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조선왕릉

사적 제199호_선릉과 정릉 (2017.01.22)

기리여원 2017. 1. 24. 08:46

  설경에 심취된

                      선릉· 정릉(宣凌 · 靖陵)

 

서울 강남에 위치한 세계유산 선릉과 정릉은 도심 속에 존재하는 왕릉으로 현대의 삶과 공존하는 문화유산이다. 선릉은 조선 제9대 성종과 정현왕후 윤씨의 능이며, 정릉은 조선 제11대 중종의 능이다.

 

9대 성종 선릉(成宗 宣陵)

선릉


* 선릉은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으로 서쪽 언덕에 조선 제9대 왕인 성종대왕이, 동쪽 언덕에는 계비

   (繼妃) 정현왕후가 모셔져 있고 홍살문과 정자각이 두 릉의 남쪽 가운데 위치한다.

* 성종은 1457년 7월 30일 경복궁에서 세조의 맏아들인 의경세자(덕종으로 추존)의 둘째아들로 태어

   났다.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이 1469년 11월28일 재위 14개월만에 승하하자 정희대비(세조의 비)

  의 명에 따라 13세에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 중 경국대전을 반포하여 조선의 법전

  체제를 완성하고 조세제도로는 관수관급제를 실시하여 백성의 부담을 줄였다, 홍문관을 설치하

  고  동국여지승람 등 많은 서적을 편찬하였다.  국조오례의를 편찬하여 유교예법을 확립하고 창경

  궁을  창건하였다. 밖으로 윤필상 등을 보내 압록강, 두만강 건너의 야인을 물리쳐 태평성대를 이루

  었다.


* 왕비로는, 원비인 공혜왕후(1456~74)는 후사 없이 승하하여 파주 순릉(順陵)에 모셔졌고, 연산군

  의 모후인 윤씨(1455~1482)는 폐비가 되어 서삼릉의 회묘(懷墓)에, 계비 정현왕후(1462~1530)는

  이 곳 선릉의 동쪽 언덕에 모셔져 있다.


* 성종은 3비 9후궁에게서 16남 12녀를 두고 1494년 12월 24일 창덕궁에서 보령 38세에 승하하니 재

  위기간은 25년 1개월이다.


* 정현왕후는 윤호(尹壕)의 딸로 1462년 6월 25일 태어나, 1473년 6월 숙의(淑儀)가 되었고, 1480년

   11월 8일 왕비가 되어 중종과 신숙공주를 낳았다. 1530년 8월 22일 경복궁에서 보령 69세로 승하하

   여 10월 29일 선릉에 장사되었다.


* 성종대왕릉은 병풍석의 면석(面石)에는 구름 문양 속에 십이지신(十二支神)이, 지대석(地臺石)과

   만석(滿石)에는 연꽃문양, 인석(引石)에는 해바라기와 모란문양이 조각되어 있고 상석(裳石) 및 난

   간석이 있다. 정현왕후릉은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만 있으며 이곳 석물들은 국조오례의에 의하여

   장대하면서도 조화가 잘 이루어져 균형미가 있다.



* 선릉 연혁

- 1495년(연산군) 성종 안장, 선릉 조성

- 1530년(중종 25) 정현왕후 안장, 동원이강릉으로 조성


* 선릉 제향일

- 성종 : 매년 12월 24일 (음력)

- 정현왕후 : 매년 8월 22일(음력)

 

제11대 중종 정릉(中宗 靖陵)

정릉


* 정릉은 중종대왕의 단릉(單陵)이다. 중종은 1488년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사이에서 태어나 1494년

   진성대군에 봉해졌다. 1506년 9월 박원종 등이 반정을 일으켜 조선 제10대 왕인 연산군을 폐위시키

   고 성종의 둘째 아들인 진성대군을 조선 제11대 왕으로 추대하였다.


* 재위 기간 중 조광조 등 새로운 학가를 등용하여 나라의 기틀을 확립하고자 현량과를 설치하고 향

  약(鄕約)을 실시하여 향촌자치를 시도하였다. 그의 제위기간 중 서원(書院)이 설립되기 시작하였

  다. 주자도감(鑄字都監)을 설치하여 활자를 개량하여 많은 책을 펴냈다, 북방야인의 침범에 대비하

  고, 삼포에서 왜인들이 난동을 부리자 이를 진압한 뒤 한 뒤 비변사(備邊司)를 설치하여 국방체제를

  정비하였다.


* 왕비로는, 신수근의 딸인 원비 단경왕후(1487~1557)는양주시 온릉(溫陵)에, 윤여필의 딸인 제1계

   비 장경왕후(1491~1515)는 고양시 서삼릉의 희릉(禧陵)에, 윤지임의 딸인 제2계비 문정왕후(1501

   ~1565)는 서울시 노원구 태릉(泰陵)에 모셔져 있다.


* 중종은 3비 9후궁에게서 9남 11녀를 두었다. 1544년 11월 14일 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다음날

  창경궁에서 승하하니 재위 39년이며 보령 57세이다. 1545년 2월 현재의 고양시 희릉에 장사하였으

  나, 문전왕후에 의하여 1562년 9월 4일 이곳 선릉 동쪽 동남향 언덕으로 옮겨졌다. 문정왕후 사후

  문정왕후도 이곳으로 장사하러 하였으나, 한강의 범람으로 홍살문까지 물이 들어와 이장론(移葬

  論)이 대두하여 문정왕후는 태릉에 장사되었다.


* 정릉은 단릉으로, 홍살문과 정자각 및 능침이 일직선상에 있다.

  병풍석의 면석에는 구름 모양 속에 십이지신이, 지대석과 만석에는 연꽃모양이, 인석에는 국화모양

  과 모란모양이 조각되어 있고 상걱석 및 난간석이 있으며 문석인과 무석인은 장대하고 선각이 뚜렸

  하며 머리가 몸에 비하여 큰 편이다.


* 정릉 연혁

 - 1562년(명종 17) 장경왕후 (제 1계비)의 희릉(서삼릉 소재)

   오른쪽 언덕에 있던 능을 지금의 자리로 천장

 

* 제향일

 - 매년 12월 9일(양력)

 

 

 

 

 

 

 

 

 

 

사적 제199호  _ 서울 선릉과 정릉 (서울 宣陵과 靖陵)  

 

면   적 : 240,589㎡

지정일 : 1970.05.26

소재지 : 서울 강남구 선릉로100길 1 (삼성동)

시   대 : 조선시대

 

선릉은 9대 성종과 부인 정현왕후의 무덤이다.

성종은 유교사상을 정착하여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사림을 성장시켜 훈구세력을 견제하고, 정치기반을 조성함으로써 조선 초기의 전반적인 체제를 안정시켰다.

선릉은 왕릉과 비릉이 각각 다른 산등성이에 있는 동원이강의 형식으로 비릉에는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고, 다른 석물들은 왕릉과 같으며 『국조오례의』를 따르고 있다. 왕릉에는 12면의 병풍석을 세우고 그안에 동물의 머리에 사람의 모습을 한 십이지신상을 새겼다. 난간석은 12칸이며 그 밖에 양석·호석·망주석·문석인 등의 석물이 있다.

정릉은 11대 중종의 무덤이다.

중종은 연산군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기위해 노력하였으나, 개혁파와 공신파의 정치적 논쟁이 끊이지 않아 조정이 안정되지 못하였다.

정릉은 원래 중종의 두번째 왕비(제1계비) 장경왕후의 무덤인 희릉의 오른쪽 언덕에 있었으나 세번째 왕비(제2계비)인 문정왕후 윤씨가 풍수지리상 불길하다고 하여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무덤 주변의 석물은 선릉의 석물제도를 본떴다. 조선왕릉 중 왕만 단독으로 있는 무덤은 후대에 왕릉이 된 단종의 장릉을 제외하고 태조의 건원릉과 중종의 정릉뿐이다.

임진왜란 때는 선·정릉의 양릉이 훼손되는 변을 겪게 된다. 재실(齋室)은 양릉의 사이에 있으며, 여름철의 침수를 피하기 위해 층단에 지었는데 이러한 예는 선릉·정릉 뿐이다

 

 

 

 

 

 

 

 

 

 

선릉,정릉 재실

재실(齋室) : 능 제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준비를 하는 곳으로 왕릉을 관리하던 능참봉이 상주하였다

 

500년된 노거수인 은행나무

 

가을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아름답겠네요

 

 

 

 

선릉.정릉 역사문화관

 

 

 

 

 


 

 

 대체적으로 표지석이 매표소입구에 있는데 이 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 여기서부터는 선릉입니다.

 

 

 

홍살문에서 바라 본 성종의 릉과 정자각


 

 

 

 

 

 

 

선릉 정자각

 

 

 

 

 

 

 

 

 

 

 

수라간

 

매년 제향을 지낼 때, 음식을 덥히는 곳입니다. 


 수복방

 

왕릉을 지키고 돌보던 능지기가 머물던 곳

 

선릉비각

 

 

 

 

 

 

 

 

조선의 제9대 임금인 성종의 릉


성종(成宗, 1457~1494)은 1469년에 숙부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 정희왕후 윤씨의 명으로 13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성종은 세조대에부터 편찬해오던 <경국대전>을 반포하였고, <대전속록>을 편찬하여 유교적 통치의 근거가 되는 법제를 이룩하였다.

정현왕후(貞顯王后, 162~150)는 연산군의 생모 윤씨가 폐위되자 1480년(성종 1)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시 아들 중종(진성대군)의 즉위를대비의 권한으로 허락하기도 하였다.


조선의 제9대 임금인 성종의 릉


 

 

 

 

 

 

 

 

▼ 여기서부터는 정현왕후의 릉입니다.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릉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릉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릉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릉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릉

 

 

 

 

 

 

 

 

난간석주

 

 

 

 

 

 

 

 

 

 

 

 

 

 

▼ 여기서부터는 정릉입니다.

 

홍살문에서 바라 본 중종의 릉과 정자각

 

 

 

 

 

 

 

 

정릉 정자각

 

 

 

 

 

정릉 정자각                                                     

 

 

 

 

 

 

 

 

 

 

 

정자각에서 바라 본 홍살문

 

 

정자각에서 바라 본 홍살문

 

 

정자각에서 바라 본 비각

 

 

 

 

 

정릉 비각

 

 

 

 

 

 



정릉, 제11대 중종의 릉, 단릉


정릉(제11대 중종의 릉(단릉))


중종(中宗, 1488~1544)은 1494년(성종 25)에 진성대군에 봉해졌고, 1506년에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자 왕위에 올랐다. 연산군대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새로운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여였다. 사회적으로 향약이 전국적으로 실시되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였다. 원래 정릉은 서삼릉 내의 희릉(장경왕후) 오른쪽 언덕에 있엇으나 1562년(명종 17)에 문정왕후에 의해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출처 문화재청, 카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