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비지정문화재 296

남해 가천마을 밥무덤

가천마을 밥무덤 밥무덤은 굴뚝처럼 생겼으며 제사를 지낼 때 밥을 정갈한 한지에 서너 겹으로 싸서 정성껏 묻고, 흙으로 덮은 다음 그 위에 반반한 덮개돌을 덮어두는 것이다. 제물로 넣은 밥을 쥐, 고양이, 개 등의 짐승이 해치면 불길한 일이 생기거나 신에게 바친 밥의 효력이 없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음력 10월 15일 주민들이 모여 마을 중앙에 있는 밥무덤에서 풍작과 풍어를 기원하고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축원하는 동제를 지낸다. 그러나 밥무덤의 또 다른 목적은 먼 거리 항해 등에 나갔다가 목숨을 잃어 제삿밥을 얻어먹지 못하는 혼령들을 위해 밥을 묻어둔다는 의미도 있다. 밥무덤에 제사를 지낸 일주일 후 음력 10월 23일 밤 12시경 남근바위로 가서 미륵제를 올린다. 그러므로 밥무덤의 동제는 남근바위의 미..

광주 ·전남 8대 정자, 영암 회사정

광주 · 전남 8대정자, 영암 회사정(會社亭) 위치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 시대 : 조선후기시대 영암 구림대동계의 집회장소로서 1646년 박성오·조행립 등이 세웠다. 구림대동계는 1565년에서 1580년 사이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동계(洞契)이다. 마을의 귀빈 영접장소이자 경축일 행사장으로도 이용되었으며 1914년 4월 박규상의 주도로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때 불타 주춧돌만 남았던 것을 1986년 복원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마루형 구조이다. 정자 주변에는 노둣돌과 풍기문란·불효 등으로 마을의 규약을 어긴 이들을 묶어놨던 돌이 있다. 영암 회사정(會社亭) 표지판 영암 회사정(會社亭) 회사정(會社亭)은 구림 대동..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지사 생가지

대한의 투혼, 영양의 얼,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남자현지사 생가지 전경 남자현(南慈賢, 1872~1933) 지사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에서 출생하여 독립운동의 일선에서 남성도 수행하기 힘든 무장투쟁을 하며 평생을 바친 여성 독립운동가로, 여자 안중근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린다. 여성독립운동가로서는 유일하게 건국훈장 서훈 2등급인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남자현지사 생가지 표지판 남자현지사 동상 남자현(南慈賢, 1872~1933) 지사 1872년 12월 7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 출생 1925년 11월 23일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 주살시도 1932년 6월 30일 국제연맹조사단에 단지하여 도깁호소 1933년 3월 주만주국일본전권대사 무토 노부요시 주살기도 1933년 8월 22일 순국 1962년 3월 1..

독립운동가_의병장 이현규

독립운동가 _ 의병장 이현규 대한제국기 경상북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 이현규 본관은 재령(載寧). 일명 능우(能雨). 자는 하현(夏玄 또는 夏鉉), 호는 우해(于海)·내산(奈山). 아버지는 수단(壽檀)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자, 12월 중순 울진의 불영사(不影寺)에서 안동·청송·진보·영양 등지에서 모여든 500여 명의 병력으로 창의하여,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먼저 주왕산과 청량산 등에서 이들을 훈련시킨 뒤, 1906년 2월 영양군 입안면 교리에서 본격적인 의병진을 편성했다. 유시연(柳時淵)·신형일(申亨一)·김대규·권대성(權大成) 등과 함께 일본군과 수십 차례 교전했다. 그해 4월 진보 근처 오누저수지에서 강원도·경상도 의병의 진압책임자인 일본 헌병 부토[武藤]가 이끄는 헌병부..

청기와 용머리 토수

청기와 용머리 장식(靑瓦吐首) 표지판 _ 조선, 창덕궁 선정전 수습 임금님이 집무하던 궁궐 전각을 장식한 청기와 용머리 토수 청기와 용머리 토수는 궁궐의 일부 전각에서만 사용된 것으로 왕의 권력과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장식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토수는 목조 건물의 지붕 추녀 끝에 끼워 비바람에 목재가 썩는 것을 막기 위한 특수부재이다. 청기와는 점토에 염초(焰硝)를 섞어 형태를 빚어 구은 후 유약을 씌어 푸른색이 나도록 한번 더 구운 기와이다. 기와를 단단하게 하는 염초는 화학재료로 값이 비싸고 구하기 어려우며 제조공정이 까다로웠다. 고급 기와인 만큼 사용처는 매우 한정되었다. 조선시대 임금이 조회를 하던 정전(正殿)과 일상 업무를 보던 편전(便殿) 등이 청기와 건물이었다. 이 청기와 토수는 편전인 ..

경혈을 나타낸 청동인체상

경혈을 나타낸 청동인체상 (鍼金銅人) _ 조선, 청동, 높이 86.0cm 침과 뜸을 연습하기 위해 만든 청동인체상(靑銅鍼金經穴銅人像) 조선시대 병을 치료하는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가 침과 뜸(침구술)이었다. 침구술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수백 개의 경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시술했을 경우 환자에게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청동으로 경혈을 표기한 인체상을 만들어 정확한 침구술을 익히는데 사용하였다. 청동인체상 머리 위 구멍에 물이나 수은을 넣은 뒤, 시술자가 올바른 혈 자리에 침을 놓으면 액체가 흘러나와 정확성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승정원 일기 』에 1747년(영조 23) 숙종의 왕비 인원왕후(1687~1757)를 치료하기 전 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