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호 _ 진천 신헌 고가 (鎭川 申櫶 古家)
수량/면적 : 2동
지정일 : 1985.12.28
소재지 : 충북 진천군 이월면 논실안길 58-1 (노원리)
조선 후기 무신이면서 외교가였던 신헌(1810∼1884)이 살던 집이다. 신헌은 중요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강화도조약과 조미수호조약 등을 체결하여 조선의 개항에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 집은 1850년경 신헌이 전통 한옥 형태로 지은 건물이다. 세울 당시에는 사랑채와 행랑채, 안채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안채와 광채만 남아 있다.
안채는 2층 기단 위에 세운 ㄱ자형 평면을 갖춘 집으로 오른쪽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고, 왼쪽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광채는 부속 건물로 곡식이나 여러 생활용품을 보관해 두던 곳이다.
진천 신헌 고가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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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체해야 되겠습니다.
진천 신헌 고가 대문과 광채
진천 신헌 고가 광채
진천 신헌 고가 대문
진천 신헌 고가 광채는 부속 건물로 곡식이나 여러 생활용품을 보관해 두던 곳이다.
진천 신헌 고가 광채
진천 신헌 고가 안채
장숙(壯肅) 신헌(申櫶, 1810 ~ 1884)
신헌(申櫶, 1810년 ~ 1884년)은 조선 말의 무신이자 외교관이었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국빈(國賓), 호는 위당(威堂), 시호는 장숙(壯肅)이다. 원래 이름은 신관호(申觀浩)였으나 후에 개명했다.
1828년(순조 28)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에 임명되었다. 헌종 때에는 전라도병마절도사 등을 거쳐 1849년에는 금위대장(禁衛大將)이 되었으나 얼마되지 않아 파직, 유배되었다가 1857년에 풀려났다. 철종 때 형조판서·한성부판윤·공조 판서·우포도대장 등을 지내고, 고종 초기 대원군의 신임을 받아 형조·병조·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총융사가 되어 강화도 염창(鹽倉)을 수비하였다. 1874년 진무사 훈련대장에 임명되어 강화도 연안에 포대를 구축했다. 1876년 운요호 사건이 일어나자 판중추부사(종1품) 로서 일본의 구로다 기요타카와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하였다. 1882년에는 미국의 슈펠트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글 위키백과
진천 신헌 고가 안채
안채는 2층 기단 위에 세운 ㄱ자형 평면을 갖춘 집으로 오른쪽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고, 왼쪽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진천 신헌 고가 안채
진천 신헌 고가 안채 측면
진천 신헌 고가 안채 후면
2022.09.18.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진천 신헌 고가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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