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223호_연천 숭의전지(2019.12.01)

기리여원 2019. 12. 2. 13:10


사적 제223호 _ 연천 숭의전지 (漣川 崇義殿址)



홍살문 앞에는 왕건이 오가면서 마셨다는 어수정(御水井)



숭의전 입구의 홍살문과 하마비



숭의전으로 가는 나즈막한 경사로



사적 제223호 _ 연천 숭의전지 (漣川 崇義殿址


면   적 : 17,851㎡

지정일 : 1971.12.28

소재지 : 경기 연천군 미산면 숭의전로 382-27 (아미리)

시   대 :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고려 태조를 비롯한 4왕과 고려조의 충신 16인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숭의전이 있던 자리이다.

태조 이성계는 1397년에 고려 태조 왕건의 전각을 세웠고 정종 원년(1399)에는 태조 외에 고려의 혜종, 성종, 현종, 문종, 원종(충경왕), 충렬왕, 공민왕의 제사를 지냈다. 그후 세종 5년(1423), 문종 2년(1452)에 고쳐지었다. 문종 때는 전대의 왕조를 예우하여 ‘숭의전’이라 이름 짓고, 고려왕조 4왕인 태조, 현종, 문종, 원종의 위패를 모시고 고려의 충신 16명을 함께 제사지내게 하였다.

건물의 관리도 고려왕조의 후손에게 맡겼는데 이것은 조선왕조가 고려 유민을 무마하여 왕족의 불평을 없애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일제시대에는 조선총독부가 이를 계승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전각이 소실되었다.

완강하게 조선을 거부하였던, 고려시대의 왕씨 문중들이 갖가지 설움을 억누르면서 옛 고려왕조를 사모한 충절이 깃들인 곳이다.














사적 제223호 _ 연천 숭의전지 (漣川 崇義殿址






숭의전(嵩義殿) 


고려 4왕(태조, 현종, 문종, 원종)의 위패를 모신 정전(正殿)


숭의전(嵩義殿) 



태조 왕건의 위패와 영정사진



원종 위패



문종 위패



현종 위패



이안청(李安廳) 


숭의전의 청소 및 공사 시에 위패를 잠시 모셔 두는 곳 (위패를 옮겨 모실 때는 이안제(移安祭)와 환안제(還安祭)를 올려 고유례(告由禮)를 행함)


중작숭의전(重作崇義殿)


麗組祠宮四百秋 (여조사궁사백추) : 숭의전을 지은 지가 사백년이 되었는데

誰敎木石更新修 (수교목석경신수) : 누구로 하여금 목석으로 새로 수리하게 하는고

江山豈識興亡恨 (강산기식흥망한) : 강산이 어찌 흥망의 한을 알리요

依舊蠶頭出碧流 (의구잠두출벽류) : 의구한 잠두봉은 푸른 강물위에 떠있구나


往歲像心滿月秋 (왕세상심만월추) : 지난 세월 만월추에 마음 슬퍼하였거늘

如今爲郡廟宮修 (여금위군묘궁수) : 지금은 이 고을 군수가 되어 묘궁을 수리하였네

聖朝更乞麗牲石 (성조경걸여생석) : 조선은 이 고을 군수가 되어 묘궁을 수리하였네

留與澄波萬古流 (유흥징퍄만고류) : 아마도 숭의전은 징파강(임진강의 별호)과 더불어 길이 이어

                                                    리라


이 칠언팔구는 1789년9정조 13년) 마전군수였던 한문홍(韓文洪)이 숭의전 수리를 마치고 옛 왕조의 영화와 쇠락 속에 담긴 무상함을 담아 숭의전이 내려다보이는 잠두봉 절벽에 새겨둔 것이다.


배신청(陪臣廳)


고려조의 충신 16명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복지겸(卜智謙), 홍유(洪儒), 신숭겸(申崇謙), 유금필(庾黔弼), 배현경(裵玄京), 서희(徐熙), 강감찬(姜邯贊), 윤관(尹瓘), 김부식(金富軾), 김취려(金就礪), 조충(趙沖), 김방경(金方慶), 안우(安祐), 이방실(李芳實), 김득배(金得培), 정몽주(鄭夢周) 등을 배향토록 하였다


고려조 16공신의  위패.






전사청(典祀廳) 


제례를 사용할 제수를 존비하고 제기를 보관하는 곳. 숭의전 제사는 생식제례 임으로 전사청에는 굴뚝이 없음.


앙암재(仰巖齋)


제례때 사용하는 향, 축문, 폐백,제복, 륜관, 홀, 목화, 관대, 폐옥, 후수, 사모 등을 보관하고 제례시에 헌관(獻官), 집사(執事)를 분정(分定)하는 업무를 수행하며 제례 전반에 대한 습의(習儀)를 행하는 곳


숭의전에 모셔졌던 태조 왕건의 동상


왕건의 동상은 본래 고려 도읍인 개경에 있었으나 조선이 개국하고 개경의 고려 종묘를 헐고 연천의 마전 영암사에서 전조의 제사를 모시게 되면서 이곳으로 옮겨 오게 되었다. 그러나 세종 대에 이르러 주자가례에 입각한 제례법의 개혁으로 동상과 진영(초상화) 을 목주(위패)로 대신하게 되자 잠시 충청도 문의현으로 옮겨 보관하였다가 세종 11년 현능 곁에 매장하였다. 최근 고려 태조 왕건의 능인 현능 정비공사 때 발견되었으나 처음에는 북한 학자들이 금동 불상으로 잘못 판단하여 개성박물관에 보관해오다 1997년 개성박물관을 방문한  서울대 노명호 교수가 왕건의 동상임을 알아내어 현재는 평양의 중앙역사박물관으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수령이 550년 된 보호수인 느티나무



수령이 550년 된 보호수인 느티나무 2그루











글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