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조선시대 왕을 낳은 일곱 비빈들의 신위를 모신 사당, 사적 제149호_육상궁(칠궁)

기리여원 2022. 5. 17. 09:18

사적 제149호 _  서울 육상궁 (서울 毓祥宮)

 

수량/면적 : 일곽

지정일 : 1966.03.22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2 (궁정동)

시   대 : 조선 영조 1년(1724)

 

영조의 생모이며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영조 원년(1724)에 세워 숙빈묘라 했으나 영조 29년(1753)에 승격시켜 육상궁이라 고쳐 불렀다. 고종 19년(1882) 화재를 당하여 다음해에 복구했다. 육상궁은 칠궁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1908년에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는 7개의 궁들을 이곳에 옮겼기 때문이다. 칠궁은 육상궁, 저경궁, 대빈궁, 연호궁, 선희궁, 경우궁, 덕안궁을 일컫는데 조선왕조 역대 왕들의 친모로서 정비에 오르지 못한 7인의 신위를 모셔 제사지내는 곳이다.

육상궁은 나즈막한 담에 둘러싸여 있고 왼쪽에는 네 개의 사당이 각기 독립해 서로 접하여 서있다. 이 사당 앞쪽에는 제사지내는 곳과 우물이 있으며 그 앞에 정문이 있다. 제사 지내는 건물 주위의 뜰은 한국식 정원의 전형을 이루어 정숙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 육상궁(칠궁) 표지판

 

 

서울 육상궁(칠궁) 배치도

 

 

서울 육상궁(칠궁) 출입문

 

 

서울 육상궁(칠궁) 외삼문 (外三門)

 

 

서울 육상궁(칠궁) 재실 협문

 

 

육상궁(칠궁) 재실

 

재실은 제례를 준비하는 건물이다. 풍월헌(風月軒)과 송죽재(松竹齋)라는 두 개의 현판이 동서로 걸려 있으며, 연결채로 이어진 뒤편에는 삼락당(三樂堂)이 있다. 삼락당과 풍월헌은 1753년(영조 29)에 영조가 육상궁에 에를 올렸다는 기록들이 처음 보이므로 이 무렵 건립된겅으로 추정된다.

 

재실에 걸려 있는 풍월헌(風月軒), 송죽재(松竹齋) 현판

 

 

육상궁(칠궁) 재실

 

 

연호궁(延祜宮)으로 들어가는 내삼문

 

 

이안청(移安廳)

이안청은 신주를 임시로 보관하던 곳으로, 육상궁과 연호궁의 앞쪽에 동서로 대칭되게 마주보고 있다

 

연호궁(延祜宮), 육상궁(毓祥宮)

 

연호궁(延祜宮)

 

연호궁은 추존 왕인 진종(효장세자, 1719~1728, 早卒)의 어머니이며 영조의 후궁인 정빈 이씨(靖嬪李氏, 延祜宮, 34세, 1694~1721))의 사당이다. 정조가 즉위 후 효장세자를 진종으로 추존하고 정빈을 위해 사당을 세워 연호궁이라 하였다. 1870년(고종 7)에 육상궁에 합사되어 오늘에 이른다.

 

육상궁(毓祥宮)

 

육상궁은 영조의 어머니이자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淑嬪崔氏, 1670~1718)의 사당이다. 1725년(영조 1) 경복궁 북쪽인 현재의 자리에 영조가 숙빈묘(淑嬪墓)를 세웠다. 1744년(영조 20)에 묘호를 육상묘(毓祥廟)라 하였고, 1753년(영조 29)에 묘(廟)를 궁(宮)으로 승격하여 육상궁으로 부르게 되었다. 

육상궁은 1882년(고종 19)에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이듬해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른다.

 

연호궁(延祜宮), 육상궁(毓祥宮) 현판

 

 

연호궁(延祜宮), 육상궁(毓祥宮)

 

 

칠궁  전경

 

 

냉천(冷踐)

 

냉천정 뒤편에 있는 우물이다. 냉천 북쪽 장대석에는 재위 3년째가 되던 1727년 3월 육상궁에 거둥한 영조의 오언시가 새겨져 있다.

 

냉천정(冷泉亭)

 

건립 기록이 자세히 전해지지는 않으나 숙빈묘라는 이름으로 육상궁이 처음 건립된, 영조 초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 두칸은 온돌방, 동쪽 한 칸은 대청으로 되어 있다. 냉천정에는 영조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었다

 

냉천정(冷泉亭)

 

 

냉천정(冷泉亭)

 

 

냉천정 앞 자연(紫演)

냉천정 남쪽 아래에 있는 네모난 연못으로 냉천에서 나오는 물이 이곳으로 흘러 들어 간다.
화강암의 장대석을 쌓아 만들어졌으며 가로 7.5m, 세로 6.3m, 깊이 0.9m이다. 연못의 남쪽면에는 '자연((紫演)'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어 이 연못의 이름이 자연임을 알 수 있다.

 

수복방(守輻房)

 

수복방은 냉천정을 바라보며 서쪽에 길게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육상궁에 딸린 시설이었으며 1753년(영조 29)에 육상묘가 육상궁으로 승격되면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안궁, 경우궁, 선희궁, 대빈궁, 저경궁으로 들어가는 내산문(內三門)

 

 

덕안궁(德安宮)

 

덕안궁은 영친왕의 어머니이며 고종의 후궁인 순헌 귀비 엄씨(純獻貴妃嚴氏)의 사당이다.

순헌 귀비 엄씨는 1897년(광무 1)에 영친왕을 낳은 뒤 귀인으로 책봉되었고, 고종이 엄씨가 거처할 궁을 경운궁(현재의 덕수궁) 안에 지어 경선궁(慶善宮)이라 하였다. 1900년(광무 4)에 순빈(淳嬪)에 봉해졌으며 1901년(광무 5)에 순비(淳妃), 1903년(광무 7)에 황귀비(皇貴妃), 1910년(융희 4) 순헌 귀비로 진봉되었다. 1911년 순헌 귀비 엄씨가 세상을 떠난 뒤 경선궁을 덕안궁이라 개칭하였다. 1913년 태평로에 사당을 새로 지어 옮겨 모셨다가 1929년에 육상궁으로 옮겼다.

 

덕안궁(德安宮)

 

 

우측으로부터 경우궁(慶祐宮), 선희궁(宣禧宮), 대빈궁(大嬪宮), 저경궁(儲慶宮) 

 

 

경우궁(慶祐宮), 선희궁(宣禧宮)

 

경우궁(景祐宮)

 

경우궁은 순조의 어머니이며 정조의 후궁인 유비 박씨(綏妃朴氏)의 사당이다. 1822년(순조 22) 유비박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

해 창경궁 도총부 안에 신주를 모시고 현사궁(顯思宮)이라 하였다.

1824년(순조 24)에는 별묘를 세워 경우궁이라 하였다. 1886년(고종 23)에 인왕동으로 옮겨 지었다가 1908년 육상궁으로 옮겨졌다.

 

선희궁(宣禧宮)

 

선희궁은 추존 왕 장조[사도세자]의 어머니이자 영조의 후궁인 영빈 이씨(瑛嬪李氏)의 사당이다.

영조는 1764년(영조 40) 영빈 이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에 사당을 의열묘(義烈廟)라 하였다.

정조가 1788년(정조 12)에 묘호를 선희궁으로 고쳤다. 1870년(고종 7)에 육상궁 안으로 옮겨졌으나 1897년(고종 34) 원래 있었던 순화방으로 옮겼다. 1908년에 다시 육상궁으로 옮겨졌다

 

 

경우궁(慶祐宮), 선희궁(宣禧宮)

 

 

경우궁(慶祐宮), 선희궁(宣禧宮) 현판

 

 

대빈궁(大嬪宮)

 

대빈궁은 경종의 어머니이자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禧嬪張氏)의 사당이다.

1701년(숙종 51)에 희빈 장씨가 사사된 후 장씨의 신위를 정동에 모셨다가 1722년(경종 2)에 옥산부대빈(玉山府大賓)으로 추존되면서 경행방에 사당을 세웠다. 1870년(고종 7)에 육상궁 안으로 옮겨졌으나 1887년(고종 27)에 원래 있었던 경행방으로 옮겨졌고, 1908년에 다시 육상궁으로 옮겨졌다.

 

대빈궁(大嬪宮)

 

 

저경궁(儲慶宮)

저경궁은 추존 왕은 원종의 어머니, 인빈 김씨(仁嬪金氏)의 사당이다. 인빈 김씨는 선조의 후궁으로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을 낳았다. 인조는 반정으로 즉위하면서 아버지를 원종으로 추존하였다. 1755년(영조 31) 인빈의 신위를 원종의 옛집인 송현궁(松峴宮)으로 옮기고 저경궁으로 개칭하였다. 1870년(고종 7)에 수빈 박씨의 사당인 경우궁 안 별묘로 옮겨졌다가 1908년에 육상궁으로 옮겨졌다.

 

저경궁(儲慶宮)

 

 

253년 된 느티나무

 

 

육상궁(칠궁) 답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바라본 느티나무

 

2022.05.11. 종로구 궁정동, 육상궁(칠궁)

글 문화재청, 전시안내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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