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제주도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호_오현단

기리여원 2021. 10. 18. 10:17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호 _ 오현단 (五賢壇)

 

수량/면적 : 일곽

지정(등록)일 : 1971.08.26

소 재 지 : 제주 제주시 이도1동 1421-3번지

 

조선시대에 이곳 제주도에 유배되거나 방어사로 부임하여 이 지방의 교학 발전에 공헌한 다섯 분(5현)을 기리고 있는 제단으로, 이들의 위패를 모시던 귤림서원의 옛 터에 마련되어 있다.

 

5현은 중종 15년(1520)에 유배된 충암 김정 선생, 중종 29년(1534)에 제주목사로 부임해 온 규암 송인수선생, 선조 34년(1601)에 안무사로 왔던 청음 김상헌선생, 광해군 6년(1614)에 유배된 동계 정온 선생, 숙종 15년(1689)에 유배된 우암 송시열 선생 등 다섯 분이다.

 

고종 29년(1892) 제주사람 김의정이 중심이 되어 비를 세우고 제단을 쌓아놓았는데, 원래는 선조 11년(1578) 임진이 목사로 있을 때, 판관 조인준이 가락천 동쪽에 충암 김정을 모시기 위한 충암묘를 지은 것이 그 시초이다. 현종 6년(1665) 판관 최진남이 이 묘를 장수당 남쪽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은 뒤, 숙종 8년(1682) 예조정랑 안건지를 제주도에 파견하여 ‘귤림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여 김정 선생·송인수 선생·김상헌 선생·정온 선생 등 네 분의 위패를 모시도록 하였다. 숙종 21년(1695) 송시열 선생도 함께 모시면서 5현을 배향하게 되었으나, 고종 8년(1871)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 서원이 헐리게 되어, 그 터에 이 제단을 설치하게 되었다.

 

단내에 있는 5현의 자취로는 철종 7년(1856) 송시열 선생의 글씨로 하여 판관 홍경섭이 바위에 새긴 ‘증주벽립’이라는 글씨와, 김정 선생과 송시열 선생의 ‘적려유허비’가 남아있다.

 

오현단 (五賢壇) 표지판

 

 

오현단 (五賢壇) 표지석

 

 

오현단 (五賢壇)

 

오현 (五賢)

 

중종 15년(1520)에 유배된 충암(沖庵) 김정(金淨) 선생,

중종 29년(1534)에 제주목사로 부임해 온 규암(圭菴) 송인수(宋麟壽)선생,

선조 34년(1601)에 안무사로 왔던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선생,

광해군 6년(1614)에 유배된 동계(桐溪) 정온(鄭蘊) 선생,

숙종 15년(1689)에 유배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 등 다섯 분이다

 

오현단 (五賢壇)

 

 

오현단비석

 

 

우암 송선생 적려유허비(尤庵宋先生 謫廬乳墟碑)

 

 

증주벽립(曾朱壁立)

 

단내에 있는 5현의 자취로는 철종 7년(1856) 송시열 선생의 글씨로 하여 판관 홍경섭이 바위에 새긴 ‘증주벽립’이라는 글씨가 있다.

 

증주벽립(曾朱壁立)

 

 

장수당

 

장수당(藏修堂)은 1660년(현종 1) 제주목사 이괴(李襘)가 진사(進士) 김진용(金晉鎔)의 건의로 세종 때 한성판윤을 지낸 고득종(高得宗)의 엣터에 세웠던 10칸의 강당이다. 이괴 목사의 장수당기나 대제학 조경의 장수당기에는 목재를 구하고 역부를 고용하는 것까지 일체의 공사를 맡아 장수당을 지은 김진용의 업적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충암사(김정의 사묘)가 장수당 남쪽으로 옮겨진 이후 명실상부한 서원인 귤림서원이 세워지게 되었다. 귤림서원은 1871년(고종 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 1875년(고종 12) 봄에는 제주목사 이희충(李熙忠)이 장수당 옛 터에 경신재(敬信齋)를 세워서 선비의 자제들이 학업을 닦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귤림서원

 

귤림서원은 1578년(선조 11)에 제주판관 조인후가 기묘사화로 1520년(중종 15) 6월 제주도에 유배되어 사사(賜死)된 김정(金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의 적거지에 사묘를 세운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1660년(현종 1) 제주목사 이괴(李襘)가 장수당을 건립하였고, 1667년(현종 8)에는 제주판관 최진남(崔鎭南)이 김정의 사묘로 장수당 남쪽인 현재의 오현단 안에 옮겨 짓고, 이를 사(祠)로 하고 장수당(藏修堂)을 재(齋)로 하여 규림서원(橘林書院)이라 현액하였다. 1682년(숙종 8) 신경윤(愼景尹)이 제주목사로 있을 때 예조정랑 안건지(案建之)를 제주도에 파견하여 귤림서원으로 사액을 하고 김정, 송인수, 김상헌, 정온의 4현을 봉향하다가 1696년(숙종 22)에 이익태(李益泰) 절제사 때 송시열이 추향됨으로써 5현을 배향하게 되었다. 그 뒤 1850년(철종 1) 제주목사 장인식이 귤림서원 묘정비를 세웠다. 초기의 재생(齋生)은 20명이었다가, 뒤에 15인을 늘려 35인이 되었다.

 

2021.09.25. 제주시 이도일동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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