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비지정문화재 297

면천 골정지의 건곤일초정

골정지(骨井池)의 건곤일초정(乾坤一草亭) 소재지 : 당진시 면천면 면천로 714, 골정지 시 대 : 1800년 건곤일초정(乾坤一草亭)은 조선 정조 24년(1800년) 경신년에 면천군수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이 세웠다. 골정지 한가운데에 돌을 쌓아 작은 섬을 만들고 그곳에 육각형의 초정을 세워 건곤일초정이라는 현판을 걸었는데 현판 이름은 두보의 시에서 따온 말이다. 이 곳은 향교와 가까워 향교 유생들이 자주 머물러 시를 읊고 학문을 익히기도 하였으며 은자의 정취가 있었던 곳이다. 건곤일초정으로 건너는 다리는 당시 나무판으로 부교로 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유지 관리상 돌다리로 하였다. 한편, 박지원 군수는 1797년부터 1800년까지 4년간 이곳 면천군수로 재직하면서 면양잡록, 한민영전..

만암 종헌스님의 소장품, 태극기

_ 근현대, 비단, 백양사성보박물관 만암 종헌(曼庵宗憲, 1876~1957) 스님의 소장품으로 전해오는 태극기이다. 만암 스님이 불교계에서 활동하던 시기는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로, 왜색 불교의 영향이 농후한 시대적 어려움 속에서도 고불총림 결사로서 한국 불교의 고유한 정체성을 되찾고자 노력하셨다 2023.10.07, 불교중앙박물관_백암산 백양사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을사친정계병(乙巳親政契屛)

_ 작가 모름(作家未詳), 1785년(정조 9), 비단에 색과 먹 왕이 중심인 인사행정 산봉우리 다섯 개가 그려진 오봉병풍 앞 왕의 의자가 있습니다. 왕의 자리 가까이에 내시와 사관이, 다음에 승지와 규장각 관원이 있습니다. 반면 인사행정 담당인 이조와 병조 관원들은 툇마루와 전각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규장각 관원은 정조의 친위세력입니다. 친위세력을 바탕으로 왕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의지가 돋보입니다. 1폭에는 정조의 어제시와 신하들의 화답시가 담겨 있습니다. 정조는 창덕궁 중화당에서 인사행정을 행하는 것이 상서롭다는 내용의 시를 내렸는데, 병풍 제2 · 3폭에 구름 사이로 소나무와 복숭아나무, 학 두마리가 있어 상서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중희당 전각 안 오봉병 앞에 임금의 자리가 있습니다. 이 앞에 ..

전(傳) 김홍도(金弘道)의 <규장각도(奎章閣圖)>

_ 전(傳)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이후), 1776년(경종 즉위)년 추정, 비단에 색 정조의 정책과 학문 연구 기관 설립 정조는 영조에 이어 군주가 정치와 학문을 이끌어 나가는 군사(君師)가 되고자 했습니다. 신하보다 학문적으로 우위에 서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바로 규장각을 건립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규장가에서 젊은 관리들을 교육시켰고, 규장각 관원들은 정조의 탕평 정책을 뒷받침했습니다. 규장각의 위상에 어울리게 이 그림에서 규장각 2층 건물이 다른 건물들보다 더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_ 전(傳)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이후) 2023.12.15, 국립중앙박물관_탕탕평평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김공 휘 유경 효자문·김공 휘 홍익 충신문

김공 휘 유경 효자문·김공 휘 홍익 충신문 전경 김공 휘 유경 효자문(金公 諱 有慶 孝子門) 소재지 : 충남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산 88-1 김공 휘 유경 효자문 (金公 諱 有慶 孝子門) 은 김공 휘 유경(1669~1748)이 10세 때 친상을 당하여 예법대로 옷을 입지 못한 것을 애통해 한 나머지 17세에 추복을 하고 조석으로 곡하며 3년간 슬픔을 다한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정문이다. 영조가 듣고 가상한 마음이라 하며 식물까지 내리고는 경은 사양치 말라 하였다고 한다. 김공 휘 유경은 충신문 김묵재의 종증손이며 자는 덕유, 호는 용곡이다. 김공 휘 유경 효자문 표지판 김공 휘 유경 효자문 김공 휘 유경 효자문 ▼ 김공 휘 홍익 충신문입니다. 김공 휘 홍익 충신문(金公 諱 弘翼 忠臣門) 소재지 ..

백양사 독성도

_ 일제강점기, 1926년, 비단에 채색, 백양사 대웅전 백양사 대웅전에 봉안된 는 폭포를 배경으로 바위에 앉아 걸터앉은 독성(獨聖)과 향을 공양하는 시동(侍童), 사슴에 걸터 앉아 있는 시동이 그려졌다. 폭포에 원근법을 적용하여 입체감을 부여하고 있다. 화기에 의하면 1926년 금해 관영(錦海瓘英, 1856~1937) 스님의 증명(證明) 하에 봉영(琫榮), 춘화(春化) 스님의 참여로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2023.10.07, 불교중앙박물관_백암산 백양사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일본에서 환수한 나전 국화넝쿨무늬 상자

나전 국화넝쿨무늬(螺鈿菊花唐草文箱子) 상자 _ 고려, 18.5×33.0×19.4cm 세밀가귀(細密可貴)의 방 나전 국화넝쿨무늬(螺鈿菊花唐草文箱子) 상자 환수 문화유산 특별공개전 일시 : 2023.12.07. 목~2024.01.07.일 장소 : 국립고궁박물관 1층 기획전시관 4 나전 국화넝쿨무늬(螺鈿菊花唐草文箱子) 상자 나전 국화넝쿨무늬 상자는 전형적인 고려 나전칠기 제작기법인 목심저피법(木心紵皮法)으로 만들어졌다. 목심저피법은 나무판으로 전체적인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베나 모시 등의 직물을 붙이고 작은 자개 조각과 금속선 등을 장식하는 기법이다. 뚜껑 윗면과 몸체 각 네 면에 자개와 금속선으로 반복되는 국화꽃과 넝쿨무늬를 빽빽하고 섬세하게 장식했다. 옻칠 솜씨 또한 빼어나 고려 나전공예 전성기 작품으로..

장주묘암도(漳州茆庵圖)

_ 그림 작가모름(作家未詳), 글 영조(英祖), 글씨 윤급(尹汲, 1697~1770), 1746년(영조22), 종이에 색, 개인소장 영조가 꿈꾼 탕평의 이상을 그리다. 1746년 영조의 명으로 그려진 이 작품에는 그의 꿈이 담겨 있습니다. 중국 남송의 주희(1130~1200)가 푸젠성 장저우 지사로 있을 때 그 후원의 모습을 상상한 그림입니다. 영조는 이 그림을 인간의 욕심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공정함에 힘쓰는 뜻을 함께하고자 그렸다고 적었습니다. 묘암 창문에 그려진 태괘와 복괘는 소통과 부흥을 뜻합니다. 2023.12.15.국립중앙박물관_탕탕평평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소조일광 · 월광보살입상 · 칠원성군상

_ 조선 1880년,흙, 백양사 칠성전 칠성전은 본래 북두칠성을 모신 전각으로 무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칠성신앙은 조선 중기로부터 본격적으로 성행하였는데 수명의 연장이나 자손의 번성 등 각자의 염원을 빌고자 많은 사찰에 칠성각이 세워지게 되었다. 칠성각 내부에서는 북극성을 상징하는 치성광부처님이 자리하고 좌우에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또한 탐랑성군, 거문성군, 녹존성군, 문곡성군, 염정성군, 무곡성군, 파군성군 등 칠원성군도 함께 봉안되어 있다. _ 조선 1880년,흙, 백양사 칠성전 _ 조선 1880년,흙, 백양사 칠성전 _ 조선 1880년,흙, 백양사 칠성전 _ 조선 1880년,흙, 백양사 칠성전 _ 조선 1880년,흙, 백양사 칠성전 2023.10.07, 불교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