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충청남도

충청남도 기념물 제155호_예산 효교리 매향비

기리여원 2021. 6. 30. 16:27

충청남도 기념물 제155호 _ 예산 효교리 매향비 (禮山 孝橋里 埋香碑)

 

수  량 : 1기

지정일 : 2001.06.30

소재지 : 충남 에산군 봉산면 예덕로 321-13(효교리)

시   대 : 고려시대로 추측

 

오른쪽 석각은 '□□6년 계미 3월 12일(□□六年 癸微 三月 十二日)에 이산(伊山)과 덕풍(德豊)의 승려와 결연 향도들이 축대를 쌓아 비석을 올려놓고 고한다. 성에서 나와 용오리 들머리에 매향을 도감(都監) 승려들이 함께 하였다[□□六年癸未三月十 二日伊山德豊袈裟結(綠)香徒□告 城出龍吾里埜頭 埋香庫同]."라는 내용이다. 왼쪽 석각은 '뫼뿌리 사이에 일만(一万)[매향의 숫자로 추정]을 그리고 삼칠(三七)[매향의 숫자로 추정]많은 나물로 향주(香[會]主)가 미륵 앞에 매향을 하였다[峯巒間一万 二七□□間□富菜(乘) 香(會)主埋香□(彌)勒前]."라는 내용이다.


매향은 고려시대로 추측되는데, 비문의 내용에 이산과 덕풍의 지명이 보인다. 이산과 덕풍은 조선 태종 1405년 덕산으로 개편되기 때문에 이산과 덕풍이 공존하였던 시대를 본다면 고려 현종 1018년과 1405년 사이가 된다. 그리고 간지 계미자(癸未字)로 보자면 1043년[계미]~1403년[계미]사이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400년 사이에 매향하였으며 승려의 개입으로 보아서 고려시대로 본다.

 

예산 효교리 매향비 표지판

 

 

이 표지판에서 우측으로 150m 가시면 됩니다.

 

 

오시다가  이 곳 삼거리에서 우측 첫번째 가옥에서 좌측으로 올라갑니다.

 

 

좌측 첫번째 가옥이 나오면 경운기 옆으로 올라갑니다.

 

 

이 경운기 옆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면 바로 예산 효교리 매향비가 나옵니다.

 

 

예산 효교리 매향비

 

매향은 침향을 만들기 위하여 향목을 갯벌에 묻어두는 행위를 말한다. 매향비는 매향을 한 후 그 사실을 암각이나 비의 형태로 새겨 증거를 남겨놓은 것이다. 효교리 매향비는 일명 ‘마되바위’로도 불린다. 매향비 밑에는 지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놓여 있어 고인돌의 개석에 매향한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예산 효교리 매향비

 

바위의 중심에는 원형의 홈이 파여 있으며 그 주변에도 장방형의 홈이 두 개 있다. 이 홈은 말(斗)과 되(升), 홉 등으로 불려왔는데 보부상들이 말과 되를 재는 도량형 역할을 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중앙에 파여진 원형의 홈 양 측면에는 음각한 명문이 있는데 계미년에 이산(伊山)·덕풍(德豊) 사람들이 용오리(龍吾里)에 매향한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예산 효교리 매향비

 

효교리 매향비는 다른 지역의 매향과 마찬가지로 미륵불의 용화회에 공양할 침향을 마련하는 불교신앙 활동과 관련이 있다. 비의 조성 시기는 대략 1403년(태종 3)으로 추정된다.

 

예산 효교리 매향비 우측면

 

 

예산 효교리 매향비 후면

 

 

예산 효교리 매향비 좌측면

 

 

예산 효교리 매향비

 

 

예산 효교리 매향비 비문

 

 

바위 중앙에 파인 원형 홈과 장방형 홈

 

바위의 중심에는 원형의 홈이 파여 있으며 그 주변에도 장방형의 홈이 두 개 있다. 이 홈은 말(斗)과 되(升), 홉 등으로 불려왔는데 보부상들이 말과 되를 재는 도량형 역할을 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예산 효교리 매향비 좌측비문

 

중앙에 파여진 원형의 홈 양 측면에는 음각한 명문이 있는데 계미년에 이산(伊山)·덕풍(德豊) 사람들이 용오리(龍吾里)에 매향한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예산 효교리 매향비

 

2021.06.27. 예산 봉산면 효교리 매향비

글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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