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조선왕릉

사적 제195호_영릉(세종과 소헌왕후) 영릉(조선17대 효종과 인선왕후 능) (2014.08.24)

기리여원 2014. 8. 29. 18:39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사적 195호 _  영릉(英陵)  .  영릉(寧陵)

                                                                   세종대왕           효종대왕

 

영릉(英陵) 제4대 세종과 소현왕후의 능

 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1450)은 제3대 태종의 셋째 아들로  1418년 6월 양녕대군이 세자에서 물러나자 뒤를 이어 세자로 책봉된 뒤 같은 해 8월 11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32년 동안 훈민정음 창제, 집현전설치, 6진 개척, 쓰시마섬 정벌, 측우기 제작 등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전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겨다.

소헌왕후(昭憲王后, 1395~1446)는 청정부원군 심온의 딸로 1408년(태종8년)에 충녕대군(세종)과 가례를 올렸다. 세종과 사이에서 8남 2녀를 두어 왕비 가운데 가장 많은 자녀를 둔 왕비로 손꼽히며 궁궐 안주인의 소임을 훌륭히 수행하여 후궁들의 질투가 없었다고 전한다.

 

 

   영릉(寧陵)

조선 제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

효종(孝宗, 1619~1659, 재위1649~1659)은 제16대 인종의 둘째 아들로 병자호란이 끝난 뒤 1637(인조15) 소현세자와 함께 청날에 가 8년간 머물렀다. 귀국 후 1645년 소현세자가 갑자기 세상을 뜨자 세자에 책봉되어 1649(인조27)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후, 백성들의 조세 부담을 덜어주고, 화폐개혁을 단행하는 등 병자호란 이후 민생의 안정과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북벌정책을 추진하였다.

인선왕후(仁宣王后(1618~1674)는 신풍부원군 장유의 딸이다. 병자호란 후 효종과 함께 청나라에 있을 때 헌종을 낳았으며 귀국한 뒤 1649년(인조 27)효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

 

4대 세종(世宗)

  • 능호 : 영릉
  • 위치 :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 지정번호 : 사적 제195호
  • 조성시기 : 1469년(예종 1)
  • 능의구성
  • 영릉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다른 방을 갖춘 합장릉이며, 무덤배치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 1469년(예종1) 여주로 천장하면서 세조의 유명(遺命)에 따라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설치하였으며, 봉분 안에는 석실이 아니라 회격(灰隔: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하고, 혼유석 2좌를 마련하여 합장릉임을 표시하였다. 또한 기존의 왕릉에는 난간석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여 방위를 표시하였는데, 영릉은 이를 간소화하여 십이지를 문자로 표현하였다.
  • 입지는 풍수사상에 따라 주산을 뒤로 하고 산의 중허리에 봉분을 조영하였으며, 좌우측에는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다.
  • 능의역사
  • 1446년(세종 28)에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당시 광주(廣州, 현재의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헌릉의 서쪽에 쌍실의 능을 조영하였다. 이 때 오른쪽 석실은 세종을 위해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하였다. 세조대에 영릉의 자리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에 이곳 여주로 옮겨 왔다.
  • 여주로 천장하면서 원래의 영릉 터에 있었던 상석, 망주석, 장명등, 문석인, 무석인, 석수, 신도비 등은 그 자리에 묻혔다.                                                                                                                                                
  •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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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제195호 _ 영릉(英陵). 영릉(寧陵) 표지석

     

     

     

     

     

    영릉(英陵/세종.소헌왕후) 재실

     

     

     

     

     

     

     

     

     

     

     

     

     

     

     

     

     

     

     

     

     

     

     

     

     

     

     

     

     

     

     

     

    연못에 먹이를 주니 큰 잉어가 몰려와 먹이를 먹는 광경

     

     

    금천교(禁川橋)

     

    금천교가 참도 중간에 조영되어 있다.

    조선왕릉의 금천교가 홍실문에 이르기 전에 금천을 건널 수 있도록 조명된 것과 달리 효종 영릉의 금천교는 참도 중간에 조성되어 있다.

     

     

     

     

    홍살문(紅箭門)

     

     

     

     

     

    홍살문(紅箭門)

     

    참도(參道) :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길, 박석을 깔아 놓았으며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은 신이 다니는 길이라 하며 신도(神道)라고 하며, 오

                      른쪽 약간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어도(御道)라고 한다.

     

     

     

     

    정자각(丁字閣)


    세계유산 조선왕릉

     

    조선왕릉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탹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519년의 역사를 지닌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조상에 대한 존경과 숭모(崇募)를 매우 중요한 가치를 여긴 조선은 역대 왕과 오아비의 능을 엄격히 관리했다. 그리하여 42기 능 어느 하나도 훼손되거나 인멸되지 않고 모두 제자리에 완전하게 보존되었다.

     

    조선왕릉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600여 년 전의 제례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조선왕릉 분포

     

    조선 오앙족의 무덤은 119기에 이르며, 이 가운데 능이 42기이고, 원이 13기이며, 묘기64기이다. 조선왕족의 무덤은 무덤 주인의 신분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하는데, 능(陵)은 왕(王)과 왕비(王妃)의 무덤을 말하며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또는 왕의 사친(私親)의 무덤을 말하고 그 외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 무덤처럼 묘(墓)라고 한다.

    42기의 능 가운데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태조 원비 신의왕후의 능), 후릉(정종과 정인왕후의 능)을 제외한 40기의 능이 남한에 있다. 500년이 넘는 한 왕조의 무덤이 이처럼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은 셰계에 그 유래를 찾기 힘들며 문화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조선왕릉 제향

    조선왕릉의 가치는 형태적 보존에만 있지 않다. 조선왕릉을 더욱 더 빛나게 하는 것은 600년 넘게 이이어져 내려온 조선왕릉릐 제례의식이다. 조선은 건국 이래 산릉제례를 엄격하게 지켜왔으며, 1945년 해방 이후에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능기신제(陵忌辰祭, 기일에 올리는 제사)의 전통을 이어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매년 왕과 왕비의 제향일에 산릉제례가 엄숙하게 행해진다.

     

    조선왕릉의 구성

    조선왕릉은 죽은 자가 머무는 성(聖)의 공간과 산 자가 있는 속(俗)의 공간이 만나는 곳으로 그 공간적 성격에 따라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능침공간 : 왕과 왕비의 봉분(능침,능상)이 있는 성역 공간

    - 제향공간 :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하는 영역으로 제사를 지내는 공간

    - 진입공간 : 왕릉의 관리와 제례를 준비를 위한 공간

     

     

    정자각(丁字閣)

     

    조선왕릉 주요 상설(象設)

     

    - 재실(齋室) : 능 제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준비를 하는 곳으로 왕릉을 관리하던 능참봉이 상주하였다.

    - 금천교(禁川橋) : 왕릉이 금천을 건너는 다리로서 속세와 성역의 경계 역할을 한다.

    - 홍살문(紅箭門) :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 붉은 칠을 한 둥근 기둥2개를 세우고 위에는 살을 박아놓았다. 홍문(紅門) 또는 홍전문(紅箭門)

                               이라고도 한다.

    - 참도(參道) :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길, 박석을 깔아 놓았으며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은 신이 다니는 길이라 하며 신도(神道)라고 하며,

                           오른쪽 약간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어도(御道)라고 한다.

    - 비각(碑閣) : 비석이나 신도비를 세워 둔 곳. 신도비(神道碑)는 능 주인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을 가리킨다.

    - 정자각(丁字閣) : 능 제향을 올리는 정(丁)자 모양으로 지은 집. 제향을 올릴 때 왕의 신주를 이곳에 모신다.

    - 무인석(武人石) : 문인석 아래에서 왕을 호위하고 있으며, 두 손으로 장검을 짚고 위엄 있는 자세로 서 있다.

    - 문인석(文人石) : 장명등 좌우에 있으며, 두손으로 홀을 쥐고 서 있다.

    - 능침(陵寢) : 능 주인이 잠들어 있는 곳, 능상(陵上)이라고도 한다.

    - 곡장(曲墻) : 봉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봉분의 동,서북 삼면에 둘러 놓은 담장

     

     정자각(丁字閣)

     

     

    정자각(丁字閣)

     

     

     

     

     

                                                                        정자각(丁字閣)

     

     

                                                                       정자각(丁字閣)

     

     

     

     

     

     

     

     

     

     

     

     

     

     

     

     

     

     

     

     

    신계 옆의 동계가 신계의 좌우에개가 설치되어 있다.

    세종 영릉의 정사각 동편으로는 신계 좌우에 동계가 두 개 설치되어 있는는 점이 특이하다.

     

     

     

     

    예감

     

     

     

     

     

    수라간

     

     

    수라간

     

     

    수라간

     

     

     

     

     

    수복방

     

     

    수복방

     

     

    수복방

     

     

    수복방

     

     

     

     

     

    영릉비

     

     

     

     

     

     

     

     

     

     

     

     

     

     

     

     

     

    좌측 무인석과 석마

     

     

    우측 무인석과 석마

     

     

    좌측 문인석과 석마

     

     

    우측 문인석과 석마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

     

     

     병풍석

     

     

    장명등

     

     

    혼유석, 다리는 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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