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거북선을 만들었던 곳! 사적 제392호_여수 선소유적(2020.05.06)

기리여원 2020. 5. 9. 08:53


사적 제392호 _ 여수 선소유적 (麗水 船所遺蹟)


면   적 : 133,474㎡

지정일 : 1995.04.20

소재지 : 전남 여수시 시전동 708번지 외

시   대 : 조선시대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던 자리이다. 특히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한 거북선을 만들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도상으로 보면 가막만의 가장 북쪽에 조선소가 있으며 조선소의 바다 입구에는 가덕도와 장도가 조선소의 방패 구실을 하고 있다. 또한 먼 바다에서 보면 육지처럼 보이고, 가까이 봐도 바다인지 호수인지 알아보기 어려워 중요한 해군 군사 방어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거북선을 만들고 수리했던 ‘굴강’, 칼과 창을 갈고 닦았던 ‘세검정’, 수군지휘소였던 ‘선소창’, 수군들이 머물렀던 ‘병영막사’, 거북선을 매어 두었던 ‘계선주’, 칼과 창을 만들던 ‘풀뭇간’, 왜군들의 활동을 살피던 ‘망해루’, 말과 수군이 훈련하던 ‘망마기마대’, 창을 던지고 활을 쏘는 연습장인 ‘궁장사’, 일반인의 통행금지를 표시했던 벅수(석인) 등 다양한 관련 유물들이 남아 있으며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 변씨부인을 모셨던 곳인 ‘자당기거지’가 있다.


여수 선소유적 (麗水 船所遺蹟) 표지판



여수 선소유적 (麗水 船所遺蹟) 표지석



선소유적 입구에 세워진 나의 살던 고향 '선소(船所)' 표지석



선소마을 입구에 세워진 벅수


벅수


여수 지역에서는 돌로 만든 장승을 '벅수'라고 한다. 선소마을 입구에 한 쌍,  맞편 망마산 기장골에 한 쌍, 굴강에 한 쌍 해서 선소주변에는 벅수 세 쌍이 남아 있다. 120cm 남짓한 키에 모두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나 심하게 마모되어 있다.


마을 입구 벅수 한 쌍 중 문관석 형상을 한 왼쪽 벅수는 눈을 위로 치켜뜨고 두드러진 코 위로 굵은 코주름이 새겨져 있으며 다문 입술 밑으로는 턱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오른쪽 벅수는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드나 가슴에 '화정려(火正黎)'라고 새겨진 명문이 있다. 나머지 벅수들은, 굴강 왼쪽의 벅수가 전면 얼굴 형태로 다듬은 것이 확인되고 오른쪽 벅수는 투구 같은 것을 쓰고 있어 무인석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형상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산소유적 입구에서 바라본 굴강과 수군기



세검정으로 가는 길 좌측에 세워진 정자


그냥 지나갑니다.











굴강(掘江) 주변의 느티나무군


오늘 따라 날씨가 덥습니다.  잠시 쉬어갑니다.


굴강 벅수


굴강 왼쪽의 벅수가 전면 얼굴 형태로 다듬은 것이 확인되고 오른쪽 벅수는 투구 같은 것을 쓰고 있어 무인석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형상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굴강(掘江) 주변의 느티나무군



거북선건조 및 대피한 곳 굴강(掘江)



거북선을 만들고 수리했던 ‘굴강(掘江)’






거북선건조 및 대피한 곳 굴강(掘江)



거북선을 만들고 수리했던 ‘굴강(掘江)’



대장간


물을 모으는 집수구와 쇠를 불에 달구어 벼리는 단야로가 있는 것으로 보아 군기를 만들고 수리하던 대장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집수구의 남쪽 면은 자연 암반층이지만 북쪽면은 인위적으로 만든 흔적이 있다. 암반의 중심 부분에 직경 10~20cm의 자갈들이 있는데 여기서 물이 계속 솟아 나와 지속적으로 물이 공급되야 하는 단야로를 설치하기에 적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계선주(繫船柱)


계선주는 선박을 매어 두는 기둥으로, 높이는 1.4m이다. 임진왜란 때 이 기둥에 거북선과 판옥선을 매어 두었다고 전해 왔으나, 그 자리가 해안선이 돌출한 선소의 초소 격인 곳이어서 선소를 지키던 해안 벅수로 추정하기도 한다.


계선주(繫船柱)









세검정(洗劍亭)과 수군기(水軍器)로 들어가는 출입구



집무 및 지휘소기능을 담당 했던 세검정(洗劍亭)


세검정은 집무 및 지휘소기능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검정 터에 남아 있던 주춧돌의 간격으로 보아 정면의 크기는 작아도 7칸에 길이 15.8m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옆면의 크기는 알 수 없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1986년에 맞배지붕의 앞면은 7칸, 옆면은 1칸 규모로 세검정을 복원하였다


세검정(洗劍亭)


1986년에 복원한  건물로 앞면 7칸, 옆면 1칸으로  맞배지붕입니다 








세검정(洗劍亭) 현판



물고기 모양의 자물쇠



세검정(洗劍亭) 측면



군사 무기를 보관 했던 창고인  수군기(水軍器)


군기고(수군기)는 세검정과 같이 선소의 1차 발굴 조사 뒤에 복원한 건물이다. 발굴 조사 결과 외부의 침입을 막을 수 있도록 주춧돌과 주춧돌 사이 벽체를 토담으로 튼튼하게 쌓았는데, 건물 터 앞에서 쇠로 된 화살촉, 배 못들이 나온 것에서 군사 무기를 보관 했던 창고로 추정되고 있다. 복원한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서향이다



수군기(水軍器)


1986년에 복원한  건물로 앞면 4칸, 옆면 1칸으로  맞배지붕입니다 


수군기(水軍器)



수군기(水軍器) 후면



감사합니다.


글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