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충청북도

충청북도 기념물 제68호_청주 최명길 묘소

기리여원 2021. 4. 22. 13:48

충청북도 기념물 제68호 _ 청주 최명길 묘소 (淸原 崔鳴吉 墓所)

 

수량/면적 : 일곽

지정일 : 1984.12.31

소재지 :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253-3

 

조선 중기 문신인 지천(遲川) 최명길(1586∼1674)의 묘소이다.

일찍이 이항복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다. 선조 38년(1605)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다. 광해군 6년(1614) 명나라와의 문제로 관직을 박탈당하였다가 1623년 인조반정의 공신이 되어 완성부원군이 되었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청과 화의를 맺을 것을 주장하여 전쟁을 해결하였으며 다음해에 영의정에 올랐다.

봉분이 3기이며 가운데 있는 선생의 봉분 아래에는 둘레석을 둘렀다. 묘소 앞에는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는데 숙종 28년(1702)에 세운 것이다.

 

청주 최명길 묘소 표지판

 

 

이 곳에서 500m

 

 

최명길 신도비와 묘소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9호_ 청주 최명길 신도비

 

 

신도비에서 묘소까지 박석을 깔아 놓았습니다. 

 

 

청주 최명길 묘소 (淸原 崔鳴吉 墓所)

 

 

청주 최명길 묘소 (淸原 崔鳴吉 墓所)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오른 분의 묘소가 화려하지도 않고 평범한 묘소입니다.

 

묘에 호석을 두른 가운데 묘가 최명길선생의 묘입니다.

서쪽에 있는 묘는 첫번째 부인 인동장씨(仁東張氏)의 묘이며, 동쪽에 있는 묘는 두번째 부인 양천허씨(陽川許氏)의 묘이다.

 

최명길선생의 묘표와 상석

 

 

최명길선생의 묘표(墓表) 정면

 

큰글씨는 ‘조선상국 증시문충지천최공명길지묘(朝鮮相國贈諡文忠遲川崔公鳴吉之墓)’라고 되어 있고 왼쪽에 작은 글씨로 ‘영의정 의령남구만서(領議政宜寧南九萬書)’라고 되어 있다.

묘표의 각자(刻字)는 남구만(南九萬)이 썼다.

 

최명길선생 묘소 앞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

 

 

 

최명길선생 묘표(墓表) 후면

 

 

호석을 두른 최명길선생의 묘

 

 

청주 최명길 묘소 (淸原 崔鳴吉 墓所)

 

 

청주 최명길 묘소 (淸原 崔鳴吉 墓所)

 

 

최명길선생 묘에서 자라고 있는 조개나물

조개나물은 할미꽃처럼 햇빛이 잘 쬐는 풀밭이나 잔디밭에서 자라는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2021.04.21. 청주 북이면 대율리

글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