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장릉에서 나온 비색청자와 공예품
고려 제17대 임금 인종(재위 1122~1146)의 무덤인 장릉(長陵)에서 나왔다고 전하는 국조 <청자 참외모양 병>은 고려 청자를 댜표하는 최고의 예술품이다. 중국 도자의 영향에서 벗어나 고려 특유의 세련된 미감으로 새롭게 창조되었다
1123년(인종 1) 개경을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극찬한 고려 비색청자는 바로 이 <청자 참외모양 병> 같은 예술품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인종에 묻힌 장릉의 위치는 개성 일대로 추정될 뿐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황통(皇統) 6년(1146)'의 연대가 있는 인종 시책(諡冊)을 포함한 각종 청자와 공예품은 12세기 전반 고려 왕실의 수준 높은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인조 장릉에서 나온 청자(仁宗 長陵 出土 靑磁)
단정한 기형과 비색 유약, 잔금 없는 깔끔한 표면이 특징이다. 청자받침대는 전라남도 영암 월출산 제사 유적에서 향로, 향완, 잔 받침등과 함께 나온 사례가 있다. 모서리에 단이 있어 포갤수 있다는 점, 뒷면 중앙에 오목하게 음식물 등을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포개어 쌓는 의례용기로 추정된다.
인조 장릉에서 나온 청자(仁宗 長陵 出土 靑磁) _ 고려 12세기, 傳 인종 장릉 출토
뚜껑 있는 잔, 합
청동 도장(靑銅 印) _ 고려 12세기, 傳 인종 장릉 출토
불교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상징적 동물인 사자 두 마리가 앞발로 보배 구슬을 받치고 서 있다. 도정 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구불구불한 글자가 새겨져 있다. 국보로 지정된 <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의 뚜껑에도 같은 형태의 보배구
국보 제94호 _ 청자 참외모양 병 (靑磁 瓜形 甁)
수 량 : 1개
지정일 : 1962.12.20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 고려시대(12세기 전반)
경기도 장단군에 있는 고려 인종(仁宗)의 능에서 ‘황통(皇統)6년(1146)’이란 연도가 표기된 책과 함께 발견된 화병으로, 높이 22.8㎝, 구연의 지름 8.8㎝, 밑지름 8.8㎝ 크기이다.
참외 모양의 몸체에 꽃을 주둥이로 삼아 표현한 매우 귀족적인 작품으로 긴 목에 치마주름 모양의 높은 굽이 받치고 있는 단정하고 세련된 화병이다. 담록색이 감도는 맑은 비색 유약이 얇고 고르게 발라져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 사당리 7·8호 가마터를 중심으로 동일한 청자조각이 발견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러한 양식은 다른 고려 고분의 출토품에도 보이며 중국의 자주요와 경덕진 가마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병이 발견된다.
고려 청자 전성기인 12세기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우아하고 단정한 모습과 비색의 은은한 유색이 돋보이는 참외모양 화병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된다.
청자 참외모양 병 (靑磁 瓜形 甁) _ 고려 12세기, 傳 인종 장릉 출토
고려 왕실 청자의 품격을 보여 주는 비색청자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용도는 꽃을 꽂는 꽃병으로 추정된다. 중국 산서성(山西省) 평양현(平陽縣)의 금대(金代, 1115~1234) 무덤 벽면에는 참외모양 병에 연꽃을 풍성하게 꽂아 놓은 장식이 조각되어 있다.
은제 숫가락과 젓가락(銀製 匙箸 ) _ 고려 12세기, 傳 인종 장릉 출토, 전체길이 32.8cm, 전체길이 24.1cm
숟가락은 구리가 약간 포함된 은으로 만들어졌다. 자루의 단면은 납작하고 길게 휘어진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자루 끝에는 장식이 없다. 젓가락 역시 은으로 만들어졌다. 단면이 둥글고 끝 마디에 두 개의 홈이 있다.
은제 숫가락과 젓가락(銀製 匙箸 )
전(傳) 고려 인종(재위 1122-1146) 장릉에서 출토된 은제 숟가락과 젓가락이다. 숟가락의 재질은 구리가 소량 함유된 은(銀)이며, 자루의 단면이 납작하고 길게 휘어진 곡선을 이루고 있다. 자루 끝에는 장식이 없다. 젓가락은 표면의 녹 때문에 청동제로 알려져 왔는데, 조사 결과 은으로 확인되었다. 젓가락은 단면이 둥글며 끝마디에 음각의 홈이 장식되었다.
함(石製 函, 金屬製 函) _ 고려 12세기, 傳 인종 장릉 출토
외함은 모래 성분으로 된 이암(泥巖)이며, 이 석재는 경상북도 포항 일대에서 많이 난다. 외함의 표면에서 분장토와 진사(辰砂) 등이 확인되어, 원래는 장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 시대에 뼈 항아리를 넣어둔 석재 함과 비교할 수 있다. 고려시대 왕실 묘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2022.12.22, 국립중앙박물관_청자
글 문화재청, 전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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