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문화재/전북특별자치도 74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_선운사 육층석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 _ 선운사 육층석탑 (禪雲寺 六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73.06.23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삼인리) 시 대 : 조선시대 성종3년(1472) 선운사 대웅전 앞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기단(基壇)을 1층으로 마련하여 전체의 무게를 버티게 하고 그 위로 6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놓았다. 기단의 네 면과 탑신부의 각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다. 얇아 보이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양끝에서 가볍게 들려있어 경쾌한 멋이 흐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대체로 잘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탑신의 2층 몸돌부터 급격히 줄어들고, 3층 지붕돌 역시 2층에 비해 폭이 좁아져 비례감이 조금 떨어진다. 옛..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2호_문수사 문수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2호 _ 문수사 문수전 (文殊寺 文殊殿) 수 량 : 1동 지정일 : 1974.09.27 소재지 : 전북 고창군 고수면 칠성길 135 (은사리) 시 대 : 조선시대 청량산 중턱에 위치한 문수사는 백제 의자왕 4년(644)에 자장이 지은 절이다. 당나라의 청량산에서 수행을 하고 돌아온 자장은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취령산이 청량산과 비슷하다 느끼고, 이곳에 절을 지은 후 문수사라 하였다. 문수사 문수전은 조선 영조 40년(1764) 신화화상이 이 절을 다시 지을 때, 이곳에서 발견된 문수보살상을 모셔두기 위해 지은 법당건물이다. 석조문수보살상은 상체가 큰 불상으로 좌대와 하반신 일부가 땅에 묻혀있는 것이 특색이다. 문수사 문수전 표지판 문수사 문수전 표지석 문수사 문수전 (文殊寺 文殊..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_운선암 마애여래상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 _ 운선암 마애여래상 (雲仙庵 磨崖如來像) 수 량 : 2구 지정일 : 2000.06.23 소재지 : 전북 고창군 성송면 계당리 산27번지 시 대 : 고려시대 (마애여래입상) 운선암 뒤쪽 야산을 100m정도 올라가면 넓은 들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마애불이 새겨진 거대한 자연암석이 있다. 만든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마애입상의 높이는 270cm, 몸길이 230cm, 머리길이 51cm, 대좌높이 40cm, 대좌폭 113cm이다. (마애여래좌상) 운선암 왼쪽 자연암벽에 마애여래상이 위치해 있다. 커다란 자연 암벽은 균열이 있는데. 마애여래 좌상을 새길 때부터 갈라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만든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총 높이는 233cm, 몸길리 155cm, 머리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_문수사 대웅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 _ 문수사 대웅전 (文殊寺 大雄殿) 수 량 : 1동 지정일 : 1974.09.27 소재지 : 전북 고창군 고수면 칠성길 135 (은사리) 시 대 : 조선시대 효종4년(1653) 취령산 중턱에 있는 문수사는 백제 의자왕 4년(644)에 자장이 지은 사찰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나라의 청량산에서 열심히 기도하던 자장은 꿈속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부처님의 뜻을 깨닫고 돌아왔다. 그리고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다가 땅의 형세가 당나라의 청량산과 비슷하다고 하여 절을 짓고 문수사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그 뒤 조선 효종 4년(1653)과 영조 40년(1764)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은 지은 연대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고종 13년(1876)년에 고창..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호_천황사 대웅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호 _ 천황사 대웅전 (天皇寺 大雄殿) 수 량 : 1동 지정일 : 1973.06.23 소재지 : 전북 진안군 정천면 수암길 54 (갈용리) 시 대 : 조선 후기 추정 천황사는 통일신라 헌강왕 1년(875) 무염선사가 세웠고 고려 문종 19년(1065) 대각국사 의천이 고쳐 세웠다고 전한다. 그 뒤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건물을 새로 짓고 수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천황사의 중심 법당으로 조선 후기에 지은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도록 만든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양식이라 하는데, 맞배지붕 형식의 집에 다포 양식으로 꾸민 것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_강정리 오층석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 _ 강정리오층석탑 (江亭里五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76.04.02 소재지 : 전북 진안군 마령면 원강정1길 16-133 (강정리) 시 대 ; 고려시대 추정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이다. 기단과 탑신의 1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두툼한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 : 엎어놓은 그릇모양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탑신의 1층 몸돌이 높고, 2층 몸돌부터는 줄어드는 정도가 작다. 기단이 1층으로 줄어들고 지붕돌이 두꺼우며 지붕돌 밑면받침이 4단으로 줄어든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강정리오층석탑 표지판 강..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_회사동석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 _ 회사동 석탑 (檜寺洞 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76.04.02 소재지 : 전북 진안군 상전면 주평리 17번지 시 대 : 고려시대로 추정 절터로 보이는 밭가운데 서 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탑신의 1층 몸돌을 괴는 곳에 굵은 2단의 괴임을 두어 윗돌을 받치고 있다. 탑신의 1층 몸돌 모서리에는 희미한 기둥 모양의 조각이 보인다. 지붕돌은 각 층 모두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는데, 1층 지붕돌이 약간 파손되긴 하였으나 중후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이 든다. 꼭대기에는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 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으나 이것 역시 뒤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가 왜소하고 간략화되어 안정감을 잃었으나..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호_운산리 삼층석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호 _ 운산리 삼층석탑 (雲山里 三層石塔) 수 량 : 1기 지정일 : 1971.12.02 소재지 : 전북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 1423번지 내후사동이라는 마을 이름이 말해주듯 옛 절터에 서 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위층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며,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동그란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가 왜소해 보이고, 탑신의 2층 몸돌이 1층 몸돌에 비해 급격히 줄어 들어 균형미를 잃었다.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양식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에 세웠을 것으로 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_경기전 가마와 의식구, 용선과 봉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 _ 경기전 가마와 의식구. 용선(龍扇) 용선(龍扇) 용선은 왕의 위엄을 높이기 위해 각종 의식에 사용된 부챙이다. 양쪽면에 황룡을 각각 2마리씩 그렸고, 자루는 붉은 색을 칠하였다. 행렬 때 의장수들이 이것을 들고 어진의 거둥을 예우하였으며, 평상시에는 정전 내에 도열해 두었다. 용선(龍扇) _ 1875년, 비단에 채색, 54.5×274cm ▼ 봉선(鳳扇)입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 _ 경기전 가마와 의식구. 봉선(鳳扇) 봉선(鳳扇) 봉선은 용선과 마찬가지로 의식용 부채이다. 양쪽면에 오채로 봉황을 각각 2마리씩 그렸고, 자루는 붉은색을 칠하였더다. 봉선(鳳扇) _ 1872년, 비단에 채색, 63×274cm 전주 경기전 글 전시자료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44호_경기전 일월오봉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44호 _ 경기전 일월오봉도 수 량 : 1 지정일 : 2017.03.31 소재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풍남동3가, 경기전 경내 어진박물관) 시 대 : 조선시대 경기전 일월오봉도는 조선태조어진(국보 제317호)이 새로 모사되던 1872년에 함께 제작되었다. 일월오봉도는 병풍에 그려진 그림으로서 조선 태조의 어진을 봉안한 당가 내부에 어진과 함께 배치되었다. 이 그림은은 1872년에 어진과 함께 제작되었음이 문헌으로 뒷받침되어 제작시기와 용도를 알 수 있는 현존 유일의 일월오봉도로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 경기전 일월오봉도 전주 경기전 어진박물관 글 문화재청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