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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의 마음 8

<위봉사 태조암 구천오백불도>

_ 조선 1879년, 비단에 색, 금산사성보박물관무수히 많은 아미타부처의 모습을 그린 그림구천오백불도는 무수히 많은 부처의 모습을 그린 다불회도(多佛會圖)이다. 모든 시공간에 부처가 존재하며,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다불사상을 반영한 그림이다. 위봉사 태조암 구천오백불도는 총10폭이 남아있지만, 최소 11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천오백불도에 그려진 전각 현판에 '무량수각(無量壽閣)'이라고 쓰여 있어 『관무량수경(觀 無量壽經) 』 또는 『무량수경( 無量壽經) 』 칠보궁전 (七寶宮殿)의 무수한 부처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구천오백은 아미타불의 화신인 삼십육억일 천만구천오백 불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극락정토의 아미타불 화신을 수많은 부처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구천오백불도는 1879년 200여 명..

금산사사적(金山寺事蹟)

_ 중관(中觀) 해안(海眼, 15867~?), 조선 1705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중관 해인이 쓴 금산사 역사 정유재란으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된 금산사는 1601년부터 30여 년간 사찰을 재건하였다. 1635년, 중관 해안은 사찰의 역사와 주요 인물 그리고 전각과 산내 암자 등을 기록한 『금산사사적 』을 발간했다. 이 책은 사적기와 참고문헌을 대교(對校)하여 검증의 과정을 거친 뒤 1705년에 다시 편찬하였다. 해안은 외숙인 뇌묵처영을 스승으로 삼고 출가한 뒤 서산 휴정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임진왜란 다이에는 처영과 함께 의승군으로 활동하였다. 말년에는 금산사, 대둔산, 화엄사의 사적기를 찬술하였다. 전란으로 인해 소실된 사찰과 조선 불교의 역사를 복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2..

문화재/고문서 2024.07.18

<신증동국여지승람>

勝覽) > _ 조선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의 지리정보를 수록한 책 서거정(徐居正, 1420~1488) 등이 편찬한 『동국여지승람 』을 1530년에 증보한 책이다. 전국 군현의 지리정보와 함께 시문(詩文)이 수록되어 있다. 금구현 금산사 설명에서는 견훤에 대한 내용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후백제 견훤이 금산사를 창건했다고 기록하고 있어 금산사에서 견훤의 위상이 컸음을 알려 주고 있다. 견훤의 아들인 금강(金剛, ?~935)의 총애와 신검(新劍, 10세기 활동)의 반란으로 인한 유배와 도피에 대해서도 지면을 할애하여 서술하고 있다勝覽) >  2024.07.10, 국립전주박물관_미륵의 마음, 모악산 금산사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문화재/고문서 2024.07.16

보물 제940호_백지묵서 지장보살본원경

보물 제940호 _ 백지묵서 지장보살본원경 (白紙墨書 地藏菩薩本願經) 수   량 : 3권(권 상, 중, 하) 3첩지정일 : 1987.12.26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시    대 : 조선 1440년 지장보살본원경은 줄여서 ‘지장경’, ‘지장본원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장보살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중생을 교화하고자 노력하여, 죄를 짓고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까지도 평등하게 구제하고자 하는 큰 뜻을 세운 경전이다.이 책은 당나라의 법등(法燈)이 한문으로 번역한 것을 세종 22년(1440)에 해연 스님이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든 것이다. 흰 종이에 먹으로 글씨를 써서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는데, 권 상·중·하 모두 비단으로 싼 상자 안에 넣..

문화재/보물 2024.07.15

진표율사의 일생이 담긴 기록, 송고승전(宋高僧傳)

_ 찬녕(贊寧, 919~1002), 일본 20세기,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진표율사의 일생이 담긴 기록 『송고승전 』의 진표율사 전기는 가장 이른 시기 기록이다. 중국에 유학하지 않고, 전하는 저술이 없음에도 진표율사 전기가 중국 고승 전기에 실려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진표율사의 전기는 권 14 「명율(明律) 」 「백제국금산사진표전(百濟國金山寺眞表傳) 」에 실려 있다. 다른 기록과 달리 출가 동기가 상세히 나오고 활동 무대는 금산사에 한정되어 있다. 스승이나 『점찰경 』, 점찰법회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간자의 개수는 108개로 기록되어 있다. _ 찬녕(贊寧, 919~1002) 진표율사(眞表律師, 8세기 활동) 진표율사는 12세에 금산사의 숭제법사(崇濟法師, 8세기 활동)에게 출가하였습니다. 자신의..

문화재/고문서 2024.07.15

조경남(趙慶男)의 <난중잡록>

_ 조경남(趙慶男, 1570~1641), 조선 후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임진왜란 당시 뇌묵대사 처영의 활약을 담은 기록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남원 출신 산서(山西) 조경남이 1585년부터 1637년까지 57년 동안 나라의 역사적 상황을 상세히 기록한 책이다. 인조 때 『선조수정실록 』 편찬을 위해 원본을 빌려가 참고할 정도로 역사성을 인정받은 책이다. 임진왜란 당시 뇌묵대사 처영이 권율장군과 함께한 내용과 남원 교룡산성을 고쳐 쌓은 내용 등 처영의 활약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주목된다. 1593년(선조 26) 12월 5일원수 권율은 합천에 그대로 머물고, 승의장 첨지 처영으로 하여금 남원의 교룡산성을 고쳐 쌓게 하니, 처영이 의령으로부터 군사를 거느리고 나와서 교룡산성에 주둔하여 수..

문화재/고문서 2024.07.14

금구현 지도

_ 조선 1872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모악산과 금산사가 그려진 금구현 지도 1872년에 제작된 고지도로 조선시대 지도 가운데 지명과 지리 정보를 가장 상세히 담고 있다. 이 지도는 각 도별로 제작되어 제작 방식의 차이를 보이는 데, 호남지역은 오방색을 활용한 회화풍으로 제작한 점이 특징이다. 금구현 지도는 다른 지도에 비해 모악산이 품은 금산사의 모습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미륵전을 비롯하여 송대(宋臺)와 탑, 금강문 등이 묘사되어 있는 반면, 방등계단과 대적광전은 그려지지 않았다. 특히 3층의 미륵전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기되어 있어 읍치(邑治) 다음으로 중요하게 인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2024.07.10, 국립전주박물관_미륵의 마음, 모악산 금산사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모악산 금산사 편액

_ 조선 후기, 169×110cm, 금산사 성보박물관모악산 금산사가 새겨진 편액금산사 옛 금강문(金剛門)에 걸었던 편액이다. 산의 이름 모악산( 母岳山)과 절의 이름 금산사( 金山寺)를 세로로 써서 새겼다. 맨 왼편에 관지(款識)에는 '병술년 음력 섣달 16일, 편액글자를 찍어 새긴다. 선종과 교종이 머무르는 곳'이라 쓰여 있다. 편액이 만들어진 병술년(丙戌年)은 정유재란으로 완전히 소실된 가람을 다시 짓기 시작한 1646년 이후로 여겨진다.멀리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편액의 큰 글씨는 획이 굴고 강하며 짜임이 긴밀하다. 1910년에 촬영한 금강문 사진에 편액이 걸려 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1910년에 촬영한 금강문에 모악산 금산사 편액이 걸려 있는 모습 모악산 금산사(母岳山金山寺) 일주문 편액 모악산..

문화재/편액 202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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