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향토유적

임난수장군을 제향하는 사당, 세종특별자치시 향토유적 제35호_숭모각

기리여원 2022. 3. 12. 18:01

세종특별자치시 향토유적 제35호 _ 숭모각(崇慕閣)

 

소재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88-4

시   대 : 1957년 건립

 

고려 말의 충신 임난수(林蘭秀, 1342~1407)장군을 제향하는 사당이다.

임난수는 부안임씨로 1342년에 출생하여 고위 관직을 두루 거쳐, 고려 말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제주도)를 정벌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조선이 건국되자 두 임금을 모시지 않겠다고 하여 관직을 버리고 충청도 공주목 삼기촌 금강변으로 내려와 여생을 보냈다. 이때 심은 은행나무 두 그루는 60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세종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그가 고려 왕조를 향하여 절을 했던 전월산 부왕봉과 상려암도 유적으로 남아 있다.

사당에는 임난수 장군의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었다. 당시의 그림은 임난수 장군이 탐라를 정벌하던 때에 왜적에게 잘린 손을 화살집에 넣어 메고 싸우던 모습이었다고 한다. 세종은 그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임씨가묘(林氏家廟)'라 쓴 현판과 토지를 하사하였다.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임씨 가묘였던 기호서사를 부수자 1923년 이곳에 기념비를 건립하였고, 1957년 서울 시공관에서 전국 부안 임시 총회를 거쳐 숭모각 복원을 추진한 끝에 1964년 복원을 마쳤다. 내부에는 부안 임씨 임팔급을 비롯한 14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숭모각 표지판

 

 

숭모각 앞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된 세종 세종리 은행나무 ( 世宗 世宗里 은행나무)

 

연기 세종리 은행나무는 고려 말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제주도)정벌에 공을 세우고 공조전서를 지낸 임난수 장군이 심은 곳이라 한다.

 

임난수 장군은 고려가 멸망한 뒤 벼슬을 버리고 공주 금강변 삼기촌(三岐村, 현 세종리)에 은거하였다. 이후 이성계가 벼슬을 주며 청했으나 따르지 않았다. 이 때 숭모각 앞에 멸망한 고려를 생각하면서 심은 암수 한 쌍의 은행나무가 600여 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나라에 큰 변이 생길 때마다 울었다고 하는데, 1910년 경솔국치와 6.25전쟁 떄 울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이 나무를 베려고 하였으나 나무에서 소리가 나 베지 못했다고 한다.

 

숭모각 전경

 

 

숭모각 전경

 

 

숭모각 외삼문(外三門)

 

 

외삼문(外三門)

 

 

숭모각(崇慕閣)

 

숭모각(崇慕閣)은 고려 말 무신(武臣)이었던 임난수(林蘭秀, 1342~1407)와 부안임씨(扶安林氏)의 시조 임팔급(林八及)을 포함하여 14명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제사(祭祀)를 지내는 사당(祠堂)이다.

 

임난수(林蘭秀, 1342~1407)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1342(충혜왕 복위 3) 전라북도 부안에서 임숙(林淑)의 아들로 태어났다.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 최유(崔濡)의 딸과 혼인하여 네 아들을 두었는데, 큰아들 임모(林摹)는 수사(水使), 둘째 임목(林穆)은 양양도호부사(襄陽都護府使), 셋째 임서(林叙)는 충의교위좌군사직(忠毅校尉左軍司直), 막내 임흥(林興)은 위의장군(威毅將軍)을 지냈다.

 

1374(공민왕 23) 최영(崔瑩)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는 공을 세웠는데, 이때 적의 칼에 잘린 오른팔을 화살통에 넣은 채 계속 싸워 승리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흥복도감(興福都監녹사(錄事낭장(郎將호군(護軍) 등의 관직을 거쳐 공조전서(工曹典書)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멸망하자 조선에 출사하지 않고 충청도 공주목 삼기촌(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으로 낙향하였다. 1407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합강리에 있다.

 

조선 조정에서 그의 충절의 기려 1419(세종 1) '임씨가묘(林氏家廟)'의 편액을 내리고 불천지위(不遷之位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로 받들도록 하였으며, 사패지(賜牌地)를 내렸다. 1682(숙종 8)에는 '고려임장군신도비(高麗林將軍神道碑)'가 세워지고 송시열(宋時烈)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기록한 비문을 썼다. 부안임씨가묘는 세종특별자치시 향토유적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숭모각(崇慕閣) 현판

 

 

숭모각(崇慕閣)

 

숭모각 건물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공포(栱包)를 세 층이나 쌓은 다포형식(多包形式)에 겹처마와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숭모각(崇慕閣)

 

 

숭모각(崇慕閣) 정면

 

 

숭모각(崇慕閣) 전경

 

2022.03.06. 세종시 연기면 세종리, 숭모각

글 안내표지판, 위키백과,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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