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휘원(서울 永徽園), 순헌황귀비 엄씨의 원(무덤)
사적 제361호 _ 서울 영휘원과 숭인원 (서울 永徽園과 崇仁園)
면 적 : 55,015㎡
지정일 : 1991.10.25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홍릉로 90 (청량리동, 영휘원)
시 대 : 1911년
영휘원은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원(무덤)이고, 숭인원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의 첫째아들 이진 원손의 원이다.
영휘원은 대한제국 1대 고종의 후궁이자 의민황태자의 사친(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1854~1911)의 원이다. 황귀비는 엄진삼의 장녀로 8살에 입궐하여 명성황후의 시위상궁이 되었다가, 1897년 황태자(영친왕)을 낳아 고종의 후궁이 되었다. 1903년(광무 7년) 황귀비로 책봉되고 경선궁에 살았다. 황귀비는 여성의 신교육을 위해 진명여학교와 명신(숙명)여학교를 설립하였고, 양정의숙(양정중고교)이 재정난을 겪자 땅 200만 평과 내탕금을 기증하는 등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인재를 키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경술국치(1910년) 후 1911년 덕수궁 즉조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신주는 덕안궁에 모셨다가, 이후 덕안궁은 육상궁 경내로 옮겨졌다. 봉분(원침)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등을 배치하였고, 원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등이 있다.
숭인원은 의민황태자의 첫째아들 이진 원손(1921~1922)의 원이다. 원손은 의민황태자(영친왕)와 황태자비 이씨(방자)의 첫째아들로 일본에서 태어났다. 이듬해에 황태자 내외와 함께 잠시 귀국하였으나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전에 덕수궁 석조전에서 급사하였다. 순종황제가 원손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후하게 장례를 치르도록 명을 내려, 현재의 자리에 원을 조성하였다. 봉분(원침)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등을 배치하였고, 원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등이 있다. 석물과 봉분의 크기는 다른 원에 비해 작게 조성하였다.
서울 영휘원, 숭인원 주출입구
영휘원 홍살문 및 정자각
영휘원 정자각 및 비각
영휘원(永徽園)
조선 26대 고종황제(高宗皇帝) 후궁(後宮)인 순헌귀비(純獻貴妃) 엄씨의 원(圓)이다. 왕의 사친 또는 왕세자와 그 빈의 무덤을 원이라고 한다
순헌귀비(1854~1911)는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영왕 英王)의 어머니로 명성왕후가 일본인에 의해 시해된 후 고종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조선총독 이등박문(伊藤博文)에 의해 황태자로 책봉된 영왕(永王)은 1907년에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인질로 일본에 강제로 잡혀 있다가 1963년 귀국하였으나 1970년 병으로 돌아가셨다.
신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귀비는 양정의숙(養正義熟), 진명여고(進明女學校)를 설립하였고. 숙명여학교(淑明女學校)의 설립에 기부하여 근대 사학(私學)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봉분에는 곡장(曲牆)이 둘러지고, 석물은 석양(石羊), 석호(石虎), 상석床石(홍유석 魂遊石)과 망주석(望柱石), 장명등(長明燈), 석마(石馬) 등이 배치되어 있다. 부속 건물로는 정자각(丁子閣)과 홍살문(紅箭門), 비각(碑閣)등이 있다.
영휘원 정자각(永徽園 丁子閣)
영휘원 비각(永徽園 碑閣)
순헌귀비 영휘원(純獻貴妃 永徽園)
순헌황귀비 엄씨(純獻皇貴妃 嚴氏 : 1854~1911)의 원(遠)
어정(御井)
이곳은 임금에게 올릴 물을 긷는 우물입니다
어정(御井)
천연기념물 제 506호 _ 서울 영휘원 산사나무, 지정해제
수 량 : 1주(314㎡)
해 제 일 : 2015.03.15
해제사유 : 2012년 태풍 보라벤 강풍피해 및 생리적 노쇠 등에 의한 복합적인 원인으로 완전 고사하여 문화재로서의 가치 상실
▼ 여기서부터는 숭인원입니다.
숭인원(崇仁園)(이진 원손)
숭인원은 의민황태자(영친왕)懿愍皇太子(英親王)와 의민황태자비 이씨(방자))懿愍皇太子妃 李氏(方子)의 첫째 아들인 이진 원손(李晉, 園孫, 1921~1922)의 원(園)이다
이진은 일본에서 태어나, 1922년에 황태자와 함께 잠시 귀국하였다가,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에 세상을 떠났다.
순종 황제는 이진의 죽음을 슬퍼하여 후하게 장례를 치르도록 명하였다. 승인원은 순종 황제의 명으로 특별히 원으로 조성되었다. 영휘원 형식과 비슷하게 조성하였으나 호석(護錫, 둘레돌)과 석양(石羊)은 세우지 않았다.
숭인원 홍살문과 정자각
숭인원 정자각(崇仁園 丁子閣)
숭인원 비각(崇人園 碑閣)
숭인원의 비석, 원손 숭인원(元孫 崇仁園)
의민황태자(영친왕)懿愍皇太子(英親王)와 의민황태자비 이씨(방자))懿愍皇太子妃 李氏(方子)의 첫째 아들인 이진 원손(李晉, 園孫, 1921~1922)의 원(園).
순헌황귀비의 재실
재실뒤에 고들빼기 꽃이 피었습니다.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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