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찰

영천 은해사 중암암

기리여원 2021. 1. 8. 16:58

은해사 중암암 대웅전(銀海寺 中巖庵 大雄殿)

 

중암암(中巖庵, 돌구멍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산내암자(山內庵子)이다. 834년(흥덕왕 9)에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하였다. 그 뒤 꾸준히 수도승들의 수행처로 이용되어 오다가, 1834년(순조 34) 우일(宇一)과 유엽(有曄)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요사채·객사(客舍)가 있으며,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332호 은해사중암암삼층석탑과 석등(石燈)이 있다. 이 중 3층 석탑은 창건 당시에 건립된 것이라고 하는데 높이 3.7m이다. 석등은 높이 1.2m의 장방형으로 장식이나 기교를 가하지 않은 특이한 석등이다. 이 밖에도 도괴된 부도 1기가 있다. 절 주변에는 삼인암(三印巖)·건들바위·장군수(將軍水) 등이 있다. 이 중 건들 바위에는 전설이 깃들여 있다. 옛날 한 승려가 참선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밖으로 나가 보니, 큰 바위가 암자로 굴러 떨어지려고 하므로 급히 법당에 들어가서 기도를 드리자 바위가 떠올라 훨씬 뒤의 안전한 자리로 옮겨 앉았다고 한다. 또, 장군수는 김유신(金庾信)이 17세 때 이곳에서 수련하면서 마셨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물맛이 매우 뛰어난 석간수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공산 제일 기도도량 중암암 머릿돌

 

 

중암암 입구

 

은해사입구에서 중암암까지는 4.8km입니다. 

천천히 걸어 와도 좋으련만, 다음 답사가 있어 차로 입구까지 올라왔습니다.

 

중암암 소운당(中巖庵 小雲堂)

 

 

중암암 요사채

 

 

중암암 요사채 처마에 매달은 메주

이 메주로 담근 고추장, 간장, 된장 맛을 어떨까?   가히 표현할 수 없는 맛일거 같다.

 

 

요사채 앞에 양지바른 곳에 가지런해 놓여 있는 항아리. 운치를 더해 준다.

 

 

중암암 관음전(觀音殿) 및 삼성각(三聖閣)

 

 

천왕문을 지나야 법당을 볼수 있습니다.

천왕문을 돌구멍이라하며 중암암을 "돌구멍 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중암암 대웅전(中巖庵 大雄殿)

 

 

중암암 대웅전(中巖庵 大雄殿)

 

 

중암암 용왕각(龍王閣)

 

 

이빨을 드러낸  용머리

 

 

법당 답사를 마치고 중암암 삼층석탑, 극락굴, 삼인암, 만년송, 건들바위 보러 올라갑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2호 _ 은해사 중암암 삼층석탑 (銀海寺 中巖庵 三層石塔)

 

은해사 중암암 삼층석탑은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에 있는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내 암자인 중암암에 위치하고 있다. 암벽 아래에 암석 틈에 붙어서 불당이 있어서 암자 이름이 중암암(돌구멍절)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고 전한다. 불당지 한켠에는 불당 창건 때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어골문(魚骨文) 기와 조각이 쌓여 있다.

이 석탑은 높이가 약 3m로, 석탑의 양식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삼층석탑으로 되어 있다. 잘 다듬은 장대석 4개를 결합하여 지대석으로 깔고, 그 위에 2층 기단과 3층의 탑신부를 올렸다.

지대석은 규격을 달리하고 있으나 잘 다듬은 4개의 장대석을 정사각형으로 결합시켜 깔았다. 기단은 2층으로 상·하기단의 각 면석에는 각 면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모두 정육면체로서 층위가 올라갈수록 높이가 낮아지는 것 외에는 동일한 양식이다. 옥개석은 모두 낙수면의 경사가 심하고 우동과 전각(轉角)의 반전이 심한 편인데, 옥개받침은 4단에서 3단으로 줄어들었다. 보륜석은 노반 위에 얹혀 있는데 반구 모양이며, 가운데에는 찰주공(擦柱孔)이 노반에 이어서 관통하고 있다.

탑의 양식은 통일신라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부가 약화되었고, 옥개석 낙수면의 경사가 심해지고 전각의 반전도 많아진 편이다. 또한 전체 규모가 작아져 장식성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석탑의 조성시기는 이곳 암자의 창건시기와 같이 고려초기로 추정된다. 손상을 입지 않았고 보존이 깨끗하여 가치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극락굴 입구

 

 

극락굴

 

신라시대 원효스님이 화엄경론을 집행할 때 풀리 않는 의문이 있어 이 굴에서 화엄경 약찬게를 외우다 화강삼매에 들어 불빛을 발신하였는데, 그 힘으로 바위가 갈라지고 그 소리에 의문이 풀리어 화엄론을 완성했다는 설이 전해오고 그 후 조선 말기 영파 스님(은해사 비석에 약력이 있음) 이 화엄 강백으로 유명했는데, 이 굴에서 어느 여름날 정진하다가 삼매에 들어가는 바람에 학인들 강의시간도 놓치고 밤이 늦도록 스님이 오지 않아 큰 절 대중들이 모두 찾으려고 나와 보니 스님이 이 굴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도인 큰 스님이라는 것을 알고 여러 스님들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근세에 와서도 이 도량에서 공부를 하거나 어떤 소원을 이루기 위해 청정히 계를 지키고 기도하면 잘 이루어진다고 하여 전국 각지에서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알기만 한다면 이 극락굴은 몸이 아무리 굵다고 해서 통과를 못하는 사람이 없다 하며 세번을 돌아야 소원을 이루어진다고 한다."

 

만년송과 극락굴, 건들바위 가는 길

 

 

삼인암(三印巖) 

 

삼인암(三印巖)의 전설

 

중암암 법당 바로 뒤 봉우리에 바위 3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 삼인암(三印巖)이다.

삼인암은 옛날 어느 처녀가 자식이 귀한 집에 시집을 갔으나 아이를 낳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효험이 있는 약과 정성을 아끼지 않았으나 대를 잇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스님이 사정을 듣고 정성을 드리라고 하면서 현재 있는 삼인암의 장소를 알려주었다.

부인은 여기에서 정성을 드려 삼형제를 낳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어느 아들 삼형제 혹은 친구 세 사람이 뜻하는 바가 있어 이곳에 와서 정성을 드리고 힘써 정진하여 모두 뜻하는 바를 이루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 곳 삼인암은 중암암 법당 바로 뒷편에 위치하므로 이 곳을 찾는 모든 분들은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행동을 하여야 한다.

 

삼인암(三印庵)에서 바라본 팔공산자락

 

 

만년송으로 가는 길

 

 

만년송

 

중암암 서쪽으로 약 200m쯤 가면 백리는 하늘을 향해 바위틈에 붙어있고 가지는 땅을 향해 자라서 수평으로 길게 굽어져 있는 만년송이란 소나무가 있는데, 이 산천의 경관에서는 뺴놓을수 없는 것으로 그 모습은 가히 일품이다.

 

만년송

 

 

건들바위

 

이 바위는 옛어느날 밤부터 바위에서 울력소리가 요란하게 나서 크게 놀란 주지 스님이 밖으로 나가보니 사람이 보이지 않고 곧 암자를 덤칠듯이 움직이고 있기에 부처님께 기원하였더니 그 바위가 제 자리에서 훨씬 윗쪽으로 옮겨져 음직이지 않고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특히 이곳의 가을단풍이 가히 절경이다.

 

중암암의 전경

 

2021.01.01, 영천 은해사 중암암

글 문화재청

 

▼보시고 유익하셨다면 공감(♥) 눌러주세요

'문화재 > 사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진 금곡사  (0) 2021.02.25
보은 법주사 복천암  (0) 2021.02.11
영주 초암사  (0) 2020.12.30
영주 성혈사  (0) 2020.12.30
칠곡 선봉사  (0) 2020.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