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서원

충간공 이술원 장군을 모신 사당!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7호_거창 포충사

기리여원 2018. 10. 31. 12:06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7호 _ 충사 (褒忠祠) 

 

지정일 : 1983.07.20

시   대 : 조선시대

소재지 :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원촌3길 25-2

 

이곳은 조선 영조 4년(1728)의 무신란 때 순절한 충강공 이술원 장군을 모신 사당으로 영조 13년(1737)에 세웠다.
이술원 장군은 조선 후기 무신이며 거창 출신으로 영조 4년(1728)에 거창 좌수로 있었다. 안의의 정희량이 난을 일으키자 나아가 대적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생포되어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시호는 충강(忠剛)이다

 

충사 (褒忠祠) 표지판

 

 

포충사 자전루(紫電褸)

 

조선 영조 때 충절인 좌수(座首) 이술원을 기리기 위하여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노현리에 건립하였다. 이술원은 본래 거창군의 좌수로 있었는데,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안의(安義)에서 반란을 일으킨 정희량(鄭希亮)을 저지하다가 체포되어, 의(義)를 굽히지 않고 순절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그 충절을 기려 대사헌에 추증하고 충신정문을 세웠는데, 1737년 거창유생들의 발의로 사우가 건립되자 1768년 포충사로 사액되었다. 이후 영남우도(嶺南右道)에 있어서 노론계 사원(祠院)의 중심적인 구실을 하였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에 의한 서원훼철 때에도 특별히 존속되었다. 이술원만을 독향(獨享)하였다

 

포충사  자전루(紫電褸)

 

건물 규모는  전면 3칸, 측면 2칸의 초익공, 겹처마로 10평으로 구성되어 있다.

 

포충사 자전루(褒忠祠 紫電褸) 편액

 

 

철비인 부사 김계진 영세불망비(府使 金啓鎭 永世不忘碑)

 

 

 

 

 

 

 

정려각과 묘정비

 

 

 

 

 

정려각

 

이술원과 이우방의 정려문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담장밖에서 바라 본 양사당

 

건물 규모는 전면5칸, 측면2칸의 납도리5량집으로 팔작지붕이며, 중앙3칸은 대청으로 사용하고 양측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포충사  자전루(紫電褸) 내부

 

 

경의당(景義堂)

 

강학공간인 경의당의 건물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5량 구조로 좌측 계단을 통하여 우각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경의당(景義堂)

 

 

경의당(景義堂) 편액

 

 

 

 

 

안쪽 상부에 걸려 있는 경의당(景義堂) 편액

 

 

경의당 부강재(景義堂 扶綱齋)

 

* 서적을 보관하는 서고 및 유생들이 독서하는 곳

 

경의당 부강재(景義堂 扶綱齋) 편액

 

 

경의당 성인재(景義堂 成仁齋)

 

 

경의당 성인재(景義堂 成仁齋) 편액

 

 

경의당(景義堂)

 

 

내삼문과 포충사

 

 

포충사 내삼문

 

 

포충사(褒忠祠)

 

1737년(영조 13) 이술원(李述原)을 제향하기 위하여 세워진 사우(祠宇).

 

포충사(褒忠祠)

 

포충사는 1737년 충강공 이술원(忠剛公 李述原)을 모시기 위해 지어졌고, 1788년에 사액을 받았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지붕집으로 전면에 툇간이 있고 출입문은 2짝 3곳에 당판문을 설치하였다. 기단석은 견치석을 쌓고 상부는 화강암으로 설치되었다. 내부 바닥은 장마루로 되어 있고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툇간의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되었다.

 

포충사(褒忠祠)

 

 

포충사(褒忠祠) 편액

 

대원군의 서원철페령 이후 남은 47개 서원중의 하나로 1788년 사액서원임.

 

 

 

 

양사당

 

 

담장밖 자전루에서 바라 본 양사당

 

2018.10.28.일요일, 거창 포충사

글 문화재청,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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