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경기도 104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9호_석남사마애여래입상(2016.05.29.일요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9호 _ 석남사마애여래입상 (石南寺磨崖如來立像) 지정일 : 1981.07.16 시 대 : 고려시대 소재지 : 경기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산22번지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석남사(石南寺)에서 약 1㎞ 떨어진 암벽에 새겨진 불상으로, 전체 높이는 5.3m이다. 불신 뒤의 광배(光背)와 발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9호_안성죽림리삼층석탑(2016.05.29.일요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9호 _ 안성죽림리삼층석탑 (安城竹林里三層石塔) 지정일 : 2002.04.08 시 대 : 고려시대 소재지 : 경기 안성시 일죽면 죽림리 226-54번지 이 탑은 전체 높이가 363cm이고, 지대석은 가로 171cm, 세로 140cm이다. 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세워진 방형의 석탑으로, 중대석은 각 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9호_안성죽산리당간지주(2016.05.29)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9호 _ 안성죽산리당간지주 (安城竹山里幢竿支株) 수 량 : 1기 지정일 : 1979.09.03 시 대 : 고려시대 소재지 : 경기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728번지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당이라는 깃발을 걸게 되는데, 이 깃발을 꽂는 길다란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 쪽에서 지탱해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일컫는다. 드물게 당간이 있으나 대부분 당간지주만이 남아있다. 이 당간지주는 고려시대 대사찰이었던 봉업사터에 안성죽산리오층석탑(보물 제435호)과 약 30m 거리를 두고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원래 이곳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80년에 복원하였는데, 남쪽 돌기둥은 윗부분의 4분의 1정도가 이미 깨진 상태이다. 돌기둥은 표면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_수어장대(2014.07.27)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 _ 수어장대 (守禦將臺) 수 량 : 1동 지정일 : 1972.05.04 소재지 :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815-1 시 대 : 조선시대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만들어진 4개의 장대 중 하나이다.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는 대(臺)를 말한다. 수어장대는 산성 안에서 최고봉인 일장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성 내부와 인근 주변까지 바라볼 수 있다. 이곳은 병자호란(1636) 때 인조(재위 1623∼1649)가 직접 군사를 지휘하여 청나라 태종의 군대와 45일간 대항하여 싸운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1층 누각으로 짓고 서장대라 불렀으나, 영조 27년(1751)에 이기진이 왕의 명령으로 서장대 위에 2층 누각을 지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_삼막사 삼층석탑 (2017.09.03)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_ 삼막사삼층석탑 (三幕寺三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83.09.19 소재지 : 경기 안양시 만안구 삼막로 478 (석수동) 시 대 : 고려 삼막사 선실 뒤편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삼막사라는 절이름에는 통일신라 문무왕 17년(677) 원효·의상·윤필 3대사가 관악산에 들어와 장막을 치고 수도하다가 그 뒤 그곳에 절을 지어 이름을 이와같이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이다. 위·아래층 기단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탑신의 몸돌에만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두툼한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이 있고, 낙수면의 경사는 급하다. 꼭대기에는 1979년에 보수한 머리장식이 놓여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_삼막사 마애삼존불 (2017.09.03.일요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 _ 삼막사마애삼존불 (三幕寺磨崖三尊佛) 수 량 :1점 지정일 : 1980.06.02 시 대 : 조선시대 소재지 : 경기 안양시, 삼막사 삼막사의 칠성각 내에 봉안된 마애불은 암벽을 얕게 파고 조성하여 칠성각이 전실(前室) 역할을 하고 있다. 중앙의 본존불(本尊佛)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보살(脇侍菩薩)을 거느린 삼존불로 연화좌 위에 앉아 있다. 본존불은 소발(素髮)의 머리에 작은 육계(肉髻)가 있고, 전면에는 계주(髻珠)가 표현되었다. 방형에 가까운 상호에는 눈두덩이가 부푼 눈, 보수한 삼각형의 짧은 코, 작은 입 등이 묘사되었고 잔잔한 미소를 띤다. 어깨에 닿는 긴 두 귀와 얼굴에 연이어 어깨가 시작되어서 목은 달리 표현되지 않았다. 법의는 통견(通肩)으로 가슴에는 내의의 매듭..

행주서원지 내 원자리로 이전한 행주대첩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4호_행주대첩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4호 _ 행주대첩비 (幸州大捷碑) 지정일 : 1978.10.10 시 대 :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권율(1537∼1599) 장군의 공을 기념하기 위해 장군의 부하들이 세운 비이다. 현재 2기가 전하는데 하나는 처음 세워진 구비(舊碑:옛 비)이고, 다른 하나는 옛 비의 상태가 좋지 못하여 새로 세운 중건비이다. 행주대첩은 조선 선조 26년(1593) 권율장군이 서울을 되찾기 위해 군사 2,300명을 거느리고 행주산성에 진을 친 후 일본군 3만여명과 치열하게 격전을 벌여 마침내 승리로 이끈 대첩으로, 임진왜란 3대첩 중의 하나이다. 덕양산 정상에 있는 구비는 받침돌이 땅에 묻히고, 비몸이 어깨부분에서 밑부분까지 금이 가 있어, 비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선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