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 _ 조선18세기, 동촌당가 송봉기 기탁
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의 의미와 학통의 시각화
고산구곡도란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가 은퇴한 후 지낸 황해도 해주군 고산면 석담리의 풍경을 그린 그림입니다.
율곡 이이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를 흠모하여 주자가 만년에 은거하면서 경영한 무이정사(武夷精舍)와 구곡계(九曲溪)의 자연을 읊은 「무이도가(武夷棹歌) 」를 본떠 은병정사(隱屛精舍)를 세웠고,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를 한글로 지었습니다. 고산구곡은 우리나라만의 평화로운 풍경과 서정적인 시문학, 아름다운 그림을 즐기는 독자적인 구곡 문화로 발전되었습니다.
조선의 구곡문화는 대부분 수려한 경승에 설정되었고, 스승의 자취에 배어 있는 장소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곡은 성리학의 도(道)를 실천했던 장소라는 상징성과 학파적 배경이 있는 곳입니다. 이는 금강산이나 팔경(八景)의 유람애서는 볼 수 없는 학문의 강학처, 은거지 등 구곡유람에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조선시대 대전에는 이른바 기호학파의 노른계 학맥이 자리잡았습니다. 그 학맥은 율곡 이이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 그 제자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 1624~1701)과 제월당(霽月堂) 송규렴(宋奎濂, 1630~1709),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 1641~1721) 등에 이르기까지 계승되었습니다. 이들은 고산구곡도를 마치 스승처럼여겼고, 이를 통해 학맥과 도통(道統)을 강조하였습니다.
고산구곡의 구성은 제1곡 관암(冠巖), 제2곡 화암(花巖), 제3곡 취병(翠屛), 제4곡 송애(松厓), 제5곡 은병(隱屛), 제6곡 조협(釣峽), 제7곡 풍암(楓巖), 제8곡 금탄(琴灘), 제9곡 문산(文山)으로 경영되었습니다. 이곳은 아홉 구비의 커다란 물줄기 사이로 아름다운 산수가 절경을 이루었고, 선비들이 은거하고자 하는 정신적인 이상향으로서 절대적 가치를 지녔습니다.
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 표지판
고산구곡도
고산구곡도
고산구곡의 구성은 좌측부터 제1곡 관암(冠巖), 제2곡 화암(花巖), 제3곡 취병(翠屛), 제4곡 송애(松厓), 제5곡 은병(隱屛), 제6곡 조협(釣峽), 제7곡 풍암(楓巖), 제8곡 금탄(琴灘), 제9곡 문산(文山)으로 경영되었습니다.
고산구곡도
고산구곡도
고산구곡도
2022.03.20. 대전시립박물관_산수정원,고산구곡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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