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227호_강화 광성보

기리여원 2022. 2. 12. 15:28

사적 제227호 _ 강화 광성보 (江華 廣城堡)

 

면   적 : 144,632㎡

지정일 : 1971.12.29

소재지 : 인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23-1번지

시   대 : 조선시대

 

광성보는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이다.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1233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외성을 쌓았는데, 이 성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성으로 바다길을 따라 길게 만들어졌다. 광해군 때 다시 고쳐 쌓은 후 효종 9년(1658)에 광성보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숙종 때 일부를 돌로 고쳐서 쌓았으며,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 돈대가 만들어 졌다.

 

영조 21년(1745)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었는데 ‘안해루’라 하였다. 이곳은 1871년의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용감히 싸우다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하였으며 문의 누각과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파괴되었다.

 

1976년 다시 복원하였으며, 광성보 경내에는 신미양요 때 순국한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와 신미순의총 및 전적지를 수리하고 세운 강화전적지, 수리한 것을 기록한 비석 등이 건립되었다.

 

강화 광성보 표지판

 

 

강화 광성보(江華 廣城堡) 안해루(按海樓)

 

강화 광성보 (江華 廣城堡)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로, 1658년에 설치됐다.
화도돈대 · 오두돈대 · 광성돈대와 1874년에 축조된 오두정포대를 관할하였다.
1745년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어 안해루(按海樓)라 하였으며,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전투지였다. 당초 초지진과 덕진진을 거쳐 광성보에 이른 미군은 상륙하기 전에 포격으로 광설보를 초토화했다. 어재연(魚材淵)장군을 비롯한 조선군은 물러서지 않고 분전했으나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했다. 광성보안에는 광성돈대, 어재연 · 어재순 형제의 충절을 기리는 쌍충비각, 이름을 알 수 없는 전사 장병들을 모신 신미순의총, 손들목돈대, 용두돈대가 있다.

 

강화 광성보(江華 廣城堡) 안해루(按海樓)

 

 

강화 광성보(江華 廣城堡) 안해루(按海樓) 현판

 

 

안해루(按海樓) 아치문

 

 

안해루(按海樓) 

 

 

광성돈대(廣城墩臺)

 

이 돈대는 광성보에 소속된 돈대로 1679년에 축조되었다. 내부에는 대포, 소포, 불량기가 전시되어 있으며, 신미양요 때 파괴되었던 것이 1976년 강화 전적지 보수정화사업 때 복원되었다

 

광성돈대

 

 

대포, 소포, 불량기

 

 

광성돈대

 

 

신미양요 순국 무명용사비, 쌍충비각(雙忠碑閣)

 

 

신미양요 순국 무명용사비, 쌍충비각(雙忠碑閣)

 

무명용사비는 신미양요(1871년)때 미군이 10여 명의 사상자를 냈던 것에 비해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魚在淵) 장군과 군졸이 열세한 무기로 용감하게 싸우다 순국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이다.

쌍충비는 1871년 신미양요 떄 광성보전투에서 순절한 중군 어재연 외 59명의 순절비이다. 1기는 강화 군민이 건립한 <광성파수순절비(廣城把守殉節碑)이며, 다른 1기는 어재연과 어재순 순절비이다. 두 비는 1873년에 세워졌다.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

 

신미양요 당시 광성보 일대에서 미해군과 격전하다가 장렬히 순국한 조선군의 시신들을 화장시켜 한묘에 7~8인씩 함께 합장한 곳이다. 당시 중군 어재연 장군과 아우 재순을 비롯한 군관, 사졸 53인의 전사자 중, 어재연 형제는 고향인 충북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하고, 남은 군졸 51인은 신원을 분병할 수 가 없어 7기의 분묘에 나누어 합장하여 그 순절을 기리고 있다.

 

손돌목돈대(損乭項墩臺)

 

이 돈대는 덕진진에 소속된 돈대로 1679년에 설치된 48돈대 중의 하나이다. 1866년의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 때 외국 함대들과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서, 1976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파괴되었던 성벽을 복원하였다. 손돌몯돈대 앞의 수역을 염하(강화와 김포의 경계를 이루는 수역)라고 하는데 뱃사공 손돌이 왕의 오해로 억울하게 죽은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고 한다.

 

손돌목돈대

 

 

손돌목돈대

 

 

손돌목돈대

 

 

광성포대(廣城砲臺)

 

광성포대는 조선후기 강화도 해안수비를 위해 설치된 방어시설이다.

광성포대는 손돌목포대 주변 3곳에 설치되었으며 각각 9좌, 4좌, 3좌의 포좌를 갖추고 있었으며 이중 가장 규모가 큰 중앙포대는 길이 80m, 포좌의 크기 약 6m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광성포대

 

 

용두돈대(龍頭墩臺)

강화 해안에 용머리처럼 돌출한 자연암반 위에 설치된 돈대이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다. 강화 전적지 보수를 기념하기 위하여 1977년에 설치한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가 있다.

 

용두돈대

 

 

용두돈대

 

 

용두돈대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江華戰蹟地淨化記念碑)

 

 

용두돈대 포대

 

 

손돌목

 

 

덕포진에서 바라본 광성보, 용두돈대, 광성포대

 

 

강화해안 풍광

 

 

광성보 소나무길

 

2022.01.31,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강화 광성보

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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