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서원

사적 제383호_논산 돈암서원, 논산 노강서원 (2015.03.15)

기리여원 2015. 3. 19. 17:04

돈암서원에 있는문화재

    

1. 사적 제383호 _ 논산 돈암서원

2. 보물 제1569호 _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

3.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5호 _ 논산 돈암서원 충례사

4.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66호 -_ 돈암서원 원정비

5. 충청남도 향토유적 제9호 _ 돈암서원 장판각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세계속으로 뻗어가는 우리의 문화유산   

                               돈암서원

 

 

  세계유산은 세계유산협약에 따라 지정된 유산으로 세계 모든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탁월한 보편적가치가 있다고 인정된 유산을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목록에 등재시킨 유산을 말한다.

 

 

 

  돈암서원을 비롯한 9개 서원은 현재 잠정목록에 올라 2016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준비중에 있다.

 

 

 

보물 제1569호 _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 (論山 遯岩書院 凝道堂) 

 

선현께 제사지내고 학문을 이어받고자 설립한 조선시대 사립교육기관으로 인조 12년(1634)에 세웠다. 김장생(1548∼1631)을 중심으로 김집, 송준길, 송시열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졌을 때에도 없어지지 않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응도당은 학문을 갈고 닦던 강당으로 서원 옛 터에 남아있던 것을 1971년 지금 있는 곳으로 옮겼다. 건물을 옮길 때 기와에 적힌 기록을 발견하면서 오래된 건물임을 알게되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이다.

조선 중기 이후 서원 성격 중 강당으로는 보기 드물게 큰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옛 양식을 잘 따르고 있는 건물로 강당 건축 연구에 좋은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우측으로 30m가면 주차장이 나옵니다.

 

 

 

    홍살문과 하마비

 

 

산앙루(山仰樓)

 

 

 

 

 

 

산앙루(山仰樓)

 

 

사적 제383호 _ 논산 돈암서원 (論山 遁岩書院)

 

돈암서원(遁岩書院)

 

  돈암서원은 1634년(인조12)에 창건되었다.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학문과 덕해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호유학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돈암서원은 예학의 종장인 사계 김장생 사후에 그의 제자들과 유림들이 창건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우리나라 예학의 산실이 되었다(사적 제383호)

 

입지환경(立地環境)

  돈암서원은 고정산 줄기가 이어지는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을 향해 앞으로는 들판을 가로질러 연산천이 흐르고 뒤로는 고정산줄기가 배산을 형성하는 배산임수형태를 하고 있다. 전면 좌측에는 계룡산이 자라하며, 우측에는 대둔산을 끼고 있다.

 

돈암(遁岩)

 서원이 창건되었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하임리 숲말 산기슭에 있는 바위 이름으로, 현재 서원의 자리에서 서북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다.

 

논산 돈암서원 (論山 遁岩書院)  편액  

 

송시열 선생이 쓴 돈암서원 현판      

                              

 

 

 

 

정의재,  양성당, 거경재

 

서원의 기능

조선 서원은 지역의 유학자들이 성현 배향과 후학 양성을 위하여 설립한 사설 교육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운영기구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전개와 역사

 조선 최초의 서원은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에 의해 설립된 백운동 서원이다. 명종으로부터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았다. 이황에 의해 정착과 발전이 이루어지기 시작되었으며, 사액과 더불어 서원에 배속된 토지와 서적 등을 지원 받았다. 사액서원의 위상은 다른 서원에 비해 정치, 사회적 영향력이 월등하였다. 이후 명종 연간에만 18개에 이르는 사액서원이 건립되었고, 숙종대에 이르러 무려 131개소에 이르는 등 서원의 사회적 위상과 세력은 전국적으로 확장되었다. 서원의 정치적 역기능으로 인해 영조대에 이르러 통제의 대상이 되었고, 대원군에 의해 서원철폐가 진행되어 47개 서원을 제외한 모등 서원이 폐쇄되었다.

 

구조와 배치

 제향의 기능을 하는 사우, 교육기능을 담당하는 강당, 누(樓)나 정자를 세워 그 곳에서 유식(遊息)을 하는 전인교육을 하였다. 장판고, 서고, 제기고, 고사,누각 등이 있다. 서원 건축물들은 음향오행과 풍수사상 등에 기반을 두고 물과 산 그리고 주변 지형의 흐름 등을 고려하여 합당한 위치에 배치되었다. 대부분의 건물은 선비정신에 따라 간소함을 중시하여 복잡한 문양과 장식을 피하였으며 주변의 공간적 특성과 조화를 이루도록 배치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보물 제1569호 _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 (論山 遯岩書院 凝道堂) 

 

보물 제1569호 _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 (論山 遯岩書院 凝道堂) 

 

 응도당은 학문을 갈고 닦던 강당으로 서원 옛터에 남아 있던 것을 1971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며, 강학공간 전면에 직각 방향으로 틀어서 배치되어 있다.

 

 돈암서원에서 가장 빼어난 건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응도당은 다른 서원 건축양식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양 옆면에 하나를 덧댄 가첨지붕(눈썹처마) 구조와 지붕형태를 가지고 있다. 대들보는 크고 웅장하며, 생동감 있는 비늘 무늬는 살아있는 용이 꿈틀대는 듯 익공의 화려함과 화반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창방위에 놓인 화반형 조가은 기둥사이마다 1개씩 얹었다.

 

정회당(精會堂)

 

 돈암서원이 창건되기 이전 사계 선생의 부친인 황강 김계휘 선생께서 강학하던 건물이다.

1557년(명종 12) 대둔산 고운사 경내에 설립하였다. 정면4칸, 측면 2칸으로 후면 열 가운데 2칸은 마루방으로 지어져 있다. 고운사 터에서 1954년에 옮겨 왔다.

 

 

                                                                        정회당과 장판각 사이에 있는 향나무

 

 * 서원과 향나무는 같은 연대를 나타나기 때문에 내삼눈앞에는 향나무를 심는다네요                                             

 

 

                                                                             향토유적 제9호 _ 장판각(藏板閣)

 

  논산시 향토눔화유적으로 정면3칸, 측면2칸에 내부는 모두마루로 되어 있으며 무고주 5량집구조이며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어져 있다.  기단은 장대석 외볼대로 하고 덤벙주초를 넣은 다음 두리기둥을 세웠다. 장판강에는 <사계서원> <신독재 전서> <화강실기> <가계유고> <신독재유고> 등 목판이 보관되어 있는 소중한 곳이다. 김장생. 김집. 김계휘의 문집과 왕실의 하사품인 벼루. 전적 등과 책판이 보존되어 있다.

 

 

 

 

 

 

 

                                                                                   내삼문(內三門)

 

 내삼문은 숭례사에 제향을 지내기 위해 출입하는 문으로, 사당앞의 어칸과 양 협칸을 별도로 하나씩 세우고 문과 문사이에는 담장이 처져 있다. 담장에는 지부해함, 박문약례, 서일화풍 등 김장생과 그의 후손들의 예학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12개의 글자를 새겨 놓았다.

 

 

 

    地負海涵(지부해함)

 

      - 땅이 온갖 것을 등에 지고 바다가 모든 물을 받아 주듯 포용하라.

 

 

 

    博文約禮(박문약례)

 

      - 지식은 넓히고, 행동은 예의에 맞게 하라.

 

 

 

    瑞日和風(서일화풍)

 

      -  좋은 날씨 상서로운 구름, 부드러운 바람과 단비, 즉,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웃는 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5호 _ 돈암서원숭례사 (遯岩書院崇禮祠)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5호 _ 돈암서원숭례사 (遯岩書院崇禮祠)

 

 

 

                                                                사계 김장생(金長生)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1548~1631)

 

 본관은 광산,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게(沙溪),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선조 때 서인의 중진은 계휘(繼輝)의 아들이며 효종때의 에학사상가인 김집(金集)의 아버지이다. 김장생은 구봉 공익필과 율곡 이이를 종장으로 하는 기호학맥의 적전으로서 특히 예학(禮學)에 대성하여 우리나라 예학의 태두가 되었고, 김집은 그 학통을 적전으로 계승하였다. 성품이 너그럽고 순박하였으며, 문장과 글씨가 뛰어나서 덕행군자라 일컬어졌다. 회양.철원부사, 원자보도, 양호호소사로 의병을 모집하였으며, 형조참의를 역임했다. 1626년 이이와 성혼을 제향하는 황산서원을 건립하였다. 김집과 송시열을 비롯하여 송준길.이유태.장유.이후원.신민일등 후일 서인과 노론계의 대표적 인물들이 모두 그의 제자들이다. 사후 조정에서 영의정을 증직하였으며, 문원(文元)의 시호를 내렸다. 1717년(숙종 43)에 문묘에 배향되었으며, 경기도 안성의 도기서원 등 약 10개의 서원에 배향되었다.

 

저술

 

 <상례비요(喪禮備要)> 4권, <가례집람(家禮輯覽)>, <전례문답(典禮問答)> <의레문해(疑禮問解)> 등 예와 관련된 저술,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 <경서변의(經書辨疑)> 시문집<사계전서>가 전해지고 있다.

 

 

 

가례집람(家禮輯覽) : <가례의 본문을 중심으로 예서(禮書)의 고천과 여러 학자의 관계설을 주석으로 삼아서 완성한 책

 

 

 

 

 * 이 기와(망새)의 얼굴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실질적으로는 우는 얼굴입니다.

 

 

 

 

 

 

 

                                                                                    양성당(養性堂)

 

 

 

 양성당은 유생들리 모여 강학하던 서재이다.

 

 사당 바로 앞에 위치하여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중앙 3칸은 전후에 퇴를 둔 대청이며, 좌우에는 온돌방 각1칸씩을 두었다. 서원 이건(고종 18년, 1881년) 당시 대강당인 응도당을 옮겨오지 목하고 대신 양성당을 옮겨서 강당으로 활용하였다

 

                                                 충청남도 문화재지료 제366호 _ 돈암서원 원정비 (遯巖書院 院庭碑)

 

 

 돈암서원 원정비 (遯巖書院 院庭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66호로 사계 김장생선생의 제자들이 돈암서원을 세운 사연과 사계와 그의 아들인 신독재 김집의 학문과 업적을 적은 비이다. 연꽃무늬가 새겨진 방향의 비 받침대에 대리석 비석과 비 머리가 서 있다. 1669년(현종 10)에 세웠는데 비문을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썼으며, 앞면에 새겨져 있는 전서체 제목은 김만기가 썼다.

 

 

 

 

 

 

                                                                             정의재,  양성당, 거경재

 

 

 

 

 

 

 

* 여기서부터는 논산노강서원입니다.

 

 

                                                                                    노강서원 홍살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0호 _ 노강서원 (魯岡書院)

 

 윤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조선 숙종 1년(1675)에 처음 세워진 후, 숙종 8년(1682)에 임금으로부터 ‘노강’이라는 현판과 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았다. 후에 윤문거를 비롯하여 윤선거·윤증을 함께 모셨다.

앞쪽에 강당이 있고 뒤쪽에 사당이 위치한다. 강당은 앞면 5칸·옆면 3칸의 비교적 규모가 큰 건물로서, 대청과 온돌방으로 되어있다. 서원의 행사·유림의 화합·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윤황을 중심으로 여러 선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당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서, 매년 봄과 가을 2차례 제사를 지내고 있다.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에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던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보물 제1746호 _ 논산 노강서원 강당 (論山 魯岡書院 講堂)

 

 

 

 

 

 

 

 

태극기 밑에 문화재청에서 발급한 보물지정서가 걸려 있습니다.

 

 

 

 

 

 

 

 

 

 

 

 

 

 

 

 

 

 

 

 

 

 

 

 

 

 

 

                                                                           보물 제1746호 _ 논산 노강서원 강당 (論山 魯岡書院 講堂)

 

 

 

 

 

 

 

 글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