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찰

구미 대둔사

기리여원 2021. 3. 17. 04:55

구미 대둔사에 있는 문화재

 

1. 보물 제1633호 _ 구미 대둔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

2. 보물 제1945호 _ 구미 대둔사 대웅전

3. 보물 제2025호 _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4. 보물 제2117호 _ 구미 대둔사 경장

 

보물 제1945호 _ 구미 대둔사 대웅전 (龜尾 大芚寺 大雄殿) 

 

구미 대둔사(龜尾 大芚寺)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446년 화상 아도(阿道)가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으며, 1231년(고종 18) 몽고족의 침략으로 불타 버린 뒤, 충렬왕 때 왕자 왕소군(王小君)이 출가하여 중창하였다. 1606년(선조 39) 유정(惟政)이 중건하여 승군을 주둔시켰는데, 당시의 암자는 10여 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민족 항일기에는 사찰이 퇴락하여 시왕전의 불상까지 진주의 어느 절로 옮겨 가는 수난을 겪었으며, 사찰의 모든 암자가 해체되었으나, 최근에 들어서 신도들의 모금으로 여러 차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응진전(應眞殿)·요사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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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은 17세기 말의 건축물로서 내소사(來蘇寺)의 대웅전과 그 형태가 비슷하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2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 안에 봉안된 석가여래좌상은 조선시대의 좌불로서 대웅전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듯하다. 지장보살과 시왕상을 모신 명부전 안에는 1714년(숙종 40)에 조성된 유명도(幽冥圖) 1폭이 있는데, 연대가 뚜렷하여 탱화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 명부전 안에는 다른 곳의 명부전에서는 보기 힘든 조사(祖師)들의 진영(眞影)이 봉안되어 있다. 이 조사탱화에는 송운(松雲)·백화당(白華堂)·연우(蓮友)·포윤(包允)·월암당(月巖堂) 등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응진전에는 흙으로 만든 석가여래삼존상을 비롯한 16나한상과 동자상·나한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이 밖에도 대웅전 앞에는 1666년(현종 7)에 세운 당간지주가 있고, 부도골에는 1812년(순조 12)에 세운 성파대사비(性波大師碑), 석종형인 완화당(翫花堂) 부도가 있다.

 

글 한국문화대백과사전

 

입구에서 본 대둔사

 

 

더 먼 곳을 향하여

 

대둔사의 아침은  운무가 위로 올라오는 광경이 한편의 수묵화와 같다.

 

먼 곳을 향하여

 

 

보물 제1945호 _ 구미 대둔사 대웅전 (龜尾 大芚寺 大雄殿) 

 

구미 대둔사는 복우산(伏牛山) 동쪽 중턱에 남북으로 길게 대지를 조성하여 자리 잡고 있다. 현재의 사역은 원래 대둔사의 암자인 청련암(靑蓮庵) 자리이며, 현 위치에서 서남쪽 약 300m 지점에 대둔사 옛터가 남아 있다. 대둔사는 446년(신라 눌지왕 30)에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창건 후 1231년(고려 고종 18) 몽고족의 침략으로 불타버린 것을 충렬왕(忠烈王)의 아들 왕소군(王小君)이 출가하여 다시 세웠고, 그 후 1606년(선조 39)에 사명대사(四溟大師) 유정(惟政)이 중건하여 승군(僧軍)을 주둔시켰다고 한다. 대웅전은 1987년 수리 중 발견된 종도리 장혀의 상량문에 의하면 1614년(광해군 6)부터 1804년(순조 4)까지 다섯 차례 수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지붕에는 ‘건륭31년 병술(1766)’이라고 기록한 망와가 다수 남아 있어서 최소 1766년 이전에는 대웅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은 앞쪽이 낮은 지형에 따라 전면에 석축이 높게 구축되어 있고 석축 가운데에 화강암 계단이 있다. 기단은 장대석으로 쌓고 자연석 초석 위에 모두 원기둥을 세웠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며,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다포계 건물이다. 지붕의 네 모서리에는 팔각형 활주가 서 있다. 창호는 정면 가운데에 꽃살 여닫이문과 배면 우측의 영쌍창(창호 가운데 기둥이 있는 창)이 고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강직하면서도 장식성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17∼18세기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물천장 등의 구조와 내부 닫집의 섬세한 조각형태 그리고 건립당시로 추정되는 단청문양이 잘 남아 있다.

이처럼 구미 대둔사 대웅전은 형태, 구조, 장식 측면에서 볼 때,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역사적, 건축적, 예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구미 대둔사 대웅전 (龜尾 大芚寺 大雄殿) 

 

건물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다포계 목조 건축물이다

 

구미 대둔사 대웅전 (龜尾 大芚寺 大雄殿) 우측면

 

 

구미 대둔사 대웅전 정면의 꽃살 여닫이문

 

 

구미 대둔사 대웅전 내부 천정

 

 

보물 제1633호 _ 구미 대둔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 (龜尾 大芚寺 乾漆阿彌陀如來坐像)

 

대둔사 건칠여래좌상은 정상계주만 이후의 보수일 뿐 원래의 상태가 잘 남아 있는 작품이다.

X-ray 촬영 결과 상호와 불신은 건칠로 제작되고 양손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균형잡힌 비례와 이중의 대의를 입은 착의법, 감탕기법으로 만들어 붙인 나발, 양 무릎 밑으로 모아진 양쪽의 대의자락 그리고 왼쪽무릎에 늘어진 소매 자락 등에서 고려후기 14세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더구나 고려시대 건칠여래상은 나주 심향사를 비롯한 전라도 지역에 몇 사례가 있을 뿐인 귀한 재료인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13세기의 복잡한 형식에서 점차 단순해져가는 단계에 해당하는 양식을 보이는 작품으로서 건칠이라는 재료적 특성과 1m(105.5cm)가 넘는 크기다.

비록 이 불상의 제작연대와 조성주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경북지역에서 드물게 확인되는 건칠기법으로 일정한 두께로 완성도 높은 불상을 만들어 낸 점에서나 고려후기 불상에서 조선 초기 불상으로 이어지는 불교조각의 전개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불상이다.

 

보물 제2117호 _ 구미 대둔사 경장 (龜尾 大芚寺 經欌)

 

‘구미 대둔사 경장’은 뒷면에 쓰인 명문을 통해 1630년(인조 8)에 제작한 사실을 알려주는 불교목공예품으로, 제작 시기뿐만 아니라 ‘화원(畵員)’, 인출장인(‘引出匠人)’, ‘태장인(炲匠人)’ 등 경장 제직과 관련된 정보를 모두 알려 주는 귀중한 사례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보물 제2025호 _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龜尾 大芚寺 三藏菩薩圖)

 

현재 구미 대둔사 심장보살도는 훼손이 심각하여 보존처리를 시행하기 전까지 관람 할 수가 없습니다.

 

대웅전과 명부전

 

 

대둔사 명부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주심포양식이다.

단층 목조건축물로 조성연대는 각부의 양식으로 보아 17세기 후반에 지어진 대웅전과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둔사 삼성각

 

 

대둔사 응진전 전경

 

 

대둔사 응진전

 

 

응진전에는 흙으로 만든 석가여래삼존상을 비롯한 16나한상과 동자상 · 나한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응진전에서 바라본 운무낀 대둔사 전경

 

 

대둔사 선불장

 

건물규모는 정면 5칸, 측면4칸으로 팔작지붕의 주심포양식이다. 대둔사에서 가장 큰 목조건축물이다.

 

복우산 대둔사 (伏牛山 大芚寺) 편액

 

 

대둔사 종무소 및 요사체

 

 

대둔사(大芚寺) 편액

 

 

종무소에 걸려 있는 종과 목망치

 

 

기와을 깔고~

 

 

마음愛 자비를!    세상愛 평화를!

 

 

소나무의 수령은 오래되 보이지 않으나 가지의 자태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대둔사 부도

 

대둔사 문화재를 보다 더 많은 자료를 보시려면 기리여원 '보물편'을 찾아 주시면 감사합니다.

 

2021.03.13.구미 대둔사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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