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인천광역시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6호_허유전 묘

기리여원 2022. 1. 21. 09:00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6호 _ 허유전 묘 (許有全 墓)

 

수량/면적 : 1기 / 557.9㎡

지정일 : 1995.03.02

소재지 : 인천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 산297번지

 

고려 후기 충숙왕 때의 문신인 충목공 허유전(1243∼1323) 선생의 묘소이다.

허유전은 1243년(고종 30년) 출생했으며, 고려 원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1309년(충렬왕 34) 전라도안찰사를 거쳐, 밀직사사에 올라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여러 인물을 선발하는 일을 맡았다. 충숙왕 초에는 가락군에 봉해지고 충숙왕 8년(1321)에 수첨의찬성사를 거쳐 정승에 올랐다. 묘는 도굴된 상태로 방치되었다가 1985년 후손 허관구(許官九)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1988년 6월 묘지 발굴 당시 고려청자 잔 여러 조각, 고려 토기조각 수십 점, 얇은 청동 조각 여러 점, 나무관에 사용한 쇠못 한 점, 11∼12세기에 만들어진 중국 송·금대의 엽전 19개가 나왔으며, 유골인 엉치뼈도 출토되었다. 이 외에도 많은 부장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도굴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허유전 묘 표지판

 

 

허유전 묘 입구

 

'하마비(下馬碑)와 허시중공묘소(許侍中公墓所) 입구'라는 표지석이 있다.

 

 허유전 묘 입구 홍살문

 

 

재실 외삼문(外三門)인 화운문(華雲門)

 

 

김해허씨 시중공파 재실인 두산재(斗山齋)

 

 

두산재(斗山齋) 편액

 

 

두산재(斗山齋) 후면

 

 

 신도문 옆의 비석

 

김해허씨 가락군 자첨사사공 총랑공 곤계삼현제단

(金海許氏 駕洛君 資瞻司事公 摠郞公 昆季三賢祭壇)

 

허유전 선생의 세 아들 묘가 없어서 허유전 선생의 제(음, 3월)를 올릴 때 이 곳에서 같이 제를 지내려고 세운 비석입니다.

 

 허유전 묘로 출입하는 신도문(神道門)

 

 

1989년에 세운 묘비

 

 고려문하시중가락군 시충목허공유전지묘

(高麗門下侍中駕洛君  諡忠穆許公有全之墓)

 

좌측으로부터 장명등, 망주석, 문인석, 동물석(양)

 

 

좌측으로부터 동물석(양), 문인석, 망주석

 

 

허유전 묘

 

고려 후기 충숙왕 때의 문신인 충목공 허유전(1243∼1323) 선생의 묘소이다.

 

충목공(忠穆公) 허유전(許有全, 1243~1323)

 

허유전은 1243년(고종 30) 출생했으며, 1274년 과거에 급제하였다. 1309년(충렬왕 34) 전라도안찰사를 거쳐, 1314년 가락군에 봉해졌다. 1323년(충숙왕 10) 충선왕을 고려로 모셔오기 위해 원나라로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1323년 내지 1324년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허유전 묘

 

돌담은 남북과 동서 너비가 490안팎으로서 고려 영조척(營造尺)에 따르면 16자 크기이다.

무덤 정면의 돌담 좌우로 집모양을 새긴 문돌[門扉石]을 세우고 무덤 바로 앞에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묘표석을 세웠다. 묘표석에는 駕洛許侍中公(가락허시중공)’ 여섯 글자를 쪼아 새겼는데 돌 겉면이 닳아 눈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허유전 묘 앞 묘표석

 

'駕洛許侍中公(가락허시중공)' 라고 새겨진 묘표석

 

허유전 묘

 

 

허유전 묘

 

허유전 묘의 후면의 지형은 중앙이 높고 양쪽 가장자리가 낮다. 

 

 허유전 묘

 

 

 허유전 묘

 

 

허유전 묘 좌측에 위치한 시묘유지(侍墓遺址)

 

가락허시중공(駕洛許侍中公)의 세 하드님이신 영(榮) · 화(華) · 창(敞)께서 侍墓살이(상중에 무덤옆에 막을 짓고 3년동안 사는일)하시던 옛자리

 

2022.01.16.일요일,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 허유전 묘

글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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