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700년 만에 첫 나들이, 국보 제337호_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기리여원 2018. 12. 1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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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337호 _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 및 腹藏遺物)

 

 

국보 제337호 _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 및 腹藏遺物)

 

2015.09.20  청양 장곡사

 

 

700년 만에 첫 나들이 한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

 

국보 제337호 _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 및 腹藏遺物)

 

수  량 : 불상 1구, 복장유물 13건 18점

지정일 : 2022.06.23

소재지 : 충청남도 청양군 장곡길 241 (대치면, 대한불교조계종 장곡사)

시  대 : 1346년(충목왕 2)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나, 이후 발원문을 포함한 복장유물이 추가로 연구됨에 따라 제작시기와 발원자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발원문에는 1346년(고려 충목왕 2)이라는 정확한 제작시기가 있어, 고려 후기 불상 연구의 절대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다. 고려 후기 불상조각 중 정확한 약기인(藥器印)을 취하고 있는 약사여래의 도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머리와 이목구비, 신체와 불신의 표현 등에서 14세기 불상의 전형 양식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 시기 불상 중에서도 뛰어난 예술적 조형성을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주조기술법에 있어서도 내외부의 주조결함이 거의 없을 정도로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 주는 점도 높이 평가된다. 일반적으로 고려 후기에 제작된 불상은 대부분 아미타 정토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이 불상 역시 이러한 신앙적 배경과 더불어 고려 후기 유일의 금동약사여래상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된다. 따라서 이 불상을 통해 당시 아미타정토 신앙뿐만 아니라 약사 신앙의 흔적을 분명하게 알려 준다는 점에서 신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장곡사 불상의 지정가치를 검토하는데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으로 불상이 보여주는 조형적·도상적 중요성 뿐 아니라 복장발원문에 기재된 풍부한 인명정보를 들 수 있다. 장곡사 불상 복장에는 약1,116명에 달하는 발원자의 정보를 담고 있다. 1천명이 넘는 발원자의 등장은 고려 후기 발원문 중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이들 시주자 인명에 대한 분석을 통해 문헌 자료가 절대 부족한 고려사 복원에 중요한 사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성불원문을 지은 백운(白雲)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불설직지심체요절』을 편찬한 백운경한(白雲景閑, 1298∼1374)과 동일인물로 추정되고, 그는 고려 후기 나옹혜근(懶翁慧懃, 1320∼1376),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와 함께 고려 말 ‘삼사(三師)’로 추앙받았던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하는 기록이 부족하여 그의 행적과 불교사적 연구는 미진하였다. 그러나 이 성불원문이 확인됨에 따라 공민왕 이전의 그의 구체적인 신앙 활동을 엿볼 수 있어 그의 생애 연구에도 활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장곡사 불상의 제작을 주도한 계층은 고려 왕족을 비롯해 하급무관과 군부인들로 보이며, 이들은 몽고침탈기 동안 대표적인 불사(佛事) 주도층이었다. 아마도 이들은 본인이나 가족 중에 전쟁에 직접 참전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불사를 통해 자신과 가족의 무병장수와 전쟁 중에 죽은 친족의 극락왕생을 발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명 중에는 공민왕의 몽고식 이름인 바얀테무르(伯顔帖木兒)를 비롯해 금타이지(金朶兒只), 도르지(都兒赤)처럼 몽고식 이름이 눈에 띠는데, 당시 고려 사회에 스며든 몽고 풍속의 실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는 역사의 기록 속에서 찾을 수 없는 14세기 중엽 경의 시대상을 꾸밈없이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ㆍ학술적 의의를 지닌다. 이러한 정황 등을 종합해 볼 때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은 미술사 뿐 아니라 불교사, 사회사적 측면에서도 고려 14세기 중반의 역사상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발원문 및 조성에 참여한 시주자가 기록된 묵서가 있는 직물편, 그리고 공예적 수준이 뛰어난 향낭(香囊)과 함께 국보로 가치가 충분하다.

 

*2022.06.23일부로 보물 제337호에서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에서 복장유물이 추가되어 국보 제337호로 승격되었습니다. 

 

글 문화재청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표지판

 

 

국보 제337호 _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

 

 

국보 제337호 _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

 

 

국보 제337호 _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

 

 

 

▼ 불교중앙박물관_만월의 빛, 정토의 빛 입니다.

 

국보 제337호 _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 및 腹藏遺物), 발원문

 

장곡사 약사부처님의 발원문은 길이 약 1,058cm, 너비 47.8cm의 붉은 비단에 5cm 내외의 묵서로 쓰여 있다.

발원문에는 약사부처님의 공덕과 함께 신앙한 사람들이 받을 인연법에 대한 내용과 제자들에게 구리로 약사부처님을 조성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어 이 공덕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며, 황제와 임금, 문무관료,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고 있다. 발원자는 앞면에 941명, 행간 여백에 39명, 뒷면에는 98명의 이름이 쓰여 있다. 발원자들 중에는 행적이 확인되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후궁인 안경옹주 박씨가 있으며, 공민왕의 몽고식 이름인 바얀테무르[伯顔帖木兒]의 장수를 기원하는 발원도 있어 특히 주목된다.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 및 腹藏遺物), 발원문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 및 腹藏遺物), 오색번(五色幡), 고려 1346년

 

오색번은 각색의 직급직물을 사용하고 자수 및 금박을 곁들였으며, 상단의 호리병 부분과 하단의 제비부리 댕기모양의 드림으로 이루어졌다. 호리병 형태는 앞 · 뒷면을 동일하게 제작하였는데 녹, 황, 백, 홍의 오방색 직급 8종류 17조각으로 구성하였다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 및 腹藏遺物), 비단주머니(絹嚢), 고려 1346년

 

비단주머니는 귀주머니의 형태로 홍색과 녹색의 대비되는 색을 상하좌우에 구성하고 안갑은 홍색견을 대고 상단을 가장자리 수로 마무리하였다. 주머니 안에는  풀솜(雪綿子)에 짜여진 각종 향이 들어 있어 고려시대 향낭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 및 腹藏遺物), 청색연화조문릉(靑色蓮花鳥紋綾), 고려 1346년

긴 형식의 연꽃 문양 비단에 묵서로 약사부처님에 대한 발원과 발원지의 이름이 함께 적혀 있다.

 

*2023.03.23, Update함.

 

2018.12.09, 국립중앙박물관_대고려전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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