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충청북도 50

충무공 이수일 묘소

충청북도 기념물 제21호 _ 충주 이수일 묘소 (忠州 李守一 墓所) 수량/면적 : 1원 지정일 : 1978.02.22 소 재 지 : 충북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 202-1번지 조선 중기의 무신인 은암(隱庵) 이수일(1554∼1632) 장군의 묘소이다. 선조 16년(1583) 무과에 급제한 후 훈련원의 벼슬을 거쳐 선전관이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장기현감으로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다. 그후 밀양목사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를 맡았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성주목사로서 왜적을 격퇴하였다. 인조 2년(1624)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평안도 병마절도사 겸 부원수가 되어 반란군을 대파하였다.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에 위치한 그의 묘는 부인 전주 이씨와 합장한 것으로 화강암으로 봉분의 아래부분..

신라의 명필 김생이 창건한 사찰터, 충주 김생사지

충청북도 기념물 제114호 _ 충주 김생사지 (忠州 金生寺址) 수량/면적 : 1곽 지정일 : 2000.12.22 소재지 : 충북 충주시 금가면 김생로 325 (유송리) 김생사지는 신라의 명필인 김생(711∼791)이 만년에 창건한 사찰터이다. 김생은 성덕왕 10년(711)에 가난하고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글씨에 능하였고 원성왕 7년(791) 80세까지 붓잡기를 쉬지 않았다. 이 사지는 주변에 장대석이 많고 석탑재와 기와조각, 도자기조각이 산재해 있어 이곳을 ‘와당밭’이라고 일컫을 정도로 와전류(瓦塼類)가 많이 출토되었다. 김생사지는 『수산집』의 김생사중수기(金生寺重修記)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통하여 북진애(北津崖)-예성(蘂城)의 북쪽나루- 즉 현 위치의 김생사에서 두타행(頭陀行)을 ..

충청북도 기념물 제137호_충주 견학리 토성

충청북도 기념물 제137호 _ 충주 견학리 토성 (忠州 見鶴里 土城) 수량/면적 : 1기 지정일 : 2006.01.06 소재지 : 충주시 신니면 견학리 441 시 대 : 철기시대-통일신라 구릉 선단부에 축조한 규모가 작은 토성으로 서쪽성벽은 유실되었으나 나머지 부분은 온전하다. 전체 둘레는 200미터가 약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성벽의 높이는 대략 5미터 정도로 보인다. 발굴조사시 출토된 유물로는 목부분에 물결무늬가 시문된 것과 편병,어골문 기와 등이며 출토유물 대부분은 9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것으로 통일신라 하대 호족과 관련있는 유적으로 보이며 2차레에 걸치 판축 혹은 수축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충주 견학리 토성 표지판 충주 견학리 토성 충주 견학리 토성 충주 견학리 토성 충주 견학리 토성 충주 ..

충청북도 기념물 제133호_충주 신청리 고인돌

충청북도 기념물 제133호 _ 충주 신청리 고인돌 (忠州 新淸里 支石墓) 수 량 : 1기 지정일 : 2004.11.26 소재지 : 충주시 신니면 신청리 502 이 지석묘는 개석식 지석묘로 본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덮개돌 윗면에 크고 작은 굼이 141개 분포하고 있어 선사시대 거석문화 연구, 특히 매장행위와 관련된 중요한 자료이다 충주 신청리 고인돌 표지판 신청리 고인돌(지석묘) 국도 바로 옆에 위치해 있습니다. 충주 신청리 고인돌 충주 신청리 고인돌 충주 신청리 고인돌 충북도내에서 발견된 고인돌로서는 큰 규모로 덮개돌(482×370×125cm)의 윗면에는 지름 10~4cm, 깊이 3~1cm 가량되는 크기의 구명(聖穴 : cup mark)이 약 80여개 나 있다. 충주 신청리 고인돌 이 구멍들을 ..

충청북도 기념물 제27호_충주 박팽년 사당

충청북도 기념물 제27호 _ 충주 박팽년 사당 (忠州 朴彭年 祠堂) 수 량 : 1동 지정일 : 1978.10.27 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시 참샘길 113 (신니면, 박팽년사우) 조선 전기 충신으로 단종 복위를 위해 애쓴 사육신(死六臣) 중 박팽년(1417∼1456)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박팽년은 세종 29년(1447)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전의 관원이 되어 신숙주, 유성원 등 젊은 학자들과 편찬사업에 참여하였다.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려 하였으나, 성삼문의 만류로 단념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단종 복위 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김질의 밀고로 실행하기도 전에 발각되자 그의 재주를 아깝게 여긴 세조의 회유에도 뜻을 굽히지 않다가 성삼문·하위지·..

진천 배티성지_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학교

충청북도 기념물 제150호 _ 진천 배티 성지 (鎭川 梨峙 聖地),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학교인 조선교구신학교 터 수량/면적 : 3개소, 일원(6필지 2,197㎡) 지정일 : 2011.06.04 소재지 : 충청북도 진천군 배티로 708 (백곡면) 시 대 : 1850~1860년대 진천 배티 성지[鎭川 梨峙 聖地]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중요한 성지로 박해를 피해 숨어들은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1830년대에 敎友村이 형성되었으며, 1850년에는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한국 성명 安敦伊) 성인 주교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朝鮮敎區神學校가 자리를 잡았던 곳이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이며 두 번째 신부인 崔良業(1821~1861년, 세례명 : 토마스) 신부를 비롯하여 프랑스 선교사 프티니콜라(한국 ..

충청북도 기념물 제144호_진천 이영남 묘소, 충용사, 연리목

충청북도 기념물 제144호 _ 진천 이영남 묘소 (鎭川 李英男 墓所) 수량/면적 : 1곽 지정일 : 2008.08.01 소재지 : 충청북도 진천군 구산3길 65-56 (덕산읍) 시 대 : 1598년(선조 31년) 소유자(소유단체) : 양성이씨군사공파형정공계종중 이영남(1563~1598) 장군은 진천군 기전리에서 태어난 조선중기의 무신으로 선조 17년(1577)에 별시무과 병과에 급제하여 선조 25년(1592) 율포권관을 시작으로 임진왜란 때 원균의 막하 장수로써 소비포권관, 강계부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경상우수사 원균이 왜군에 의해 동래성이 함락된 후 도망가려 하자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원병을 청하여 연합함대를 결성하게 되었고, 그 후 옥포·사천포해전, 한산대첩 등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였다. 선조 31년..

충청북도 기념물 제146호_괴산 김관 묘소

충청북도 기념물 제146호 _ 괴산 김관 묘소 (槐山 金灌 墓所) 수량/면적 : 1곽 지정일 : 2010.03.12 소재지 :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지장리 산 57-1 시 대 : 1417년 소유자(소유단체) : 청풍김씨관공대종회 봉분 1기, 묘갈 1기, 석조재집, 난간석, 문인석 2기는 1417년 김관 사후 장례와 함께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묘비는 1750년(영조26년)에 세운 것이며, 혼유석, 상석, 향로석, 사자석 2기, 장명등 1기는 1985년 추가로 조성된 것이다. 3단으로 조성된 묘역의 제일 상단에는 예장석(禮葬石)이 둘러진 장방형 봉분 1기가 있고 바로 앞에는 齋집이라고 하는 기와집을 본뜬 1柱 石物이 있다. 석물 안에 작은 묘갈 1기가 있는데, 마모가 심하다. 재집 좌우에는 欄干石을 ..

진천 배티성지_삼박골 모녀 순교자의 묘

충청북도 기념물 제150호 _ 진천 배티 성지 (鎭川 梨峙 聖地), 삼박골 교우촌과 모녀 순교자 묘 수량/면적 : 3개소, 일원(6필지 2,197㎡) 지정일 : 2011.06.04 소재지 : 충청북도 진천군 배티로 708 (백곡면) 시 대 : 1850~1860년대 진천 배티 성지[鎭川 梨峙 聖地]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중요한 성지로 박해를 피해 숨어들은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1830년대에 敎友村이 형성되었으며, 1850년에는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한국 성명 安敦伊) 성인 주교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朝鮮敎區神學校가 자리를 잡았던 곳이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이며 두 번째 신부인 崔良業(1821~1861년, 세례명 : 토마스) 신부를 비롯하여 프랑스 선교사 프티니콜라(한국 성명 朴德老) ..

충청북도 기념물 제141호_괴산 정호 묘소

충청북도 기념물 제141호 _ 괴산 정호 묘소 (槐山 鄭澔 墓所) 수량/면적 : 1기/길이1,500㎝, 폭980㎝ 지정일 : 2007.09.07 소재지 :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지장리 산 100 시 대 : 1737년 (영조13년) 소유자(소유단체) : 연일정씨종중 이 유적은 문경공(文敬公) 장암(丈巖) 정호(鄭澔,1648-1736)의 묘소이다. 정호는 조선중기의 문신, 학자로 자는 중순(仲淳), 호는 장암(丈巖), 본관은 연일(延日), 좌의정 정철(鄭澈)의 후손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숙종 8년(1682) 생원이 되고 1684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검열(檢閱)·정언(正言)을 지냈으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출되고 송시열이 사사(賜死)당하자, 그는 파직되고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