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서원

선원 김상용과 공조판서 이상길 외 26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사당!,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_충렬사

기리여원 2018. 6. 4. 09:55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 _ 충렬사 (忠烈祠)  

 

지정일 : 1995.03.02

시   대 : 조선시대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충렬사로 232 (선원면)  

  

선원 김상용과 공조판서 이상길 외 26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사당이다. 김상용은 조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인천이 청나라 군사에게 함락되자 순절한 충신이다. 인조 19년(1641)에 지어 현충사라 불렀으나, 효종 9년(1658)에 나라에서 충렬사라는 이름을 다시 받았다. 1977년 보수하여 현재에 이른다.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동·서재는 없어지고, 사당과 책을 보관하는 전사청· 출입문인 외삼문 등이 남아있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 _ 충렬사 (忠烈祠)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선행리에 위치한 충렬사는 김상용 선생을 비롯한 병자호란과 신미양요 때 나라를 지키다 순절한 충신 28명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1641년(인조 19)에 건립하여 현충사(顯忠祠)라 부르다가 1658년(효종 9)에 국왕으로부터 충렬사란 이름을 받아 강화유수 허휘가 충렬사로 이름을 바꿨다. 김상용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왕실의 신주를 받들고 빈궁·원손을 수행해 강화도에 피난했다가 이듬 해 성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南門樓)에 있던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순절하였다. 충렬사를 건립할 당시에는 모두 7명을 배향하였으나, 이후 황선신과 강흥업이 추향되어 9명의 위패가 모셔졌고 그 후 충렬사 비기가 건립되었다. 이후 신미양요 당시 미군에 맞서 싸운 충신까지 배향하여 현재 모두 28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충렬사는 교육공간인 명륜당(明倫堂)과 동·서재는 없어지고, 현존 건물로는 한식목조 맞배지붕으로 된 14평의 사당(祠堂)과, 16평의 수직방(守直房), 14평의 전사청(典祀廳), 비각(碑閣), 외삼문(外三門) 등이 있으며, 1977년에 보수 정화하여 현재에 이른 것이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 _ 충렬사 (忠烈祠) 

 

강화도 선원면 강화산성 남쪽 언덕 아래에 위치한 충렬사. 강화에 남아 있는 유일한 서원으로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순절한 인물들을 모신 곳이다. 구한말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 _ 충렬사 (忠烈祠)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 _ 충렬사 (忠烈祠)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 _ 충렬사 (忠烈祠)

 

 

 

 

 

외삼문

  

 

외삼문

 

 

 

 

 

외삼문 내부

 

 

충렬사 비각

 

 

충렬사 비문(前)

 

 

 

 

 

충렬사 비문(後)

 

 

부엌과 창고가 있는 서원의 살림집인 수복방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동·서재는 없어지고, 사당과 책을 보관하는 전사청

 

앞면 5칸 규모로 비교적 큰 규모의 건물로 강당으로 사용했 던것으로 보인다.

 

성취당(性取堂) 편액

              

 

 

 

 

 

 

 

 

 

 

 

내삼문

 

 

내삼문 내부

 

 

사당인 충렬사(忠烈祠)

 

선원 김상용과 공조판서 이상길 외 26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사당.

 

충렬사(忠烈祠) 편액

 

 

 

 

 

 

 

 

 

 

문충공 김상용 위패

 

 

문충공 김상용 위패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 _ 충렬사 (忠烈祠)                                

 

글 문화재청, 강화군청 홈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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