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139호_김포 문수산성, 문수산, 문수사

기리여원 2022. 3. 5. 10:49

사적 제139호 _ 김포 문수산성 (金浦 文殊山城)

 

면   적 : 288,018㎡

지정일 : 1964.08.29

소재지 : 경기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 산36-1번지

시   대 : 조선시대

 

갑곶진과 함께 강화의 입구를 지키던 조선시대의 성이다.

 

조선 숙종 20년(1694)에 돌을 이용해 쌓은 석축산성으로 순조 12년(1812)에 고쳐 쌓았다. 잘 다듬어진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위에 몸을 숨기기 위한 방어시설인 여장을 둘렀다. 당시의 성문은 취예류·공해루 등 3개의 문루와 비밀통로인 암문 3개가 있었다. 이 중 취예루는 갑곶진과 마주보는 해안에 있었으며 육지로 나오는 관문의 역할을 하였다. 현재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는 없어지고 마을이 되었으며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벽만 남아있다.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른 곳이다.

 

김포 문수산성 표지판

 

 

문수산성 남문

 

 

문수산성 남문

 

 

문수산성 산림욕장 주차장

 

문수산성 산림욕장 주차장~남아문~문수산~문수산성 장대~문수사~해병대유격장~문수산성 산림욕장 주차장

 

소요시간 : 10:10~13:10 (3시간 쇼요)

 

김포 문수산성 (金浦 文殊山城)

 

김포 문수산성 (金浦 文殊山城)

 

문수산성은 사적 제139호로서 조선 19대 숙종 20년(1694)에 바다로 들어오는 적을 막기위해 쌓은 성으로 축성 당시에는 북문, 서문, 남문이 있었으나 병인양요 때 모두 불탔다. 1993년부터 북문을 복원하기 시작, 현재 총 길이 6km의 성곽을 복원중에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의 길이는 4km로 등산하다 보면 발 아래로 성곽이 이어지는 광경을 느낄 수 있다.

 

문수산성 성곽에서 바라본 강화대교

 

 

문수산성

 

 

문수산성

 

 

문수산성

 

 

문수산성

 

 

문수산성

 

 

전망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화도

 

 

문수산성

 

 

홍예문(남아문)

 

문수산성 동쪽 중간지점에 위치하여 성 안팎을 왕래할 수 있는 작은 문이다.

김포대학, 고막리 방향으로 이어진 등산로와 연결되어 있고 등산로에서 남아문으로 나서면 문수산성의 모습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홍예문(남아문)

 

 

문수산성

 

 

문수산성

 

 

문수산성

 

 

문수산성 장대지(文殊山成 將臺址)

 

해발 376m의 문수산에 있는 문수산성(文殊山成)은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 입구를 지키기 위해 숙종 20년(1694)에 돌로 쌓은 산성으로, 고종 3년(1866)에 치른 병인양요의 전쟁터이기도 하였다. 이곳은 문수산 동쪽의 가장 높은 지대로 조선 시대 장수가 부변 정세를 파악하여 지휘하던 장대지가 있었던 곳이다.

19세기 후반 재작된 옛 지도를 보면 문수산성의 남문[희우루(喜雨樓)], 서문[공해루(控海樓)], 북문 등 문루 3개와 비밀 톨로인 아문 4개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는 전쟁 때 사라졌는데, 지도에는 공해루의 위쪽으로 성내의 시설물들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어 당시에 병영터였음을 알 수 있다.

 

문수사(376m) 정상석

 

문수산(376m) 

 

한남정액의 최 북서쪽에 위치한 문수산은 해발고도는 376m로 아기자기한 등산의 맛을 주며 사계절 경치가 아름다워 김포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정상에 오르면 산 아래에 염하강과 한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맑은 날 강 건너엔 손에 닿을 듯 북한 개성의 송학산까지 불 수 있어 산행과 더불어 다른 산에서 볼 수 없는 산수의 어울림과 분단역사의 현장에서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문수산에는 조선 19대 숙종 20년(1694)에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기 위해 쌓은 문수산성이 있어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옛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며 산에 오를 수 있다. 등산로 초입에는 산림욕장이 조성되어 있어 피톤치드와 음이온 등을 마시며 가벼운 휴식과 산책하기에도 제격이다.

 

 

문수산성 장대 아치형 출입구

 

 

문수산성 장대(文殊山成 將臺)

 

문수산성 장대는 문수산 동쪽의 가장 높은 곳(해발 고도 376.1m)에 있으며, 서해와 한강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장수가 주변 정세를 파악하여 군사를 지휘한던 곳이다.

장대의 건물규모는  2017년에 복원한 정면 3, 옆면 1칸이며, 팔작지붕의 목조건물이다.

 

장대에서 바라본 남문방향의 문수산성

 

 

장대에서 바라본 강화도 전경

 

 

장대에서 바라본 북문방향의 전경

 

 

문수산성 장대지에서 내려와서 문수사로 감니다.

 

 

문수사(文殊寺) 비로전(毘盧殿)

 

경기도 전통사찰 제62호 _ 문수사(文殊寺)

 

문수사는 신라 혜공왕 때 처음 세운 이후 조선 광해군 6년(1613) 화주승* 도욱이 고쳐 지었으며, 순조 9년(1809) 화주승 광선이 다시 한번 고쳐 지었다.

건축물로는 대웅전과 요사채** 2동이 있으며, 대웅전 안에는 목조 비로자나불이 있다. 서쪽에는 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91호 풍담 대사 부도(승탑) 및 비가 있다.

본래 문수사가 자리한 문수산의 이름은 비아산(比兒山)이었는데, 문수사가 세워진 이후부터 문수산이라 불리게 되었고, 이에 따라 산성의 이름도 문수산성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문수사는 현재 경기도 전통 사찰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 화주승 : 집집마다 다니면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시물(施物)을 얻어 절의 양식을 대는 승려.

**요사채 : 절에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을 부르는 말.

 

문수사 비로전에 봉안된 목조비로자나불

 

 

비로전에서 바라본 요사체 2동

 

 

문수사에서 좌측으로 500m 내려가면 문수사 풍담대사부도 및 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1호 _ 문수사 풍담대사부도 및 비 (文殊寺楓潭大師浮屠 및 碑)

 

‘문수사 풍담대사 부도 및 비’는 현재 경내에서 서편으로 500m 정도 떨어진 능선에 세워져 있다. 부도는 평면이 팔각형이며, 기단부에서 상륜부까지 정연하게 구성되었다. 기단부는 사각형 지대석을 한가운데에 놓았는데, 하부 원형 사리공 안에 석함을 매장하였다. 석함 안에는 사기 대접에 사리를 봉안했음이 2003년 5월 복원 정비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하대석은 안상과 연화문을 표현하였으며, 중대석은 타원형 문양이 장식된 부재를 낮게 마련하였고, 상대석은 16엽으로 구성된 연화문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탑신석은 원구형으로 상면에 별도의 원형 사리공을 마련했는데, 도굴된 상태였다. 옥개석(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은 돌)은 처마부와 마루부 등을 목조건축물의 지붕부가 연상되도록 정연하게 다듬었다. 상륜부는 원형으로 구성된 하나의 부재로 노반 위에 보륜과 보주 등을 올려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석비는 연화문이 새겨진 비좌 위에 앞 뒤면에 글씨가 새겨진 비신을 올리고, 구름문양 사이에 원형 보주 등이 표현된 이수(용을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부로 구성되었다.

 

1665년에 금강산에서 풍담대사가 입적한 후 사리 5과가 나오자 그의 제자들이 사리를 나누어 여러 사찰에 봉안했다고 한다. ‘문수사 풍담대사 부도 및 비’는 조선 후기에 유력한 승려의 경우 사리를 나누어 여러 사찰에 부도와 비를 한 쌍으로 건립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문수사 풍담대사부도 및 비 

 

 

문수사 풍담대사부도

 

 

문수사 풍담대사비

 

 

해병대 유격장으로 내려와서 문수산성 산림욕장 주차장으로 갑니다.

 

 

2022.01.31.월요일, 김포 문수산성

글 문화재청, 안내자료 및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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