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찰

대구 부인사

기리여원 2021. 4. 16. 17:51

대구 부인사에 있는 문화재

 

1.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 _ 부인사 석등

2.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호 _ 부인사 서탑

3.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8호 _ 부인사 부도

4.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3호 _ 부인(부인)사지

5.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2호 _ 부인사 일명암지 석등

 

대구 부인사 전경

 

부인(부인)사 夫人(符仁)寺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부인사(符印寺) 또는 부인사(夫人寺)라고도 일컬어진다. 부인사지(符仁寺址)는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역사적 변천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예로부터 선덕묘(善德廟)라는 사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사찰로 추정된다.

불교가 흥왕하였던 신라와 고려 때에는 약 2,000명의 승려가 수도하였다고 하며,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에 이르기까지 이곳에 도감(都監)을 설치하여 완성했던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의 판각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초조대장경은 몽고의 침입 때 대부분 불타 없어지고, 현재 일본 경도(京都)의 남례사(南禮寺)에 1,715판이 전해지고 있다.

전성기에는 39개의 부속 암자를 관장하였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기적으로 승려들만의 승시장(僧市場)이 섰다는 구전이 전하여지지만, 몽고의 침입 이후 중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되었다는 사실 외에는 중창 및 중수의 역사가 전래되지 않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원래의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m에 위치한 암자 터에다 1930년대 초에 비구니 허상득(許相得)이 중창한 것이다. 1991년 선덕묘를 선덕여왕숭모전으로 좀 더 크게 옮겨 지었고, 선덕여왕 진영을 새로 조성하였다.

 

내용

당우로는 석가모니불상과 아미타불상 및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대웅전, 선덕여왕의 영정을 모신 선덕여왕숭모전과 종각·누각, 그리고 2동의 요사채가 있다. 선덕여왕숭모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일부 남았던 것을 1930년대 초에 중건한 것이며, 음력 3월 보름에는 이곳에서 동네 유지들과 승려가 함께 모여 선덕제(善德祭)를 지내고 있다.

현존하는 문화재로는 쌍탑(雙塔)을 비롯하여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석등과 당간지주·석등대석(石燈臺石)·배례석(拜禮石)·마애여래좌상 등이 있다. 최근까지 무너져 있었던 쌍탑 중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서탑은 1966년에 복원하였으며, 신라 말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을 보이고 있다. 이 석탑 옆에는 50㎝ 가량의 머리 없는 석불이 있는데, 1978년까지는 여러 기가 있었으나 1979년에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대웅전 앞에는 2기의 석등이 있는데 1기는 가운데가 금이 갔으나 완전한 형태이고, 이보다 작은 석등은 밑받침만 남아 있다. 이 석등 앞에는 돌 사면에 높이 약 70㎝의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고, 그 옆에 배례석이 있다.

절 부근의 포도밭 속에는 신라 때의 작품인 당간지주가 있어 전성기의 절 영역을 알 수 있게 한다. 특히, 바위에 감실을 파고 조각한 마애여래좌상은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특이한 마애불이다. 이밖에도 초석과 축대에 남아 있는 화려한 장대석(長臺石)이 산재해 있다.

 

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구 부인사(夫人寺) 표지석

 

 

부인사 입구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8호 _ 부인사 부도 (夫人寺 浮屠)

 

부인사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승려의 사리탑이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가장 많이 사용된 양식으로, 4각의 바닥돌 위에 올려진 각 부분이 모두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상 ·중 ·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기단(基壇)은 아래받침돌의 윗면에 연꽃을 두르고, 옆면에는 4마리의 사자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가운데받침돌은 4면에 꽃무늬를 장식하고, 나머지면에는 동물상과 동자상을 두었다. 윗면이 넓게 퍼진 윗받침돌은 연꽃을 새겨 둘러 놓았다. 탑신(塔身)의 몸돌은 위아래를 오므려 놓아 배흘림기둥 모양을 하고 있으며, 한쪽 면에는 ‘은통당(隱通堂)’이라는 승려의 호가 적혀 있다. 지붕돌은 윗면의 여덟 모서리선과 기와골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모서리가 마무리되는 각 귀퉁이마다 꽃조각 대신 도깨비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으며, 밑면에는 2중의 서까래를 새겨 겹처마를 표현하였다. 꼭대기에는 최근에 새로 만든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전체적으로 각 부분의 비례가 어색하고, 조각기법도 간략화되어 섬세함이나 화려함이 부족하다. 이러한 형식적인 수법으로 보아 조선 중기의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것은 ‘은통당’이라는 호를 쓴 승려가 누구였는지 밝혀져야 알게 될 것이다.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3호 _ 부인(부인)사지 (夫人(符仁)寺址)

 

면   적 : 60,600㎡

지정일 : 1988.05.30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356일대

 

부인사는 신라 선덕여왕의 명복을 빌던 법당으로 ‘부인(夫人)’이란 선덕여왕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원래 이곳은 부처의 힘으로 외침을 막고자 새긴 고려 초조대장경판을 보관하던 곳이었으며, 고려 무신집권에 항거해 일어나 승려들의 본거지이기도 하였으나, 고려 고종 19년(1232) 몽고 침입으로 불타 없어졌다.

이 절터에는 축대, 초석, 당간지주 등 당시의 석조물이 많이 남아 있고, 주변에는 건물초석, 석탑, 석등들이 흩어져 있다. 이 석조물들은 당시 부인사의 규모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부인(부인)사지 (夫人(符仁)寺址)

 

 

부인사 전경

 

 

부인사 동 · 서 삼층석탑과 석등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호 _ 부인사 서탑 (夫人寺 西塔)

 

부인사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부인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한 사찰로 추정되며, 절이 한창 번성할 때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승려들만의 승시장(僧市場)이 섰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이 탑은 금당터 주변에 쌍탑으로 건립된 2기의 석탑 중 서쪽에 있는 탑으로, 1966년에 복원되었다.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는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지고 그 받침돌만 남아있다. 기단은 각 면마다 기둥모양을 새기고 윗면에 2단의 괴임을 새겨 윗돌을 받치게 하였다. 탑신의 각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고, 지붕돌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가 흐르며,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치켜올라갔다.

통일신라 후기 즈음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

 

부인사 동탑 (夫人寺 東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 _ 부인사 석등 (夫人寺 石燈)

 

부인사 대웅전 앞에 놓여 있는 8각 석등으로, 네모난 바닥돌 위에 3단의 받침을 두어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과 지붕돌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이다.

받침부분은 가운데기둥을 사이에 두고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대칭적으로 새겨 놓았다. 화사석은 다른 절터에 있던 것을 가져다 복원한 것으로 4면에 창을 두었다. 지붕돌은 처마가 길고 얇으며, 여덟 귀퉁이가 하늘을 향해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둥근 받침만 남아 있을 뿐 그 위의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진 상태이다.

비록 받침의 가운데기둥에 약간의 금이 갔지만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으며, 조각도 섬세하고 부드럽다. 각 부재가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뛰어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삼광루(三光樓) 앞 삼층석탑

 

 

대구 부인사 안내표지판

 

 

대구 부인사 배치도 표지판

 

 

부인사 묘심원(夫人寺 妙心院)

 

 

부인사 현음각(夫人寺 玄音閣)

 

 

부인사 일화선원(夫人寺 一花禪院)

 

 

부인사 대웅전(夫人寺 大雄殿)

 

 

석가모니불상과 아미타불상 및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대웅전

 

 

부인사 명부전(夫人寺 冥府殿)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2호 _ 부인사 일명암지 석등 (夫人寺 逸名庵址 石燈)

 

부인사 절마당에 놓여 있는 석등으로, 이 절에서 200m 가량 떨어진 일명암이라는 암자터에 쓰러져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복원해 놓은 것이다.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4각의 바닥돌과 3단의 받침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는데, 바닥돌을 제외한 각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아래받침돌과 한돌로 이루어진 바닥돌은 옆면에 안상(眼象)을 2개씩 옅게 새기고, 아래받침돌은 윗면에 연꽃무늬를 둘러 새겼다. 그 위로 가운데기둥을 세워 윗받침돌을 받치도록 하였으며, 윗받침돌은 아래와 대칭되는 연꽃을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화사석은 8각이라기보다 거의 4각에 가까워서 마치 직사각형의 네모서리를 세로로 반듯이 자른 모습이다. 긴 두 변에는 두 개의 창을 내고, 짧은 두 변에는 하나씩의 창을 뚫어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하였는데 다른 석등에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독특한 양식이다. 지붕돌은 윗면에 부드러운 경사가 흐르고, 처마의 선은 가볍게 곡선을 그리고 있다. 꼭대기에 놓인 머리장식은 후에 새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전체적인 기본 구성이나 조각기법 등은 통일신라시대에 흔히 보이는 모습이나, 화사석에서 보이는 특이한 모습은 당시의 양식에서 벗어나 있어 좀더 시대가 내려가는 고려시대 전기의 것으로 추측된다.

 

부인사 산신각(夫仁寺 山神閣)

 

 

산신각앞에 위치한 치미

 

 

영산전의 전경

 

 

부인사 영산전(夫人寺 靈山殿)

 

 

부인사 전경

 

 

대구 부인사 석조

 

2021.03.27.대구 부인사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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