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찰

나주 운흥사

기리여원 2021. 3. 25. 14:39

나주 운흥사에 있는 문화재

 

1. 보물 제694-2호 _ 불조심경

2.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60호 _ 나주 운흥사지 금동여래입상

3. 국가민속문화재 제12호 _ 나주 운흥사 석장승

 

운흥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 말사이다.

 

운흥사 대웅전(雲興寺 大雄殿)

 

나주 운흥사(羅州 雲興寺)

 

운흥사는 덕룡산 기슭에 있는 고찰이었다. 1775년 정문(鄭文)이 쓴 진여문4중창기(眞如門四重創記)에 의하면 당 희종년간(846∼887)에 도선국사가 이곳의 지세가 좋아 흥덕으로부터 와서 이곳 도성암(道成庵)에서 첫 강회를 열고 터전을 닦은 후 신라 효공왕 년간(897∼911)에 이곳에 웅점(熊岾)에 웅치사(熊峙寺) 창건하였다. 그후 언제인가 운흥사로 바꾸었다. 1775년 당시에는 대웅전 침계루 등 380여칸의 규모를 갖춘 사찰로 확인된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현재는 빈약한 사찰이다. 나주 운흥사 석장승(중요민속자료 제12호)은 사찰입구 길가에 있는데 우측이 여장생, 좌측이 남장생으로 되어 있다. 여장생은 하원당 장군(下元唐將軍)이라 음각된 얇고 넓은 돌 장승인데 불회사의 여장생처럼 온화한 맛이 없는 원시예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한 인상을 하고 있다.

좌측의 남장생은 거대해서 위엄이 있으나 안면이 온화하고 인자한 노인 특유의 인상을 지니고 있다. 또 큰 치아 두 개가 입의 좌우에 노출되어 있고 수염이 턱밑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불회사 장생과 운흥사 장생이 다른 점은 불회사는 우측이 하원당장군 남상이고 좌측이 주장군으로 여상인데 반해서 운흥사는 우측이 하원당장군으로 여상이고 좌측이 주장군(周將軍)으로 남상이 되어 위치와 새긴 글씨가 서로 뒤바꿔져 있다. 그러나 그 조각법과 원형의 눈동자 등 형태가 거의 흡사한데다 여상인 하원당장군의 뒷면에 강희 58년(1719년)이라는 명문(銘文)이 있어서 정확한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민속자료이다. 한편 여인들이 치성을 드린 흔적인 수혈이 많이 남아 있는 바위가 있어 민간신앙의 단면을 볼 수 있다.

 

글 대한민국구석구석

 

국가민속문화재 제12호 _ 나주 운흥사 석장승 (羅州 雲興寺 石장승)

 

나주 운흥사 입구에 있는 남녀 한 쌍의 돌장승이다. 사찰 앞에 세우는 사찰장승은 경내의 부정을 금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기능을 지닌다. 석장승은 대부분 무서운 듯하면서도 인자함을 지닌 모습으로 표현되며 절의 경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운흥사 석장승은 사찰에서 500m쯤 떨어진 밭 가운데 마주보고 서 있는데 왼쪽은 남자, 오른쪽은 여자의 모습이다. 남장승은 높이 270㎝, 둘레가 192㎝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로 크고 둥근 눈에 뭉툭한 코, 송곳니가 삐져나와 있지만 인자한 할아버지의 얼굴이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턱 밑에는 八자형 수염이 표시되었으며 몸체에는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란 이름이 새겨있다. 여장승은 웃는 표정으로 소박한 모습이다. 깊은 선으로 둥근 눈이 표시되었고 입 언저리의 잔 수염과 주걱턱 표현이 인상적이다. 몸체에는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란 이름이 새겨있다.

사찰 수호의 기능을 지니고 있는 운흥사 석장승은 여장승의 뒷면에 기록된 조선 숙종 45년(1719)이라는 내용을 통해 정확한 제작연대를 알 수 있다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의 남장승

 

남장승은 높이 270㎝, 둘레가 192㎝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로 크고 둥근 눈에 뭉툭한 코, 송곳니가 삐져나와 있지만 인자한 할아버지의 얼굴이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턱 밑에는 八자형 수염이 표시되었으며 몸체에는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란 이름이 새겨있다.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의 여장승

 

여장승은 웃는 표정으로 소박한 모습이다. 깊은 선으로 둥근 눈이 표시되었고 입 언저리의 잔 수염과 주걱턱 표현이 인상적이다. 몸체에는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란 이름이 새겨있다.

 

운흥사 해탈문

 

 

해탈문을 지나서 콘크리트 포장길로 가시면 덕룡산 운흥사가 나옵니다.

 

 

운흥사 수경당

 

 

덕룡산 운흥사 전경

 

 

수경당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장독대

 

 

운흥사 대웅전(雲興寺 大雄殿)

 

 

운흥사 대웅전(雲興寺 大雄殿)

 

건물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다포식양식이다.

 

운흥사 대웅전(雲興寺 大雄殿)

 

 

운흥사 대웅전(雲興寺 大雄殿) 우측면

 

 

운흥사 대웅전(雲興寺 大雄殿) 정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60호 _ 나주 운흥사지 금동여래입상 (羅州  雲興寺址 金銅如來立像)

 

나주 운흥사지 금동여래입상은 운흥사지 발굴조사(발굴조사기관:전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1년 9월 16일 출토된 불상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광배와 몸체와 대좌가 함께 주조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육계는 비교적 두텁고 높게 솟아 있으며 머리는 언뜻 보면 소발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오랜 세월동안 마모상태가 심한 편이긴 하나 나발의 흔적이 역력하다. 더구나 이 나발은 육계부분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상호는 호형의 예리한 눈썹과 일자형의 눈모습인데 눈두덩이 두툼하게 돋아난 행인형 모습이다. 코와 입술부분이 훼손되어 정확한 윤곽이 보이지 않지만 입주위의 양볼에 나타난 알맞은 볼륨은 8∼9세기 금동불에서 느낄 수 있는 모습이다. 양쪽 귀는 길게 수직으로 내려와 어깨 위에서 멎었고 목 밑으로 장식되는 삼도(三道)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이채롭다.

법의는 통견으로 양어깨를 깊숙하게 덮고 있는데, U자형의 옷주름이 앞가슴으로 내려오면서 그 끝자락은 깊숙하게 U자형을 그리면서 다시 위로 올라와 양팔을 걸쳐 동체 뒤편으로 연결되고 있다. 다리는 약간 벌려 직립하였으며 발등과 발가락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수인은 우리나라 초기불상에서 나타나는 통인으로서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취하고 있다.

대좌는 상·하대로 구성되었는데 원형이다. 하대에는 2줄의 띠줄이 돌려지고 그 위로 외잎 8엽의 복련이 조식되었다. 또 상대 역시 외잎 8엽의 앙련이 조식되었는데, 상·하대 연화문의 기법은 매우 소박하고 단조롭다.

광배는 주형거신광인데 상단의 끝머리가 약간 손상되어 꾸부려져 있다. 보존처리시 훼손이 염려되어 그대로 존치했다고 한다. 이 광배는 우리나라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형거신광이면서도 약간 특이한 형식이다. 즉 상단 얼굴 부위쯤에서 두 개의 타원형이 겹쳐진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광배형식은 국내 금동불에서는 희귀한 편이다. 광배의 장식문양을 보면, 외곽은 불꽃무늬로 가득차게 했고, 그 내부로 다시 외곽 형태와 같은 두광과 거신광이 겹친 타원형을 그렸는데 2줄의 음각 띠줄을 돌려 구분하였다. 내부의 두광과 거신광에는 연화문이 장식되었으나 그 기법은 정교하거나 치밀하지 않고 매우 형식화 되었다. 광배의 뒷면은 상·하로 구멍이 뚫려 타원형으로 관통되게 하였는데, 이 구멍은 불신내부와 대좌의 내부까지 관통되게 하였다.

나주 운흥사지 금동여래입상은 삼국시대 금동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형거신광이면서도 특이하게도 두 개의 타원형이 겹쳐진 이중원형의 거신광이다. 운흥사지 금동여래입상은 광배 및 대좌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예로서 전남에서는 최초의 사례라 하겠다. 현재 이 금동불은 보존처리가 완벽하게 완료된 상태로서 보관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서 동 시기의 유물이 많지 않다는 데서 역사적인 가치가 있으며, 고대 불교문화사 이해와 비교연구를 하는데 있어 귀중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또한 세부 문양기법이나 주형의 거신광 등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가치가 뛰어나다.

 

나주 운흥사지 금동여래입상 

 

 

운흥사 산신각( 雲興寺 山神閣)

 

 

운흥사 산신각에서 바라본 경내 전경

 

 

운흥사 팔상전(雲興寺 八相殿)

 

 

팔상전에 봉안된 석조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은 1968년 동강면 옥정리에서 발굴된 것으로, 용운사에 봉안된 것을 2001년 운흥사로 옮겨온 곳이다. 고려 후기 불상으로 석불 조성 내력과 그 봉안위치는 자세하지 않으나, 영산강변에서 바다를 항해하는 어민들의 민불로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주형광배를 갖춘 이 불상은 소발의 머리에 육계가 솟아 있으며 상호는 균형을 유지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다. 광배는 주형거신광에 보상거신광에 보상화문과 안동당초문을 정교하게 장엄하고, 주연으로는 화염문을 시문한 장엄적 수법이 돋보이는 불상이다. 그러나 형식적인 삼도와 두터운 U자형 통견의 등 부바연스러운 치장수법과 향마인을 결한 듯한 파손된 양손 의 수인에서, 불신의 조각솜씨가 석불의 장엄수법에 뒤쳐지는 부조화를 보여준다. 크기는 현고 179cm에 무릎 폭 104cm의 중형불상으로 조성연대는 고려 후기로 추정된다.

 

운흥사 관음전

 

 

운흥사 관음전 좌측면

 

 

팔상전에 봉안된 주존불

 

 

팔상전에 봉안된 금동여래좌상

 

 

운흥사 경내 전경

 

2021.02.28. 나주 운흥사

글 문화재청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문화재 > 사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구 부인사  (0) 2021.04.16
대구 북지장사  (0) 2021.04.09
구미 수다사  (0) 2021.03.19
구미 대둔사  (0) 2021.03.17
강진 금곡사  (0) 2021.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