러차례 전란을 겪으면서 궁궐과 성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 후 고려궁터에는 조선시대의 건물인 승평문, 강화유수부동헌, 이방청 종각 등이 복원되어 있다

 

 

강화 고려궁지 전경

 

 

강화유수부 이방청 전경

 

 

강화 고려궁지 출입문 전경

 

 

고려궁지 전경 승평문 

 

 

승평문(昇平門)

 

고려시대 궁궐의 정남쪽에 있던 문으로 강화도 천도와 함께 지어진 고려 궁궐의 문이다.

개경으로 환도하면서 허물어졌던 것을 1970년대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강화의 궁궐은 개경의 궁궐과 유사하게 지었으며 명칭도 그대로 사용되었다.

 

강화 고려궁지 전경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5호 _ 강화유수부 동헌 (江華留守府 東軒)

 

조선시대 관아의 하나로 강화지방의 중심업무를 보던 동헌이다. 영조 45년(1769)에 유수 황경원이 현윤관이라 이름을 붙였으며, 여러 차례 보수해서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앞면 8칸·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명위헌(明威軒)’과 ‘이관당(以寬堂)’이라는 현판은 당시의 명필이자 학자인 백하 윤순(1680∼1714)이 썼다

 

강화유수부 동헌

 

 

강화유수부 동헌 후면

 

 

강화부종각(江華府鐘閣)

 

 

강화부종각(江華府鐘閣)

 

 

보물 제11-8호 _ 강화동종(복제품)

 

조선시대 강화성문의 여는 시간과 닫는 시간을 알리는데 사용하였던 종으로 높이가 198cm,  입지름이 138cm이다.

종 꼭대기는 용무늬로 조각되었고 한국종의 특색인 음통이 없다. 종 중앙에는 두 줄의 횡선을 둘러 상 · 하로 2등분 하였으며 어깨부분에는 꽃무늬로 윤각대가 있고 그 안에 9개의 연꽃이 새겨져 있다.

횡선 아래로는 종 입구 바로 위에 꽃무늬를 새긴 넓은 띠가 있을 뿐 다른 장식은 하지 않았으며, 만든 시기(숙종 37년)를 알 수 있는 글이 남아 있다.

종 중앙을 띠로 장식하는 것은 고려시대와는 다른 조선시대 문화의 특징이라 하겠다.

 

강화역사박물관에 보관 전시중인 보물 제11-8호-강화동종(진품)

 

 

강화유수부 이방청 전경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6호 _ 강화유수부 이방청 (江華留守府 吏房廳)

 

강화유수부 안에 있는 이방·호방·예방·병방·형방·공방 6방의 건물 중 이방청으로 조선 중기의 관청 건물이다. 조선 효종 5년(1654)에 유수 정세규가 세웠고, 정조 7년(1783)에 유수 김노진이 건물 내부를 고쳐 괘홀당이라고 불렀다. 나무로 된 1층의 기와집으로 ㄷ자형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여러 차례 고쳐서 옛날 관청의 모습을 잘 알 수는 없으나, 조선시대 지방의 이방청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강화유수부 이방청

 

 

강화유수부 이방청

 

 

외규장각 전경

 

 

외규장각(外奎章閣)

 

조선 정조 때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으로,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奎章閣)의 부속 도서관 역할을 하였다. 설치 이후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儀軌)를 비롯한 왕실 관계 서적을 보관하였으나,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의궤를 포함한 서적 등을 약탈하였으며, 나머지는 불에 타 없어졌다.

대한민국 정부와 민간단체에서는 프랑스 정부에 계속해서 외규장각 도서의 환수를 요구해왔으나 반환 협상이 연기되거나 프랑스측에서 계속 협상을 지연시키는 등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다 2010년 11월 12일 G20정상회의에서 양국의 대통령 간에 외규장각 도서를 5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임대형식으로 대여하기로 합의하여 145년만에 우리나라에 돌아왔다.

 

외규장각 우측면

 

 

외규장각 좌측면

 

 

고려궁지 발굴터

 

 

수령이 416년된 회화나무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20m, 둘레는 6m이다.

 

 

강화 고려궁지 전경

 

2022.01.07.금요일, 강화군 강화읍, 고려궁지

글 문화재청, 전시안내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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