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충청남도

충청남도 기념물 제76호_김좌진장군생가지, 사당, 백야기념관

기리여원 2022. 8. 4. 07:43

충청남도 기념물 제76호 _ 김좌진장군생가지 (金佐鎭將軍生家地)

 

면  적 : 1,205㎡

지정일 : 1989.12.29

소재지 : 충남 홍성군 갈산면 백야로546번길 12, 외 (행산리)

시  대 : 구한말

 

백야 김좌진(18891930) 장군이 살았던 곳이다.

 

선생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대한제국 후기의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후 청년학우회 등의 간부를 지냈고, 1913년에 대한제국 광복단에 가입하여 자금을 모으다가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한 후 1917년 만주로 망명하였는데, 이후 13년간 평생을 항일전투에 몸바쳤다. 192010월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섬멸하였는데 이것이 독립 전투상 승리의 금자탑을 세운 일로 기록되는 청산리전투이다. 1929년 정신, 이붕해 등과 함께 한족총연합회를 조직하여 주석에 취임하고, 만주에 거주하는 동포의 교육과 민생에 주력했다. 한편 중국의 항일 세력과 연합하여 대일 항전을 준비하던 중 1930년 공산당원의 흉탄에 순절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받았으며 홍성역 앞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광이 따로 있고 밖에는 마구간이 있다. 안채는 앞면 8·옆면 3칸의 기와집으로 서쪽을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2칸 부엌이 있고, 아랫방과 윗방 각 한 칸씩 있으며, 통칸의 대청이 있다. 그 위에 방이 한 칸 있고 끝으로 툇마루가 있다. 방 앞으로 툇마루가 있는데 맨 끝방 주위에는 툇마루를 한 칸 높여 누각처럼 만들었다. 마당 한쪽에 우물이 있으며 밖에 있는 마구간은 화장실과 마구를 3칸 집에 만들었다.

 

터만 남아 있던 곳에 1992년에 안채와 문간채, 사랑채를 복원하였다.

 

 

김좌진장군생가지 표지판

 

 

김좌진장군생가지 표지석

 

 

백야 김좌진장군 신도비

 

 

백야 김좌진장군 어록비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백야 김좌진장군 생가지 성역화기

 

 

김좌진장군 생가지 전경

 

 

김좌진장군 생가지 전경

 

 

화장실과 마구 3칸으로 만들어진 마구간

 

 

김좌진생가지 사랑채

 

 

사랑채에 걸려있는 호명정사(湖明精舍) 현판

 

 

사랑채 내부에 김좌진장군 관련사진

 

 

김좌진장군생가지 안채 우측면

 

안채는 정면8칸, 측면 3칸의 기와집으로 서향의 건물이며 안채는 부엌, 방 3개, 대청으로 이루어져 있다.

왼쪽부터 2칸 부엌이 있고, 아랫방과 윗방 각 한 칸씩 있으며, 통칸의 대청이 있다. 그 위에 방이 한 칸 있고 끝으로 툇마루가 있다. 방 앞으로 툇마루가 있는데 맨 끝방 주위에는 툇마루를 한 칸 높여 누각처럼 만들었다

 

김좌진장군생가지 안채 좌측면

 

 

안채 우측면

 

안채우측은 방이라 툇마루가 있으며 좌측은 부엌이라 툇마루가 없다.

 

안채 좌측면

 

 

가지런히 놓인 장독

 

 

김좌진장군생가지 우물

 

 

김좌진장군생가지 안채 툇마루

 

 

김좌진장군 서한

 

 

김좌진장군

 

백야 김좌진 장군은 안동김씨 수북공파 10세손으로 문인집안이자 홍성 길산지역 부호출신이었지만 유년시절부터 계몽의식을 갖게 되어 민족계몽운동과 항일독립운동에 힘썼다. 특히 1910년대 무장독립투쟁에 전념하여 독립군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고, 1920년 청산리 대첩으로 독립운동 역사상 최고의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김좌진장군

 

 

안채 내부

 

청백리 집안으로 팔백년을 이어 왔다는 '청백전가팔백년(淸白傳家八百年)' 현판

 

김좌진생가지 안채 내부 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7호 _ 김좌진장군비 (金佐鎭將軍碑)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김좌진 장군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김좌진(1889∼1930) 장군은 홍성에서 태어나 15세에 집안의 노비를 풀어주고, 그들에게 농사지어 먹고 살만한 논밭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1905년 서울로 올라와 육군무관학교에 들어갔으며, 1907년 고향에 돌아와 호명학교를 세우고 90여칸의 자기집을 학교건물로 쓰게 했다. 광복단에 들어가 항일투쟁을 하다 1918년 만주로 건너가 3.1 독립선언에 전주곡이 되는 무오독립선언서에 39명의 민족지도자의 한사람으로 서명하였다. 그 후 북로군정서의 총사령관으로서 독립군 양성에 주력하였고,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대파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에 큰 공을 세웠다. 1930년 공산주의자 박상실의 흉탄에 맞아 자택 근처에서 순국하였다.

1949년 대한청년단 홍성군단의 성금으로 이 비를 세웠다

 

 

김좌진장군비

 

 

백야공원

 

김좌진장군 뒤쪽에 백야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백야공원입니다.

백야 공원에는 김좌진 장군의 어린 시절, 청년시절, 성년시절, 또한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시절의 모습 등 전투를 지휘하는 모습 등 5기의 동상이 세워져있습니다.

 

백야사 전경

 

 

백약사(白冶祠)

 

김좌진 장군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세워진 사당이다.

총 면적은 2,880, 백야사, 와룡재, · 외삼문,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매년 1025일 청산리전투 전승기념일에 맞춰 추모제가 열린다.

 

백야사(白冶祠) 현판

 

 

백야사(白冶祠) 우측면

 

 

백야사(白冶祠) 좌측면

 

 

김좌진장군 영정

 

 

 

▼백야기념관입니다.

 

백야기념관(白冶紀念館)

 

백야 김좌진 장군 탄신 100주년인 19891220일에 기념하여 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고,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1991년 생가를 복원하면서 백야기념관이 건립되었다. 이후 2018년 전시 개편을 통해 장군의 출생부터 계몽운동과 독립운동, 청산리대첩 등 장군의 업적과 전투당시 사용한 무기 등을 전시하였다

 

백야기념관(白冶紀念館) 현판

 

백야기념관 현판은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1921~2006)의 글씨임

 

백야 김좌진장군 흉상

 

 

백야 김좌진장군  연표

 

 

명문가 안동김씨 김좌진장군

 

 

김좌진 친필 서한 _ 복제품

 

1901년 9월, 13살 김좌진이 스승에게 보낸 편지

백야 김좌진은 지역의 한학자이자 서당훈장인 김광호에게 한학과 글을 배우고, 홍성으로 내려온 개화파 인사 김석범에게서 민족계몽과 근대화에 대한 지식과 신념을 일찌감치 터득했기에, 또래 청소년들에 비해 한참앞서간 위인이였다.

 

2022.07.05, 홍성 김좌진장군생가지

글 문화재청, 전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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