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남한에 있는 고려왕릉 5기

기리여원 2022. 6. 30. 14:07

남한에 있는 고려 왕릉 5기

 

1. 강화 석릉(사적 제369호) : 고려 21대왕 희종의 능

2. 강화 곤릉(사적 제371호) : 고려 22대왕 강종의 두번째 왕비 원덕태후 유씨의 능

3. 강화 홍릉(사적 제224호) : 고려 23대왕 고종의 능

4. 강화 가릉(사적 제370호) : 고려 24대왕 원종의 왕비 순경태후의 능

5. 고양 공양왕릉(사적 제191호) : 고려 34대 마지막 왕인 공양왕(1345~1394,재위 1389∼1392)과 그의 부인 순비 노씨의 능

   삼척 공양왕릉(강원도 기념물 제71호) : 고려 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재위 1389∼1392)의 능

 

 

 

▼강화 석릉입니다

 

사적 제369호 _ 강화 석릉 (江華 碩陵)

 

소재지 : 인천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산182번지

 

고려 희종(재위 1204∼1237)의 무덤이다.

 

희종은 신종의 첫째 아들로 어머니는 정선태후 김씨이며, 부인은 성평왕후 왕씨이다. 1204년 왕위에 올랐고,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희종 7년(1211)에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강화 교동으로 갔다. 고종 24년(1237) 57세의 나이로 죽자 낙진궁으로 옮겼으며, 10월에 덕정산 남쪽에서 장례를 지내고 석릉이라 하였다.

 

조선 현종 때 강화유수 조복양이 찾아내어 다시 무덤을 쌓았는데, 그 뒤 석물도 부서지고 무너진 무덤을 1974년 손질하여 고쳤다. 석릉 주변에는 최근에 고려시대 귀족의 무덤이라 생각되는 돌방무덤(석실분)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강화 석릉 (江華 碩陵)

 

 

강화 석릉 (江華 碩陵)

 

 

강화 석릉 (江華 碩陵)

 

2022..01.23.일요일

 

▼ 강화 곤릉입니다.

 

사적 제371호 _ 강화 곤릉 (江華 坤陵)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산75번지

 

고려 강종(재위 1211∼1213)의 부인인 원덕태후 유씨의 무덤이다.

원덕태후는 고종의 어머니로 강종 1년(1212)에 왕비가 되고 연덕궁주라 하였다. 뒷날 원덕태후는 추대되고 1253년에 정강의 시호가 더해졌는데, 언제 사망하였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석물은 없어졌고 봉분과 무덤을 둘러싼 담도 무너졌던 것을 197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손질하여 고쳤다.

 

강화 곤릉 (江華 坤陵)

 

 

강화 곤릉 (江華 坤陵)

 

 

강화 곤릉 (江華 坤陵)

 

2022..01.23.일요일

 

▼ 강화 홍릉입니다

 

사적 제224호 _ 강화 홍릉 (江華 洪陵)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129-2번지

 

홍릉은 고려 23대 고종(1192∼1259)의 무덤이다.

이 당시는 정치적으로 최씨 집권시기였으며 밖으로는 거란·몽골의 침입 등으로 고통받았던 시기이다. 고종 18년(1231)부터 여러 차례에 거친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국토는 초토화되고, 인명과 문화 유산의 손실 또한 매우 컸다. 고종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대장경을 만드는 등 문화상의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이것이 현재 합천 해인사에 남아있는 『고려대장경』이다.

원래의 홍릉은 높게 쌓은 3단의 축대로 이루어져 제일 아래에 정자각, 2단에는 사람형상을 한 조각, 가장 높은 곳에는 왕릉이 배치된 형식이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으며, 무덤 주위에는 난간으로 두른 돌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고 전한다. 무덤의 4모서리에는 짐승을 조각한 돌이 1개씩 배치되어 있었으나 없어졌고, 현재는 사람 모양의 돌조각 2구가 남아있다.

최근에 난간을 보수하고, 봉토 아랫부분에 능을 보호하는 돌을 설치하였다.

 

강화 홍릉 (江華 洪陵)

 

 

강화 홍릉 (江華 洪陵)

 

 

강화 홍릉 (江華 洪陵)

 

2022.01.07.금요일

 

▼ 강화 가릉입니다.

 

사적 제370호 _ 강화 가릉 (江華 嘉陵)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산16-2번지

 

고려 원종(재위 1259∼1274)의 왕비 순경태후의 무덤이다.

 

순경태후는 장익공 김약선의 딸로서 고종 22년(1235) 원종이 태자가 되자 태자비인 경목현비가 되었으며, 다음해에 충렬왕을 낳았다. 지금의 자리에는 고종 31년(1244)경 사망한 뒤 모신 것으로 짐작한다. 고려 원종 3년(1262) 정순왕후로 추대되고 충렬왕이 즉위(1274)하여 순경태후로 높여졌다.

 

무덤 주변의 석물은 부서져 없어졌고, 봉분도 무너진 것을 197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손질하여 고쳤다.

 

강화 가릉 (江華 嘉陵)

 

 

강화 가릉 (江華 嘉陵)

 

 

강화 가릉 (江華 嘉陵)

 

2022..01.23.일요일

 

▼ 고양 공양왕릉입니다.

 

사적 제191호 _ 고양 공양왕릉 (高陽 恭讓王陵)

 

소재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65-1번지 산65-6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1345~1394,재위 1389∼1392)과 그의 부인 순비 노씨의 무덤이다.

공양왕은 이성계 등에 의해서 즉위한 이름뿐인 왕이었다. 조선 건국 직후 원주로 추방 되었다가 태조 3년(1394)에 삼척부에서 두 아들과 함께 살해되었다. 태종 16년(1416)에 공양왕으로 봉하고 고양현에 무덤을 마련하였다. 왕과 함께 묻힌 왕비는 노신의 딸로 숙녕·정신·경화 세 공주와 창성군을 낳았으나 고려가 멸망한 후 왕과 함께 폐위되었다.

무덤은 쌍능 형식으로 무덤 앞에는 비석과 상석이 하나씩 놓여 있고, 두 무덤 사이에 석등과 돌로 만든 호랑이 상이 있다. 이 호랑이 상은 고려의 전통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나, 조선 초기의 왕릉인 태조와 태종 무덤의 것과 양식이 비슷하다.

무덤의 양쪽에는 문신과 무신상을 세웠다. 무덤 앞에 만들어 놓은 석물은 양식과 수법이 대체로 소박하다. 비석은 처음에 세운 것으로 보이지만 ‘고려공양왕고릉(高麗恭讓王高陵)’이라는 글씨가 있는 무덤을 표시하는 돌은 조선 고종 때에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양왕의 무덤은 이곳뿐만 아니라 그가 살해된 삼척 지역에도 무덤이 전해지고 있다.

 

고양 공양왕릉 (高陽 恭讓王陵)

 

 

고양 공양왕릉 (高陽 恭讓王陵)

 

 

고양 공양왕릉 (高陽 恭讓王陵)

 

2022.01.30.일요일

▼ 삼척 공양왕릉입니다.

 

강원도 기념물 제71_ 삼척 공양왕릉 (三陟 恭讓王陵)

 

소 재 지 : 강원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178번지

 

고려 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재위 1389∼1392)의 묘로 전하는 곳이다.

 

공양왕은 1392년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면서 폐위되었고, 태조 3년(1394)에 왕자 석(奭), 우(瑀)와 함께 삼척으로 간 뒤 교살되었다.

 

공양왕릉은 강원도 삼척시와 경기도 고양시 두 곳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문헌의 기록이 부족하여 어느 쪽이 왕릉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고양시의 능은 조선 왕조가 인정하고, 삼척시의 능은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것이나 둘 다 조선시대 문헌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삼척시 왕릉에 대한 기록은 현종 3년(1662) 삼척부사 허목의『척주지』와 철종 6년(1855) 김구혁의『척주선생안』이 있다. 그리고 3년마다 공양왕릉 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풍습이 남아 있다.

 

이곳에는 공양왕과 관련된 지명이 전해지는데 임금이 유배된 곳이라 하여 궁촌, 마을 뒷길 고돌산에서 살해되었다고 하여 살해재, 왕자 석이 살았다는 궁터, 말을 매던 마리방 등이 그것이다.

 

삼척의 공양왕릉은 봉분이 모두 4기인데 가장 남쪽에 있는 것이 공양왕릉, 2기는 두 왕자, 나머지 하나는 시녀 또는 말의 무덤이라 전한다.

 

삼척 공양왕릉 (三陟 恭讓王陵)

 

 

삼척 공양왕릉 (三陟 恭讓王陵)

 

 

삼척 공양왕릉 (三陟 恭讓王陵)

 

2021.08.13.금요일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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