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계서원에 있는 지정문화재
1. 천연기념물 제300호 _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
2. 경상북도 기념물 제160호_섬계서원
경상북도 기념물 제160호 _ 섬계서원 (剡溪書院)
수량/면적 : 1곽(4동)
지정일 : 2007.12.28
소 재 지 :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445-1
剡溪書院은 박팽년과 같이 단종 복귀를 꾀하다가 수절한 白村 金文起(1399-1456)선생의 충절․강직함을 추모하고 그의 맏아들 영월군수 如甁齋 玄錫公, 盤谷 張志道, 節孝 尹殷保, 南溪 서질을 배향하기 위하여 1802년 건립하였다.
大院君의 書院 철폐령으로 서원이 철거될 때 그 자리에 白村 金文起 선생의 院墟碑를 세웠으며, 그 후 여러 차례 중건․보수를 통하여 건립 당시의 건축 형태를 지키지 못하고 건축적으로는 뚜렷한 특징은 없으나 역사적 측면에서 端宗 복위 문제로 죽은 김문기의 복권과 추모가 어떠한 경위로 이루어지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 현장으로서 지정가치가 있어 기념물로 지정한다.
섬계서원 표지판
섬계서원 전경
섬계서원 주출입문인 유의문(由義門)
섬계서원 주출입문인 유의문(由義門)
섬계서원 전경
강학공간인 경의재(景毅齋)
섬계서원(剡溪書院)은 박팽년과 같이 단종 복귀를 꾀하다가 수절한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 1399-1456) 선생의 충절 강직함을 추모하고 그의 맏아들 영월군수 여병재(如甁齋) 현석공(玄錫公), 반곡(盤谷) 장지도(張志道), 절효(節孝) 윤은보(尹殷保), 남계(南溪) 서질을 배향하기 위하여 1802년 건립하였다.
섬계서원 현판
섬계서원 측면
섬계서원 후면
백촌 김선생 원허비(白村 金先生院墟碑)
섬계서원 내삼문(內三門) 및 세충사(世忠祠)
사당인 세충사(世忠祠)
세충사(世忠祠)에는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를 주벽(主壁)으로 여병재(如甁齋) 현석공(玄錫公)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동별묘(東別廟)
동별묘(東別廟)에는 영남(嶺南)의 삼현(三賢)으로 불리는 반곡(盤谷) 장지도(張志道), 절효(節孝) 윤은보(尹殷保), 남계(南溪) 서질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천연기념물 제300호 _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 (金陵 釣龍里 銀杏나무)
금릉 조룡리 운행나무는 마을의 뒤편에 자리한 섬계서원의 뒤뜰 담장의 왼쪽 구석에 있다. 담장 구석에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수관의 대부분이 담장 밖으로 뻗어 있으며, 뿌리도 담장 밖 지면에 많이 노출되어 있으나 보호울타리도 없다.
현재 은행나무 뿌리 근처와 줄기 밑동에서 맹아성 가지들이 무수히 발생해 있는 상태이고, 위쪽의 가지 여기저기에 유주가 길게 발달해 있다.
섬계서원(剡溪書院)은 세종 때의 문신으로 단종복위에 성삼문(成三問)과 함께 관여하였다가 죽은 김문기(金文起)의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섬계(剡溪)는 본래 이 마을의 이름이 옛날에 섬계리(剡溪里)였으므로 붙인 이름이지만, 지금은 조룡리(釣龍里)로 바뀌었다고 한다. 1456년 그가 죽은 후 은행나무를 심은 것으로 계산해서 현재 나이를 약 44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위치는 섬계서원의 뒤뜰 담장의 왼쪽 구석에 있으며, 수령이 약 500년이며, 높이 28m, 둘레가 11.6m, 밑둥이 12.5m이다.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
섬계서원 후면 전경
2021.11.05,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섬계서원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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