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 _ 자계서원<영귀루,동.서재> (紫溪書院<詠歸樓,東.西齋>)
지정일 : 1975.12.30
소재지 : 경북 청도군 이서면 서원길 62-2 (서원리)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김일손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중종 13년(1518)에 지은 서원이다. 선조 11년(1578)에 다시 지었으며,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7년(1615)에 다시 짓고 김극일과 김대유를 더하여 모셨다. 현종 2년(1661)에 ‘자계(紫溪)’라는 사액을 받아 나라의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고종 8년(1871)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24년에 복원되었다.
‘자계’는 연산군 4년 무오사화(1498)로 김일손이 화를 입자 서원 앞을 흐르는 냇물이 3일 동안 붉게 변한데서 유래하였으며, 서원 이름도 자계서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로는 사당인 존덕사와 제사준비를 하는 전사청, 강당인 보인당, 신문, 영귀루, 동·서재 등이다. 이 중 영귀루와 동재·서재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영귀루는 서원에서의 여러 행사를 하고, 학생들이 모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숙식하는 생활공간이다. 영귀루 옆에는 김일손이 심었다고 전하는 은행나무가 있고, 원정비·신도비 등이 비각 안에 있다. 『연려실기술』등 수십 권의 문집이 소장되어 있으며, 유물로는 칠현금이 보관되어 있다.
지금은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매년 2월과 8월에 제사만 지내고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 _ 자계서원<영귀루,동.서재> (紫溪書院<詠歸樓,東.西齋>)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김일손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중종 13년(1518)에 지은 서원이다. 선조 11년(1578)에 다시 지었으며,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7년(1615)에 다시 짓고 김극일과 김대유를 더하여 모셨다. 현종 2년(1661)에 ‘자계(紫溪)’라는 사액을 받아 나라의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고종 8년(1871)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24년에 복원되었다
가계서원 유직문(惟直門)
가계서원 유직문(惟直門)
자계서원 영귀루(紫溪書院詠歸樓)
영귀루(詠歸樓)는 1699년(숙종 25) 중건되었으며, 동․서재와 함께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3칸 측면2칸으로 자연석의 초석상에 원주를 세워 누주(樓柱)로 삼고 마루를 놓아 다시 누를 가구하였다. 가구는 5량가로 공포는 주심포계에 익공이 절충한 모양이다. 특히 자연 그대로의 보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영귀루는 서원에서의 여러 행사를 하고, 학생들이 모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자계서원 영귀루(紫溪書院詠歸樓) 편액
자계서원 영귀루(紫溪書院詠歸樓) 편액
자계서원 영귀루(紫溪書院詠歸樓) 내부
자계서원 영귀루(紫溪書院詠歸樓) 내부
자계서원 영귀루(紫溪書院 詠歸樓)
자계서원 사적비(紫溪書院 事蹟碑)
자계서원 탁영선생 추모비
탁영선생 순절 500주년 추모비 1998년
김일손(1464~1498)선생은 성종17년(1486)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에 등용된 후 청환직을 거쳐 이조정량이 되었다.
연산군 4년(1498) 『성종실록 』을 편찬할 때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실은 것이 화근이 되어 사형되었다. 이 사건을 무오사화(戊午士禍)라 한다.
자계서원 동재인 운계정사(雲溪精舍)
자계서원 동재인 운계정사(雲溪精舍)
자계서원 동재
자계서원 서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 _ 자계서원<영귀루,동.서재> (紫溪書院<詠歸樓,東.西齋>)
건물 배치 중심에 있는 보인당(輔仁堂)은 정면5칸, 측면2칸의 고상형(高床形) 집이며 겹처마 팔작지붕에 활주가 있다. 가구는 5량가이며 연등천장에 우물마루를 깔고 공포는 익공계 이다. 평면은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이며 전면에 반 칸 규모의 툇칸을 두었다. 전면에 솟을삼문 형식의 문간채를 두었으며 창고로 구성되어 있다
자계서원(紫溪書院) 편액
자계’는 연산군 4년 무오사화(1498)로 김일손이 화를 입자 서원 앞을 흐르는 냇물이 3일 동안 붉게 변한데서 유래하였으며, 서원 이름도 자계서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자계서원(紫溪書院) 편액
강당인 보인당(輔仁堂)
보인당(輔仁堂) 편액
자계서원 尊德祠(존덕사)
1615년좌우에 조부 김극일과 김대유을 추가 봉안하였다
유현문(幽賢門)
자계서원 은행나무는 수령이 500년이 되고, 탁영 김일손이 생전에 손수 직접 심은 나무입니다.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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