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 제290호_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

기리여원 2022. 4. 4. 13:35

국가민속문화재 제290호 _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 (大田 小大軒·浩然齋 古宅)

 

수량/면적 : 건물 4동(460.4㎡), 토지 2,813㎡(2필지)

지정일 : 2016.08.26

소 재 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동춘당로 70 (송촌동, 대전 소대헌 호연재 고택)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은 조선 후기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동춘당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宋炳夏, 1646~1697)가 1674년 분가하여 건립한 고택으로,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宋堯和, 1682~1764)가 1714년 옮겨 지었다.

 

소대헌 송요화의 부인 안동 김씨(1681~1722)는 조선후기 여류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호가 호연재(浩然齋)로 경서와 사서에도 능통하였다 하며 한시 134수를 남겼다.

 

고택은 조선 중기 대전지역의 살림집을 이해할 수 있는 건축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충청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사랑채와 작은사랑채를 동시에 갖추고 대청을 한 쪽에 두는 방식이나 안채의 마루방과 툇마루 등이 전면 뿐 아니라 사방에 다양한 크기로 배치하는 양식은 지역적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큰집 격인 동춘당 종택과 함께 한 집안의 가계 계승, 충청지역의 명문가 후손 집안으로서의 면모를 찾을 수 있으며, 비교적 조선 중기의 원형이 잘 남아 있고, 대전지역에서는 살림집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적 특색을 알 수 있는 희소성이 있는 등 민속적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 표지판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

 

집은 회덕 동춘당(보물)의 우측 후면에 위치하고 있는데 안채와 큰사랑채, 작은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호연재(浩然齋), 큰사랑채는 소대헌(小大軒), 작은사랑채는 오숙재(寤宿齋)라고 부른다.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큰 사랑채가 있고, 오른쪽에는 작은 사랑채가 있다. 작은 사랑채의 왼쪽에 나있는 중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위치하고 있다. 

 

큰사랑채(소대헌 고택)

 

사랑채인 소대헌은 독서나 손님맞이 할 때 사용하였던 큰 사랑채 목조건축물이다.

건물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우측 2칸은 통칸에 우물마루의 넓은 대청이 있으며 그 옆에 툇마루가 달린 2칸 통칸의 온돌방이 있다. 그리고 방 사이에는 미닫이 문을 달았다. 온돌방 옆에 있는 1칸에는 앞 칸은 온돌방을 꾸미고 뒷 칸은 상부는 다락, 하부에는 함실이 있다. 

 

소대헌 현판

 

 

큰사랑채(소대헌)

 

 

큰사랑채(소대헌) 후면

 

 

큰사랑채(소대헌) 측면

 

 

작은 사랑채(오숙재)

 

오숙재(寤宿齋)는 부모나 장성한 자녀의 방으로 사용하였던 작은 사랑채 목조건축물이다.

당호인 오숙재(寤宿齋)는 소대헌 송요화(宋堯和, 1682~1764)의 아들인 송익흠(宋益欽, 1708~1757)의 호인데 '깨어 있을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항상 공부를 한다'는 뜻이다.

 

오숙재(寤宿齋) 현판

 

 

작은 사랑채(오숙재)

 

 

작은 사랑채(오숙재) 좌측의 중문

 

사랑채의 왼쪽에 나있는 중문을 통해서 안채로 들어갈 수 있다.

 

작은 사랑채(오숙재)

 

 

'ㄱ'자형 안채인 호연재(浩然齋)

 

.안채는 자형 평면에 사다리꼴 모양의 방형 주초를 놓고 방형기둥을 세운 다음 3량집으로 구성하였다. 안채는 최근에 대청에 유리덧문을 달아 원형이 변경되었다.

 

안채(호연재) 정면

 

 

안채(호연재) 좌측면

 

 

안채 후면

 

 

사당인 송씨가묘(宋氏家廟) 

 

송씨가묘의 건물규모는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홑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건축물이다.

 

2022.03.20,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

글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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