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9호 _ 월산대군사당 (月山大君祠堂)
수량/면적 : 일곽
지정일 : 1989.12.29
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호국로 1243-39 (신원동)
‘월산 대군 사당’은 조선 시대 성종의 친형인 월산대군 이정(李婷, 1454년-1488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월산대군은 덕종의 큰아들이자 성종의 형으로 1471년에 대군(大君 ; 왕의 종친에게 주던 정일품 벼슬)에 임명되었다. 그는 일찍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침착했으며, 산수를 좋아하여 뛰어난 문장을 많이 지었다고 한다. 기록을 보면 사당은 1756년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있는 건물은 1875년에 고쳐 지은 것으로,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人(사람 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사당 앞면에 툇간(退間 ; 건물 기둥의 밖에다 기둥을 세워 공간을 만든 것)을 두고 개방한 것은 제사의 기능을 고려한 것이다. 앞면의 가운데 칸이 크고 좌우 측 칸이 그에 비해 좁은 점이 특징이다. 사당 입구에는 솟을삼문(솟을三門 ; 문이 세 칸인 대문에서, 가운데 문의 지붕을 한 단 높게 세운 대문)이 있으며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담장은 개인 사당 담장에서는 보기 드물게 길게 다듬어진 돌로 아래 단을 쌓았으며, 담장 석조 배수구까지 갖춘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월산대군사당 표지판
월산대군사당 표지석
월산대군사당 전경
월산대군 사당앞에 위치한 250년된 회화나무로 고양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솟을 삼문인 외삼문
외삼문
외삼문
월산대군 사당인 석광사(錫光祠)
‘월산 대군 사당’은 조선 시대 성종의 친형인 월산대군 이정(李婷, 1454년-1488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월산대군 사당인 석광사(錫光祠)
기록을 보면 사당은 1756년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있는 건물은 1875년에 고쳐 지은 것으로,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人(사람 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사당 앞면에 툇간(退間 ; 건물 기둥의 밖에다 기둥을 세워 공간을 만든 것)을 두고 개방한 것은 제사의 기능을 고려한 것이다. 앞면의 가운데 칸이 크고 좌우 측 칸이 그에 비해 좁은 점이 특징이다.
월산대군 사당인 석광사(錫光祠) 우측면
월산대군 사당인 석광사(錫光祠) 현판
월산대군의 위패를 모신 석광사 내부
사당에 보관된 월산대군의 요여는 월산대군파종회로부터 고양시청에 기증되었다.
경기도 민속문화재 _ 전 월산대군 요여 (傳 月山大君 腰輿)
요여'는 장례를 위하여 장지로 갈 때와 돌아올 때 혼백과 신주를 모시는 작은 가마이다.
'전 월산대군 요여'는 덕종(추존)의 장남이자 성종의 친형인 월산대군 이정(月山大君, 1454∼1488)의 신주를 모시던 사당에 보관되었으며 신주 및 부속 의물과 함께 전해져 왔다.
<전 월산대군 요여>에는 앞뒤로 가마꾼이 요여를 들기 위한 긴 맬대가 있으며, 위에 사각형의 틀을 갖추고 방처럼 생긴 몸체를 얹었다. 맨 위에는 천으로 지붕을 만들어 올렸다.
가마의 몸체 앞쪽에는 사각기둥을 두 개 세워서 마루를 두었고, 정면에는 정교하게 만든 띠살을 갖춘 작은 여닫이문을 달았다. 확실한 조성 과정은 알 수 없으나, 월산대군 사당의 건립기록과 제작 수법으로 미루어 보아 사당이 건립되던 18세기 말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요여는 전통 요여의 형식과 구조를 잘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목가구나 각종 부재가 매우 정교하고 세련되어 높은 격을 나타내고 있다. 또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장례 및 목가구 연구에 필요한 민속공예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위 사진 3장은 문화재청자료임.
월산대군 사당 후면
▼ 사당에서 도로 건너편에 위치한 월산대군 묘및 신도비입니다.
고양시 향토유적 제1호 _ 월산대군(月山大君) 묘 및 신도비
신원동 능골에 자리잡고 있으며 뒤에 부인 순천 박씨의 봉분을 두었다. 월산대군의 큼직한 봉분 앞에는 묘비와 상석, 문인석, 망주석, 장명등과 신도비 등의 석조물이 배치되어 조선 시대 묘제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상석 뒷편의 묘비는 운문이 조각된 비두와 장방형의 대석을 갖추었고, 규모는 높이 180cm, 폭 74cm, 두께 32cm이다. 상석은 3매의 장판석을 놓았는데 정면 270cm, 측면 155cm의 규모이다. 성종 20(1489)년에 왕명에 의해 세워진 신도비는 90cm의 이수와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었는데 ‘월산 大君碑銘’이란 전자가 새겨 있다. 비신의 높이는 218cm, 폭 94cm, 두께 32cm의 규모이고 비문은 임사홍이 짓고 썼으며, 전액도 함께 썼다.
현재 신도비는 전액을 제외하고는 판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멸되어 있다.
월산대군 이 정은 추존된 덕종의 장남으로 단종 2년(1454)에 출생하여 성종 19년(1488)에 돌아 갔다. 대군의 자는 자미이며 호는 풍월정이다. 어린 시절은 궁중에서 보냈으며 일찍이 월산군에 봉해지고 좌리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문장이 뛰어나고 책을 좋아하여 그의 작품은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지금의 덕수궁은 월산대군의 옛집이었으며 친 아우인 성종이 자주 대군의 집에 드나들며 집의 정자를 풍월정이라 이름짓고 근체오언율시를 지어 주었다.
현재의 고양 북촌에 별장을 두고 자연을 벗하며 일생을 보냈다. 시호는 효문.
월산대군(月山大君) 묘와 부인 순천박씨의 묘
월산대군(月山大君) 묘
월산대군 신도비
월산대군 신도비
2022.03.13. 고양시 덕양구 산원동, 월산 대군 사당, 묘 및 신도비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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