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인천광역시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5호_이규보 묘

기리여원 2022. 1. 28. 12:20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5호 _  이규보 묘 (李奎報 墓)

 

수량/면적 : 1기 / 668.9㎡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길상면 까치골길 72-17 (길직리)

 

고려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1168∼1241)선생의 묘소이다.

 

고려의 무신정권 하에서 태어나 무신정권에 적극 협력했던 문인의 한 사람으로, 명종 19년(1191)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문하시랑 평장사에 올랐다.

 

시문에 능하였던 선생은 중국의 모방이 많았던 당시에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 이야기를 서사시로 엮는 등 민족정신에 바탕을 두고 글을 썼다. 또한 몽고군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해서 대장경을 만들 때 민족수호의 충정이 담긴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大藏經刻板君臣祈告文)』을 지었다. 선생이 남긴 문집은『동명왕편』을 비롯하여『동국이상국집』,『백운소설』등 55권으로, 모두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묘역에는 상석과 장명등(長明燈:무덤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있으며, 좌우에는 문인석·무인석·망주석이 한 쌍씩 세워져 있다.

 

이규보 묘 표지판

 

 

이규보 묘 표지석

 

 

이규보 묘 전경

 

 

백운이규보선생문학비(白雲李奎報先生文學碑)

 

 

유영각(遺影閣) 전경

 

 

이규보 묘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유영각(遺影閣)

 

 

이규보 묘의 영정

 

 

재실인 사가재(四可齋)

 

 

이규보 묘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 1168~1241)

 

고려 의종 때의 대문장으로 활약한 고려의 문신. 자는 춘경, 초명은 인저, 호는 백운거사, 지헌, 삼혹호선생으로 소년 시절 술을 좋아하며 자유분방하게 지내 23세 때 겨우 진사에 급제했으나 이런 생활을 계속해 출세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26세 때 개성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며 당시 문란한 정치와 혼란한 사회를 보고 각성해 <동명왕편> 등을 지었다. 그 뒤 최충헌 정권에 시문으로 접근해 32세부터 벼슬길에 올랐다. 이후 좌천과 부임, 면직과 유배 그리고 복직 등을 거듭하면서 다사다난한 생을 보냈다. 권력에 아부한 지조 없는 문인이라는 비판이 있으나 우리 민족에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외적의 침입에 대해 단호한 항거정신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규보 묘 

 

 

이규보 묘 

 

 

이규보 묘 

 

 

이규보 묘 묘표

 

고려이상국하음백문순공휘규보지묘(高麗李相國河陰伯文順公諱奎報之墓)

배정경부인진양진씨부(配貞敬夫人晉壤晉氏祔)

 

이규보 묘 앞 상석 및 향로석

 

 

이규보 묘 앞 문인석과 석양 1쌍

 

 

아규보의 묘 후면에서 본 전경

 

 

이규보 묘

 

2022.01.16,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 이규보 묘

글 문화재청,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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