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문화재자료

충주 최씨의 시조 최승의 위패를 모신 사당, _충주 영모사

기리여원 2023. 1. 11. 11:01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9호 _ 충주 영모사 (忠州 永慕祠)

 

수   량 : 1棟

지정일 : 1998.01.09

소재지 : 충북 충주시 동량면 내동1길 26-11 (대전리)

시    대 : 신라말

 

충주 최씨의 시조인 최승과 선조 8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최승은 신라 문성왕 8년(846)에 흉년이 들어 도적이 많아지자, 중국 당나라 무종(武宗)의 명을 받아 이들을 무력으로 평정하였다. 또한 통일신라 진성여왕 3년(889)에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수습하였다.

 

영모사는 남쪽을 향해 있으며 앞쪽에 있는 문은 가운데를 높힌 솟을대문이고 최승이 살았을 때의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와 석교가 있다.

 

충주 영모사 표지판

 

 

충주 영모사 전경

 

 

추원교(追遠矯)

 

 

충주 영모사 전경

 

 

충주 영모사 전경

 

 

충주 최씨의 시조 최승(崔陞, 824~889)의 신도비

 

신라시대 충주최씨 시조 최승

 

최승(崔陞)은 당나라 출신이다. 846년 당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도적이 들끓자 병마사에 임명되어 도적을 토벌하였다.

이후 당나라에서 검교태부, 시중청주자사, 평노군절도관찰사, 압신라발해양번등사를 역임했고, 태자소사박능군개국후에 봉해져 식읍 천호(千戶)를 받았다. 889년(진성여왕 3) 통일신라시대 상주 지방에서 원종(元宗)과 애노(哀奴)가 난을 일으키자 당나라 황제의 명을 받고 신라에 와서 난을 평정하고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에 올랐다. 이후 신라로 귀화해서 충주에 정착하여 충주최씨의 시조가 되었다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조선 전기 문신인 최개국(崔蓋局, 1516~1579) 신도비

 

 

충주 영모사 솟을삼문

 

 

충주 최씨의 시조인 최승과 선조 8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영모사(永慕祠) 

 

영모사 건물규모는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1922년에 건립되었다

 

영모사(永慕祠) 현판

 

 

영모사(永慕祠) 우측면

 

 

 영모사(永慕祠) 좌측면

 

2023.01.08. 충주 동량면 대전리,  영모사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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