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333호 _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陜川 海印寺 乾漆希朗大師坐像)
수 량 : 1구
지정일 : 2020.10.21
시 대 : 고려시대
소재지 : 법보종찰 해인사
국보 333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은 신라 말∼고려 초에 활동한 승려인 희랑대사(希朗大師, 10세기)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초상조각[祖師像;僧像]으로서, 고려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사한 시기 중국과 일본에서는 고승(高僧)의 모습을 조각한 조사상을 많이 제작했으나, 우리나라에는 유례가 거의 전하지 않으며 이 작품이 실제 생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재현한 유일한 조각품으로 남아 있다. 희랑대사는 화엄학(華嚴學)에 조예가 깊었던 학승(學僧)으로, 해인사의 희랑대(希朗臺)에 머물며 수도에 정진했다고 전하며 태조 왕건(王建)의 스승이자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도움을 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희랑대사좌상’은 조선시대 문헌기록을 통해 해인사의 해행당(解行堂), 진상전(眞常殿), 조사전(祖師殿), 보장전(寶藏殿)을 거치며 수백 년 동안 해인사에 봉안(奉安)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가야산기(伽倻山記)」등 조선후기 학자들의 방문기록이 남아 있어 전래경위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이 작품은 얼굴과 가슴, 손, 무릎 등 앞면은 건칠(乾漆)로,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해 만든 당시 제작기술이 잘 남아 있고 뛰어난 조형성을 지닌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아 왔다. 이렇듯 앞면과 뒷면을 결합한 방식은 보물 제1919호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의 예처럼 신라∼고려 초에 해당하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불상조각에서 확인되는 제작기법이다. 건칠기법이 적용된 ‘희랑대사좌상’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신륵사 조사당 목조나옹화상’(神勒寺 祖師堂 木造懶翁和尙, 1636년), ‘부석사 조사당 소조의상대사상(浮石寺 祖師堂 塑造義湘大師像, 고려 말∼조선 초)’, ‘괴산 각연사 유일대사상(槐山 覺淵寺 有一大師像, 조선 후기)’ 등 다른 조사상들과 달리, 관념적이지 않고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마르고 아담한 등신대의 체구, 인자한 눈빛과 미소가 엷게 퍼진 입술, 노쇠한 살갗 위로 드러난 골격 등은 매우 생동감이 넘쳐 마치 살아생전의 모습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가슴에는 ‘흉혈국인(胸穴國人)’이라는 그의 별칭을 상징하듯,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이 흉혈(胸穴)은 해인사에 전래된 설화에 의해 희랑대사가 다른 수님들의 수행 정진을 돕기 위해 가슴에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고승의 흉혈은 보통 신통력을 상징하며 유사한 사례를 ‘북한산 승가사 승가대사상’(1024년, 보물 제1000호)에서도 볼 수 있다. 이상 서술한 바와 같이 기록과 현존작이 모두 남아있는 조사상은 지금까지 ‘희랑대사좌상’이 거의 유일하게 알려져 있고 실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실제 인물처럼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내면의 인품까지 표현한 점에서 희소성ㆍ예술성이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후삼국 통일에 기여하고 불교학 발전에 크게 공헌한 희랑대사라는 인물의 역사성과 시대성이 뚜렷한 제작기법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조각상은 고려 초 10세기 우리나라 초상조각의 실체를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자, 희랑대사의 높은 정신세계를 조각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인류문화사적으로 의의가 높고 역사적ㆍ예술적ㆍ학술적 가치가 탁월하므로 국보로 지정해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 보존ㆍ관리하는 것이 타당하다.
* 2020.10.21일부로 보물 제999호에서 국보 제333호로 승격하였습니다.
국보 제333호 _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陜川 海印寺 乾漆希朗大師坐像)
고려의 건국과 희랑대사
위대한 성인을 우연히 만난다는 스토리는 영웅 일대기에 꼭 등장합니다. 새로운 세계로 출발한 영웅은 예상치 못한 도전을 맞닥뜨리고, 지혜와 연륜이 있는 인물이 나타나 어려움에 처한 주인공을 돕습니다. 태조 왕건과 희랑대사의 만남도, 그러한 결정적인 만남이었습니다. 희랑대사는 왕건의 정신적 지주로 후삼국 시대 수세에 몰린 왕건을 도왔으며, 고려 건국이후에는 왕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국가 수호의 핵심이 되었던 '왕권'과 국가 운영의 '정신적 기반'을 상징하는 두 사람의 조각상은 고려시대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인물 조각입니다. 조성된 후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스승과 제자의 천백 년 만의 만남이 언젠가 반드시 이뤄지기를 고대합니다
건칠희랑대사좌상
희랑대사의 얼굴과 신체, 체격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한 초상 조각으로 10세기 중반 조각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자 우리나라에 유일한 고승초상조각입니다. 동시대 중국과 일본에서는 입적한 고승에 대한 추모와 숭앙의 의미로 고승의 상을 활발히 제작한 데 반해 우리나라에는 유례가 거의 전하지 않습니다. 앞면은 건칠, 뒷면 일부는 목조로 이루어졌는데, 이렇게 재료를 혼용하는 일은 이례적입니다. 18세기의 기록에서 이 상의 얼굴과 손을 까맣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지금의 채색은 조선시대 18세기 이후에 보수하면서 입혀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슴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희랑대사가 가슴에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함으로써 다른 스님들의 수행 정진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해인사에 전해옵니다
국보 제333호 _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陜川 海印寺 乾漆希朗大師坐像)
국보 제333호 _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陜川 海印寺 乾漆希朗大師坐像)
국보 제333호 _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陜川 海印寺 乾漆希朗大師坐像)
평양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서 있는 태조 왕건상이 오지 못해 아쉽습니다.
올 곳을 기대하면서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2018.12.09, 국립중앙박물관-대고려전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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