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비지정문화재

화양구곡 암서재

기리여원 2022. 8. 2. 02:58

사적 제417호 _ 암서재(巖棲齋)

 

1994년 1월 7일 충청북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1999년 12월 29일 지정해제되었다.

 

화양구곡(華陽九曲) 제4곡 금사담(金沙潭) 물가의 큰 반석가에 있는 서재로,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인 송시열(宋時烈)이 정계에서 은퇴한 후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화양구곡은 청계리에서 약 8km 지점에 있는 화양리 박대천(博大川)의 지류인 화양천을 따라 펼쳐진 명승지로 화양동도립공원 내에 있다. 이 계곡의 주위 바위 사이에는 노송이 울창하고 밑으로는 맑은 물이 감돌며 층암절벽이 즐비하여 경치가 매우 좋다.

 

암서재는 대지 약 65㎡ 정도에 목조기와로 2칸은 방이고 1칸은 마루로 되어 있는데, 방 안에는 현판 5점이 걸려 있다. 앞에는 암반 사이에 일각문이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후손들이 수리하였고, 1970년에 보수하여 지금에 이른다. 암서재기(岩棲齋記)에 '우암선생어병오년간축정사어계남(尤庵先生於丙午年間築精舍於溪南)'이라고 씌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1666년(현종 7) 8월 암서재를 짓고 이곳에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암서재기의 글씨는 문인 권상하(權尙夏)가 쓴 것이다. 화양구곡 곳곳에는 지금도〈비례부동〉등 송시열의 필적이 많이 남아 있으며 화양서원의 터도 이곳에 있다.

 

 

금사담과 암서재

 

금사담(金沙潭)

 

화양구곡 중 제4곡으로 맑은 물속에 보이는 모래가 마치 금싸라기 같다고 하여 금사담이라고 하여, 화양구 곡의 중심이 되는 곳입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이곳 바위 위에 암서재를 지어놓고 학문을 연구하고 수양했다고 합니다.

 

암서재(巖棲齋)

 

암서재는 1666(현종 7) 우암이 화양동애 들어와 "화양계당"이라는 초가집을 짓고 살다가 3년 후인 1669년경 주자의 雲谷精舍를 본떠 3칸 정사로 지었다고 한다. 이후 퇴락한 정사를 청주목사 김진옥(金鎭玉)1715(숙종 41) 중건하고, 1747(영조 24)1879(고종 16), 1900(고종 37)에 거듭중수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970년에 보수한 것인데, 보수 하기 전까지는 암서재 앞에 협문과 낮은 담장이 있었다. 보수를 하면서 담장대신에 철책을 둘렀다. 암서재는 1994.01.07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4호로 지정되었다가 1999.12.29일 사적 제417호에 편입되었다.

 

암서재(巖棲齋)

 

암서재의 건물규모는 정면 4칸, 옆면 2칸으로 정면 4칸 중 좌측 1칸에 우물마루를 깔은 대청을 만들고 이어서 2칸에는 앞에 툇마루가 달린 큰 온돌방을 드렸는데 이 방옆으로 1칸의 반침을 만들어 사용하도록 하였다.

 

암서재(巖棲齋)

 

 

괴산 화양구곡 금사담 ‘충효절의(忠孝節義)’ 암각

 

2022.07.26. 괴산 화양구곡 암서재

글 전시자료, 대한민국 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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