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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이 군령을 내리던 곳! 여수 고소대

기리여원 2020. 4. 24. 16:51


여수 고소대(麗水 姑蘇臺)


여수 고소동의 계산(해발 117미터)에 여수 팔경의 하나인 고소대(姑蘇臺)가 있다. 여수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소대는 좌수영의 포루(砲壘)로써 전라좌수영 성채의 장대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충무공 이순신이 작전계획을 세우고 군령을 내리던 곳이다. 왜란 당시 이순신이 군령을 어긴 황옥천의 목을 베어 군율을 엄히 세운 곳이기도 하다


여수 고소대(麗水 姑蘇臺)



여수 고소대(麗水 姑蘇臺)


일종의 포루로써 장대(將臺)로 사용되었으며, 충무공 이순신이 군령을 내리던 곳이라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이순신의 승리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통제이공수군대첩비(統制李公數軍大捷碑), 이 비석의 건립 경위를 기록한 동령소갈비(東嶺小碣碑),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자 부하들의 공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세운 타루비(墮淚碑)가 있다. 


 장대 []     

    군사 지휘하는 장수 올라서서 지휘하도록, , , , 따위 높은 돌로 쌓은


여수 고소대(姑蘇臺) 정문



여수통제이공수군대첩비((麗水統制李公數軍大捷碑)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 (麗水 統制李公 水軍大捷碑) 비각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 (麗水 統制李公 水軍大捷碑) 비각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 (麗水 統制李公 水軍大捷碑) 비각


1947년 건립된 대첩비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동령소갈비(東嶺小碣碑)


동령소갈비(東嶺小碣碑)는 수군대첩비의 건립 경위와 여기에 참여한 인물들, 그리고 건립하기까지의 어려움 등을 기록하고 있다. 1698년(숙종 24)에 세웠으며, 현감 심인조(沈仁祚)가 비문을 썼다.


직사각형 비석 받침대에 비 몸과 머릿돌을 얹었다. 정면과 측면에 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머릿돌 좌우에 나선형의 장식이, 반원형 중앙에 여의주 무늬가 앞뒷면으로 있으며, 맨 위에는 연꽃 봉오리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보물 제571호 _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 (麗水 統制李公 水軍大捷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73.05.04

소재지 : 전남 여수시 고소3길 13 (고소동)

시   대 : 조선시대


충무공 이순신의 공훈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대첩비이다. 전라남도 해남의 해남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와 함께 일제의 박해로 1942년 서울로 운반되어 행방을 알 수 없다가, 광복 이후 해남지역 유지들의 수소문으로 경복궁 근정전 앞뜰 땅 속에서 찾아내어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비(碑)는 한 돌로 이루어진 바닥돌 위에 거북받침돌을 두고, 비몸을 세운 후 구름과 용, 연꽃 등이 조각된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비문의 글은 당시 이름을 날렸던 이항복이 짓고, 글씨는 명필 김현성이 썼으며, 비몸 윗면의 ‘통제이공수군대첩비(統制李公水軍大捷碑)’라는 비 명칭은 김상용의 글씨이다.

조선 광해군 7년(1615)에 세워졌으며, 비의 왼쪽에는 숙종 24년(1698) 남구만이 지은 비의 건립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기록에는 이순신의 막료로 활약하였던 수군통제사 유형과 좌수영지역의 유지 및 후손들의 노력으로 건립하게 된 경위를 비롯하여, 이 때 여수 타루비(보물 제1288호)도 대첩비 옆으로 옮겨 세우고, 비각을 세워 보존하였다는 비 건립 전후의 기록이 밝혀져 있다.


보물 제1288호 _ 여수 타루비 (麗水 墮淚碑)


수   량 : 1기

지정일 : 1998.12.04

소재지 : 전남 여수시 고소3길 13 (고소동)

시   대 : 조선선조36년(1603년)


조선 중기의 명장인 이순신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타루(墮淚)’란 눈물을 흘린다는 뜻으로, 중국의 양양 사람들이 양호(羊祜)를 생각하면서 비석을 바라보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고사성어에서 인용하였다.

비의 형태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받침돌에는 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머릿돌에는 구름무늬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큼직하게 솟아있다.

비문은 ‘타루비’라는 비의 명칭을 앞면에 크게 새기고, 그 아래로 명칭을 붙이게 된 연유와 비를 세운 시기 등을 적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세상을 떠난 지 6년 후인 선조 36년(1603)에 이 비를 세워두었다.


수령이 270년 느티나무로 1982.12.03일 보호수로 지정되었습니다.



수령이 270년 느티나무



고소대 정문의 후면


글 문화재청, 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