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충청북도 50

순창조씨 7분의 충신을 모신 사당, 충청북도 기념물 제7호_괴산 칠충사

충청북도 기념물 제7호 _ 괴산 칠충사 (槐山 七忠祠) 수량/면적 : 일곽 지정일 : 1976.12.21 소재지 : 충북 괴산군 문광면 광덕리 산94번지 순창 조씨 가문 중에서 충신이었던 7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7충신(조신·조종·조복·조반·조덕공·조덕용·조은)을 제향하기 위해 1975년 문중에서 세웠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아래쪽에는 1973년 세운 칠충각이 있다. 괴산 칠충사 표지판 이 표지석에서 우측으로 70m 가면 칠충각, 칠충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칠충사 홍살문 순창조씨 세거지향비(淳昌趙氏 世居之鄕碑) 7충신(조신·조종·조복·조반·조덕공·조덕용·조은)의 공적비(功積碑) 칠충각(七忠閣) 7충신(조신..

충청북도 기념물 제33호_괴산 정인지 묘소

충청북도 기념물 제33호 _ 괴산 정인지 묘소 (槐山 鄭麟趾 墓所) 수량/면적 : 일곽 지정일 : 1980.11.13 소재지 : 충북 괴산군 불정면 외령리 산44번지 조선 초기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였던 학역재(學易齋) 정인지(鄭麟趾, 396∼1478)의 묘소이다. 태종 14년(1414)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고려사』, 『용비어천가』, 『태조실록』등 각종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으며 세종 때에는 집현전 학사로 훈민정음을 창제하는데 공을 세웠다. 단종 1년(1453) 계유정란 때 세조를 도와 공을 세워 1등공신이 되고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단종∼성종 연간에는 학덕을 갖춘 정치가로서 민심을 진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저서로는 『학역재집』이 있다. 묘역 안에는 특별한 시설이 없고 묘..

충청북도 기념물 제49호_괴산 청안사마소

충청북도 기념물 제19호 _ 괴산 청안사마소 (槐山 淸安司馬所) 수 량 : 1동 지정일 : 1984.12.31 소재지 : 충북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 279번지 시 대 : 조선시대 청안현의 생원과 진사에 합격한 자들이 설치한 자체협의기구이다. 사마소란 조선 중기 지방 생원·진사들의 협의 기구로 대개 사마시에 합격한 자가 50인 이상 되는 곳에 설치하였다. 처음에는 이들의 친목도모와 정치 토론 및 교육 활동 등으로 그 고장 발전에 기여하였으나 점차 수령의 통치에 간섭하고 백성들을 함부로 잡아다 벌을 주는 등 폐단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청안 사마소는 숙종 29년(1703)에 설치하였으며 현감 23명, 생원·진사 91명 등 114명에 대하여 해마다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

김시민장군의 사당과 묘, 충청북도 기념물 제12호_괴산 충민사

충청북도 기념물 제12호 _ 괴산 충민사 (槐山 忠愍祠) 수 량 : 1동 지정일 : 1976.12.21 소재지 : 충북 괴산군 괴산읍 충민사길 46 (능촌리)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충무공 김시민(1544∼1592)과 충숙공 김제갑(1525∼1592)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김시민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진주목사가 되어 사천, 고성, 김해 등지에서 적군을 대파하고, 진주성 싸움에서 3800여명의 병력으로 2만 대군과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김제갑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원주로 쳐들어오자 관군과 의병을 이끌고 영원산성에 들어가 항쟁하였으나 성이 함락되자 그의 부인 이씨, 아들 김시백과 함께 순절하였다. 선조 때 이분들의 절개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 괴산 충민사 표지판 괴산 충민사 홍..

충청북도 기념물 제25호_괴산 만동묘정비

충청북도 기념물 제25호 _ 괴산 만동묘정비 (槐山 萬東廟庭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78.10.27 소재지 :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길 188 (화양리) 묘정비는 사원에 세우는 비로, 사원을 건립하게 된 동기와 모시는 인물을 찬양하는 내용을 기록해 둔다.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중국 명나라의 임금인 신종과 의종의 제사를 지내는 ‘만동묘’라는 사당에 자리잡고 있다. 만동묘는 우암 송시열의 가르침에 따라 그의 제자 수암 권상하가 명나라 의종이 죽은 지 60년이 지난 숙종 30년(1704)에 지은 것이다. 비의 형태는 연꽃무늬를 새긴 바닥돌 위에 네모난 받침돌을 놓고, 그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비문은 일본인들이 고의로 글자 획들을 쪼아 놓아 알아보기가 힘들..

충청북도 기념물 제107호_괴산 화양서원 묘정비

충청북도 기념물 제107호 _ 괴산 화양서원 묘정비 (槐山 華陽書院 廟庭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96.01.05 소재지 :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길 188 (화양리) 시 대 : 1716 (숙종 42년) 묘정비는 서원 앞에 세워 서원의 건립취지와 그 서원의 주인·모시는 인물에 대한 문장 등을 기록해 두는 것으로, 이 비는 우암 송시열 선생을 모신 화양서원의 자리에 놓여 있다. 화양서원은 조선 숙종 22년(1696) 송시열의 영정을 모시고 제향하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창건되던 해에 현판을 하사받아 숙종 42년(1716) 어필로 현판을 달았다. 전국의 사액서원 중에서도 가장 이름있고 위세가 당당한 서원이었으나, 그릇된 세금징수로 심한 민폐를 끼쳐 철종 9년(1858)에 폐쇄되고, 논란 속에 고..

충청북도 기념물 제122호_증평 연병호 생가, 사당, 연병호 항일기념관 및 항일역사공원

충청북도 기념물 제122호 _ 증평 연병호 생가 (曾坪 延秉昊 生家) 수 량 : 1동 지정일 : 2002.01.11 소재지 : 충북 증평군 도안면 산정길 21 (석곡리) 시 대 : 19세기(1890년 추정) 원명 연병호(1894∼1963)의 부친인 연채우(延采羽)〈延彩羽〉의 집으로, 독립애국지사 연병호가 태어나고 성장한 생가인 동시에 만년에 이곳에서 살다가 생애를 마친 집이다. 연병호는 1894년에 괴산군 도안면 석곡리에서 출생하여,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길림성 북로군정서 참모겸 서기로서 국권회복 운동을 하였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활동을 지원하였으며, 청년외교단 활동으로 검거 투옥되었다. 이후 다시 망명하여 독립혁명당을 조직하였으며, 1937년 임시정부에서 활약 중 일본 관헌에 체포되어 징..

충청북도 기념물 제167호_증평 남하리 사지

충청북도 기념물 제167호 _ 증평 남하리 사지 (曾坪 南下里 寺址) 수량/면적 : 일원 지정일 : 2018.08.24 소재지 :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남하리 1037-7 외 20필지 증평 남하리 사지는 마애불상군(유형문화재 제197호)과 삼층석탑(유형문화재 제141호)이 자리한 유적지로 지표조사 결과 제작시기를 삼국시대까지 소급해 볼 수 있는 당초문 암막새 등을 비롯하여 조선후기의 철화백자편이 출토되고 있어 삼국시대부터 조선후기까지 이어져 온 사찰임을 알 수 있다. 남하리 사지는 신라의 북진 교통로 상에 위치하는 것으로 당시 종교성 및 문화성을 잘 보여주고 삼국시대 중원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증평 남하리 사지 (曾坪 南下里 寺址) 증평 남하리 사지 (曾坪 南下里 寺址..

말세를 알리는 우물, 충청북도 기념물 제143호_증평 사곡리 우물

충청북도 기념물 제143호 _ 증평 사곡리 우물 (曾坪 射谷里 井) 수 량 : 1기 지정일 : 2008.08.01 소재지 : 증평읍 사곡리 1125 증평 사곡리 우물이 있는 사청마을은 낮은 구릉지역에 자리한 마을로 증평시내에서 동쪽방향 약 2㎞ 지점에 있는 증평읍 사곡2리 마을이다. 산자락에 북향으로 자리한 마을은 행주형으로 마을안길은 입구에서 마을 끝까지 1자로 나 있으며 우물은 마을 가운데에 있다. 이 우물은 마을의 공동우물로 마을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 오래된 우물로써 일반 우물의 1.5배정도가 될 정도로 우물이 크다. 우물 맨 밑에 아름드리 굽은 버드나무 4토막으로 6각형의 틀을 설치하고 그 위에 석축을 쌓아 올렸다. 바닥은 반석이며 버드나무 사이로 큰 물구멍이 3개가 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광주이씨 5대 묘역, 충청북도 기념물 제152호_괴산 이연경 묘역

충청북도 기념물 제152호 _ 괴산 이연경 묘역 (槐山 李延慶 墓域). 이연경의 묘 수량/면적 : 1곽 지정일 : 2011.11.04 소재지 :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 산 42-3 시 대 : 1548년(조선 명종 3년) 이연경 묘역은 조선 중기의 사림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인 이연경을 중심으로, 그의 조부인 이세좌, 부친인 이수원, 아들 이호약, 손자 이광악의 묘가 위아래 5대에 걸친 묘역 조성의 전통을 잘 보여준다. 여러 가지 석물들이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조선시대 15세기 말에서 17세기 전반에 걸친 시기의 문인석 조각 수법의 변화상을 한 곳에서 엿보고 학습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괴산 이연경 묘역 배치도 괴산 이연경 묘역 표지판 광산이씨 묘역 표지석 이 곳에서 300m 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