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전라남도 21

충청남도 기념물 제84호_이상재선생생가지, 월남 이상재선생 전시관

충청남도 기념물 제84호 _ 이상재선생생가지 (李商在先生生家址) 면 적 : 1,434㎡ 지정일 : 1990.12.31 소재지 : 충남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 263외 1필 조선 후기 사회 운동가인 이상재(1850∼1927) 선생의 생가가 있던 자리이다. 이상재는 종교가·정치가로 일찌기 기독교에 입교하여 신앙운동을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노력했다. 고종 18년(1881) 신사유람단의 수행원으로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 고종 25년(1888) 전권대신 박정양을 수행하여 주미공사 서기로 부임했다. 미국에 다녀온 뒤, 신문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광무 2년(1898)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민중 계몽에 앞장섰다. 1927년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단일 전선을 결성하여 일본과 투쟁할 것을 ..

전라남도 기념물 제229호_학계리 지석묘군

전라남도 기념물 제229호 _ 학계리 지석묘군 (鶴溪里支石墓群) 수량/면적 : 21기/2,344㎡ 지정일 : 2005.01.27 소재지 : 학산면 학계리 시 대 : 청동기시대 지석묘는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무덤이다. 경기도를 중심으로 북쪽은 탁자모양(북방식)이, 남쪽은 바둑판 모양(남방식)이 주류를 이루는 분포양상이다. 영암지역은 청동기 제작과 관련되어 용범과 세형동검, 동경 등 청동기가 출토되어 청동기 문화의 중심지역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에 세형동검문화가 고인돌과 결합되었을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고인돌은 이 시기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학계리 지석묘는 석불(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66호)와 함께 있고 이전에 2기는 수로공사로 인해 파괴되었다. 현재 21기가 보존되어 ..

전라남도 기념물 제182호_영암 양장리 곰솔

전라남도 기념물 제182호 _ 영암 양장리 곰솔 (靈巖양장리곰솔) 수량/면적 : 1주(1,970㎡) 지정일 : 2000.12.13 소재지 : 전남 영암군 군서면 양장리 485번지 수령이 300년 가량으로 곰솔의 높이는 14m, 가슴높이 둘레 4m, 수관폭은 동쪽 11.9m, 서쪽 13m, 남쪽 14m, 북쪽 12.6m이고, 생육상태가 양호하다. 광복 이전까지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던 의미 있는 나무이고, 주위 수목들과 함께 서북풍을 막아주는 방풍림의 역할을 한다. 영암 양장리 곰솔 표지판 영암 양장리 곰솔 전경 영암 양장리 곰솔 수령이 300년 가량으로 곰솔의 높이는 14m, 가슴높이 둘레 4m, 수관폭은 동쪽 11.9m, 서쪽 13m, 남쪽 14m, 북쪽 12...

전라남도 기념물 제103호_장암정

전라남도 기념물 제103호 _ 장암정 (場岩亭) 수량/면적 : 일원 지정일 : 1987.01.15 소재지 : 전남 영암군 영암읍 무덕정길 63 (장암리) 장암정은 장암 대동계에서 현종 9년(1668)에 동약의 모임 장소로 지은 정자이다. 마을 유생들이 모여 향약을 읽으며 잔치를 하던 향음주례, 백일장, 회갑연 등과 나라의 행사가 있을 때 쓰이던 곳이라고 한다. 동약이란 조선시대 시골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규칙으로 좋은 일은 서로 권유하고 잘못은 서로 바로 잡아주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금 있는 정자는 영조 36년(1760), 정조 12년(1788), 순조 19년(1819)에 각각 고쳐 지었으며, 고종 17년(1880)에 전체적으로 보수 공사를 하였..

전라남도 기념물 제223호_신안 암태도 송곡리매향비

전라남도 기념물 제223호 _ 신안 암태도 송곡리매향비 (新安 巖泰島 松谷里埋香碑) 수 량 : 1기 지정일 : 2004.09.20 소재지 : 전남 신안군 암태면 송곡리 산185번지 시 대 : 조선 태종 5년(1405, 永樂 3) 신안 암태도 송곡리 매향비는 조선시대 초기인 1405년(태종 5, 永樂 3)에 세워진 매향비이다. 매향(埋香)이란 미래 구복적인 성향이 강한 미륵신앙의 한 형태로 향나무(香木)을 묻는 민간불교 신앙의례이다. 향나무를 민물과 갯물이 만나는 지역에 오래 묻었다가 약재나 불교의식용으로 썼으며, 그 매향의 시기와 장소, 관련 인물들을 기록한 것이 매향비(또는 암각)이다. 매향의 장소로서는 산곡수(山谷水)와 해수(海水)가 만나는 지점이 최적지라 구전된다. 암태도 매향비는 7행의 글씨가 새..

전라남도 기념물 제147호_벌교 고읍리 은행나무

전라남도 기념물 제147호 _ 벌교고읍리은행나무 (筏橋古邑里銀杏나무) 수 량 : 1주 지정일 : 1994.01.31 소재지 : 전남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799번지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벌교 고읍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40m, 둘레가 10m였으나, 원줄기가 불타고 밑에서 새로 난 싹이 자라 원줄기와 가지를 구별하기 어렵다. 또한 가지에서 발달한 혹 같이 생긴 유주(乳柱)가 특색이다. 유주는 ..

전라남도 기념물 제28호_영광 내산서원

영광 내산서원에서 보유한 문화재 1.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13호 _ 영광 내산서원 강감회요 목판 2.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8호 _ 영광 내산서원 소장 필사 본건 거록(간양록) 등문적 일괄 3. 전라남도 기념물 제28호 _ 영광 내산서원 전라남도 기념물 제28호 _ 영광 내산서원 (靈光內山書院) 수 량 : 일원 지정일 : 1977.10.20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 22-2번지 시 대 : 1702 조선 중기 문신인 강항(1567∼1618)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강항은 공조 좌랑과 형조좌랑에 있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활동하다가 왜적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되었다. 일본에 있으면서 그 나라의 역사, 지리 등을 알아내어 고국으로 보내기도 하면서 일본에는 성리학..

전라남도 기념물 제46호_선암사 삼인당

전라남도 기념물 제46호 _ 선암사삼인당 (仙岩寺三印塘) 수 량/면적 : 일원 지정일 : 1980.06.02 소재지 :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죽학리) 삼인당은 긴 알모양의 연못 안에 섬이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선암사 기록에 의하면 신라 경문왕 2년(862)에 도선국사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삼인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의 삼법인을 뜻하는 것으로 불교의 중심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독특한 이름과 모양을 가진 연못은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다 선암사삼인당 (仙岩寺三印塘) 표지판 전라남도 기념물 제46호 _ 선암사삼인당 (仙岩寺三印塘) 2011.08.30.화요일, 순천 선암사 글 문화재청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전라남도 기념물 제245호 _ 해남 서동사 동백나무·비자나무 숲

전라남도 기념물 제245호 _ 해남 서동사 동백나무·비자나무 숲 (海南 瑞洞寺 冬柏나무·榧子나무 숲) 지정일 : 2011.08.26 소재지 : 회원면 금평리 산45 해남 서동사 후사면 숲정이는 동백나무와 비자나무가 혼효된 식생 군락으로 경관적 식물생태학적 가치가 있다. 크고 작은 동백나무는 총 140여 본으로 흉고 직경이 40~45cm 범위이고 수고는 4~6m로서 그 생륙도 활력도 비교적 양호하다. 비자나무 노거수는 큰 것은 흉고직경이 75~80cm, 수고는 12~18m이다. 동백나무, 비자나무 수령 및 식생분포로 보아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히 있으므로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하여 동백나무 및 비자나무 숲을 지속적으로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주요 비자나무들이다 * 천연기념물 제39호 _ 강진 삼..

전라북도 기념물 제9호_남원 교룡산성

전라북도 기념물 제9호 _ 남원교룡산성 (南原蛟龍山城) 면적/수량 : 일원 지정일 : 1973.06.23 소재지 : 전북 남원시 산곡동 16-1번지 남원 교룡산성은 해발 518m의 교룡산의 천연적인 지형지세를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3120m이다. 현재 무지개 모양으로 입구가 표현된 동문과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작은 성인 옹성, 그리고 군데군데 성벽이 남아 있다. 온전하게 남은 동문터와 수문에 보이는 성벽의 구조는 우리나라 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성안에는 우물 99개와 계곡이 있어서 산성 주변의 주민들이 유사시에 대피나 전투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좋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전기에는 군대의 식량을 저정하는 창고가 있었다. 산성을 언제 쌓았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정확하게 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